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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향기 Sep 12. 2024

오늘도 무사히 보냈습니다.

고된 일을 하시는 분들께


 


2024년 4월 27일의 기록




 기온이 올라간 탓일까? 자꾸 졸음이 쏟아진다. 수시로 하품을 하고 조는 일이 다반사다. 자꾸 커피를 들이켜게 된다.  커피를 들이켜대니 밤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오늘도 역시나 꾸벅꾸벅 졸고 있다. 책을 보다가 눈이 스르르 감겼고, 잠깐 눈을 붙이려고 하면 다시 반짝 눈이 떠졌다.

 '너, 책 읽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지?'

 안 되겠다. 좀 움직여야겠다. 주섬주섬 싸 들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생각보다  꽤 따뜻한 날씨였다. 조금 걸으니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잠바를 벗어던졌다.  땀도 식힐 겸, 잠도 쫓을 겸 방앗간에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옆에 책을 펼쳤다. 빨리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집중은 되지 않았고, 다시 눈꺼풀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괜히 디카페인으로 시켰네!'

 카페에서 혼자 꾸벅꾸벅 조는 건 창피한 일이니 오늘은 산책 시간을 확 당기기로 했다.  두 시간은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40분 만에 나왔네! 나의 최애 산책 장소 버들공원으로 향했다. 인도를 따라 800m 정도 걸어야 한다. 오른편에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 있다.







 '어라, 무슨 일이지?'

 버들공원을 바로 코앞에 둔 아파트 단지, 뭔가 심상치 않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니 소방차, 119 사다리차, 119 구급차가 몇 대 서 있었다.


© jubilation, 출처 Unsplash


초등학생들의 대화가 들렸다.

"페인트칠하는 아저씨가 매달려 있어서 지금 아래 매트 깔았어!"

"여기가 더 잘 보여!"


 한참 도색 작업 중인 아파트였다. 군데군데 줄이 보였고 도색한 부분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초등학생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작업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3~4층 높이에 있는 작업대 위에 앉아 있었다. 작업대 줄에 문제가 생겨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인 듯했다. 얼마나 오래 매달려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꽤 많은 사람들이  구조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나까지 힘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버들공원으로 향했다. 버들공원에서도 구급차, 소방차를 볼 수 있었다. 매트는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한 것이었고, 사다리차로 구조를 진행하는 듯했다. 사다리차의 사다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구급차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제법 기온이 높은 날씨였고, 꽤 오랜 시간 버티고 계셨을 거고, 그래서 병원으로 급히 이송된 것이겠지?



© carrier_lost, 출처 Unsplash







 요즘 우리 동네 아파트들이 도색을 시작했다. 내가 사는 단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나무판 의자에 앉아 작업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참 불편하다. 흡사 그네와도 같은 작업대 위에서 한 손은 작업대 줄을, 다른 한 손은 길게 아래로 늘어져 있는 줄을 잡고 계시다. 그 줄은 페인트 통이 모여 있는 바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줄을 벽에 대고 페인트를 뿌리는 듯 보였다. 작업자가 지나간 곳은 깨끗하고 선명한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고생이 참 많으시다.



 환경미화원, 교통정리를 도와주시는 모범 운전자, 소방관, 경찰관, 분리수거업체, 택배 기사님,  위험하고 고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참 많다. 우연히 하루를 일찍 시작하게 되는 날이면  해도 뜨지 않은 컴컴한 새벽,  쓰레기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출근 시각,  도로 위 곳곳에서 모범 운전자들은 깨알 같은 도움을 주신다. 소방관이나 경찰관은 말을 보탤 필요도 없겠지?  너무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기도 하고, 때로는 이 세상과 이별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도색 작업자 역시 어려운 일을 하고 계셨다.



  고된 일이지만,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묵묵히 해 주고 계시기에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힘들어도 짜증 내고 울상 짓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덕분에 저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있습니다.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jontyson, 출처 Unsplash



 "오늘 구조되신 분, 몸과 마음 잘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2024년 4월의 어느 날, 블로그에 남긴 글을 수정하여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의 3화로 연재합니다.


 4개월이 지난 2024년 9월, 저의 동네 아파트들은  도색 공사를 모두 마치고 새 단장을 했습니다. 돌아보니 당시 저는 페인트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고, 특히 저희 동을 도색하는 날에는 창문을 모두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었기에 답답하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깨끗해진 아파트의 외관을 볼 때마다 4월의 기억을 떠올리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나의 하루가 무사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 감사한 마음을 갖겠습니다.



 그때 구조되신 분, 잘 지내고 계시지요?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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