제5부. 유럽 낭만파: 예술과 철학 찾다가 노숙자 된다

by 영현담

1. "나는 속물적인 미국, 중국과는 달라"


유학 상담을 하다 보면, 눈빛부터 남다른 친구들을 만난다.


이들은 연봉, 취업, 대기업 같은 단어가 나오면 경멸 어린 표정을 짓는다. 대신 그들의 입에서는 '아방가르드', '미학', '철학적 사유', '장인 정신' 같은 단어가 쏟아져 나온다.


"미국은 너무 상업적이잖아요. 중국은 수준 떨어지고요. 저는 예술과 인문학의 본고장 유럽으로 가서 제 영혼을 채우고 싶어요."


주로 프랑스(파리)의 패션/미술, 영국(런던)의 디자인, 독일(베를린)의 철학/음악을 지망하는 이들이다. 소위 '유럽 낭만파'들이다.


그들은 한국의 경쟁 사회가 싫다고 한다. 자유로운 유럽의 공기를 마시며 센강 변을 거닐고, 베를린의 펍에서 토론하면 자신의 잠재된 예술혼이 깨어날 거라 믿는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낭만이 '생존의 공포'로 바뀌는 데는 채 6개월이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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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랑스 & 영국: '에밀리, 파리에 가다' 병에 걸린 패션 피플


먼저 프랑스와 영국으로 떠나는 '예술/디자인/패션' 지망생들을 보자.


이들의 인스타그램은 화려하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의 셀카, 런던 쇼디치 거리의 힙한 카페 사진. 겉보기엔 완벽한 '유러피안 라이프'다.


하지만 그 이면의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처참하다.


파리와 런던의 월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강남의 3배다.


영화에 나올 법한 다락방(하녀 방) 월세가 150만 원을 훌쩍 넘고, 외식 한 번 하면 3~4만 원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예술적 영감을 얻겠다"며 갔지만, 현실은 마트 마감 세일 코너에서 샌드위치를 뒤지는 신세다.


패션 학교 학비는 또 얼마나 비싼가? 재료비, 작품비까지 합치면 1년에 1억은 우습게 깨진다.


그렇게 돈을 쏟아붓고 배운 것은?


'난해한 예술성'이다. 한국의 상업 시장에서는 도저히 팔리지 않을, 자기만족적인 예술 세계만 잔뜩 부풀려서 돌아온다.


3. 독일: "학비 공짜"의 함정, '졸업'이 없는 감옥


반면, 독일로 가는 친구들은 좀 다르다. '음악(성악/악기)'이나 '철학/인문학' 전공자가 많다.


이들의 유행어는 "독일은 학비가 무료잖아!"다. 가성비 유학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독일 대학은 '입학은 쉽지만 졸업은 지옥'인 시스템이다.


독일어가 완벽하지 않으면 수업 자체를 못 따라간다. 한국처럼 "유학생이니까 봐주겠지" 하는 자비는 없다. 학점 안 나오면 가차 없이 유급이고 제적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유학 장수생'이 탄생한다.


2년 석사 과정을 하러 갔는데 5년, 7년이 지나도 졸업 논문을 통과 못 한다.


나이는 먹어가고, 한국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는 바닥나고, 독일어는 늘지 않고...


결국 베를린의 한인 식당에서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버티는, '고학력 유령'이 되어버린다.


낭만? 개뿔. 매일 밤 비자 연장 걱정에 잠 못 이루는 것이 현실이다.


4. 보이지 않는 차별: 당신은 영원한 '이방인(Alien)'


유럽은 미국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다. 수백 년 된 '계급(Class)'과 '문화적 텃세'가 존재한다.


당신이 아무리 불어를 잘하고 독어를 잘해도, 그들 눈에 당신은 그저 '동양에서 온 이방인'일 뿐이다.


특히 예술계나 인문학계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은 철저하게 혈연과 학연으로 뭉쳐 있다.


"동양인이 서양 철학을 논해?"


"동양인이 감히 유럽의 패션을 알아?"


겉으로는 "흥미롭네요(Interesting)"라고 웃어주지만, 속으로는 당신을 주류로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투명 인간 취급당하고, 조별 과제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다. 이것이 당신이 꿈꾸던 '지적 교류'의 민낯이다.


5. 한국행: "그놈의 '유럽 감성', 회사에선 쓸모없습니다"


비자 만료로 쫓겨나듯 한국에 돌아온 유럽파. 이제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저는 파리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고..."


"저는 베를린에서 헤겔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 기업 인사팀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래서 엑셀은 할 줄 아세요?"


"우리 회사는 '예술' 할 사람이 아니라, 당장 옷 팔아서 돈 벌어올 'MD(상품기획자)'가 필요한데요."


"철학이요? 그럼 마케팅 문구는 잘 뽑으시겠네. 근데 포트폴리오는 없으세요?"


유럽에서 배운 자유분방함, 비판적 사고, 느긋한 태도...


이것들은 '빨리빨리'와 '성과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조직 문화와는 최악의 상성(相性)이다.


오히려 "쟤는 유럽 물 들어서 콧대만 높고 실무는 꽝이다"라는 선입견만 심어준다.


결국 그들은 홍대나 성수동 카페를 전전하며 "한국은 너무 천박해", "내 예술을 이해 못 해"라고 한탄하는 '고학력 룸펜(지식 실업자)'이 된다.


6. 예술은 원래 '금수저'의 영역이다


냉혹한 결론을 내리겠다.


당신이 집안에 돈이 썩어나서, 평생 직업 없이 예술만 하고 살아도 되는 '찐 금수저'라면 유럽으로 가라. 가서 낭만을 즐기고, 갤러리 투어하고, 오페라 보며 살아라. 그건 멋진 소비다.


하지만 부모님의 노후 자금을 헐어서, 혹은 "갔다 오면 취업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유럽행을 택하는 평범한 학생이라면?


절대 가지 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안 되는 학문(순수 예술, 인문학)'을 '물가 비싼 나라'에서 공부한다는 것.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인생을 건 '자살골'이다.


센강의 야경은 인스타그램으로 볼 때가 제일 아름답다.


굳이 그곳에 가서 비싼 월세 내며 '국제 미아'가 될 필요는 없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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