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꽃향기 Sep 19. 2024

기억의 조각을 칠하다

성시경 8집 'ㅅ' 수록곡 "이음새" 에 숨겨진 이야기


 2024년 5월, 신촌 연대 캠퍼스에서 열렸던 성시경의 "축가"공연에 다녀왔어요. 벌써 4개월이나 지났네요. 저는 성시경이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팬으로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음악 파일을 구입해서 무한 재생하는 팬 중 하나였어요. 그러다가 2012년 "축가" 공연을 시작으로 콘서트에 다니고 있습니다.

 


 축가 콘서트와 연말 콘서트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관람하는 편이에요. 라디오를 진행하는 듯한 분위기도 좋고, 무엇보다 저는 성시경의 노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서요. 콘서트를 다녀오면 최소 한 달은 그 여운으로 행복하게 지낸답니다.

"자 오늘은" 공연은 안타깝게도 가지 못했네요.



 5월 축가 콘서트에서 "이음새"란 노래에 빠져들었어요. 원래도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더해졌거든요. 거의 한 달 동안 무한 재생했습니다. 유튜브 "이음새" 한 시간짜리 영상을 틀어놓고 어쩔 줄 몰라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음새"에 담긴 사연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이음새에 숨겨진 이야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터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어느덧 10년째,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생긴다. 익숙해졌다 싶으면 사고가 터지고야 만다.  오늘도 예상치 못한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을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려고 하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가 '지금!'이라고 말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는 것 같다. 덕분에 정신이 하나도 없으니 오히려 감사하다 생각해야 할까?




© marissacristina, 출처 Unsplash




 아직도 아주 가끔은 그가 생각난다. 커피를 마실 때, 밥을 먹을 때, 마트에 갈 때, 선물을 살 때 나도 모르게 그를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오트밀 라테를 좋아할까? 점심은 무엇을 먹었을까? 지각은 하지 않았을까? 그도 이 아름다운 봄날을 누리고 있을까?






© dnevozhai, 출처 Unsplash




   축가 콘서트가 있던 날, 오랜만에 신촌으로 향했다. 신촌역에서 연대 노천극장으로 가는 길, 그와 자주 걷던 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었고,  큰소리로 함께 웃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며 저녁 메뉴를 골랐고,  커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그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은 신촌에 오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와 마주칠까 봐, 그와의 기억이 선명해져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까 봐.  헤어진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마음이 아린 건 도대체 왜일까?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일까? 그와 함께 걷던 거리는 유난히 빛나 보였다. 그도 이 길을 걸을 때 나를 떠올릴까? 비 오는 날 함께 우비를 입고 무작정 걸었던 추억을 아직 간직하고 있을까?







 헤어진 뒤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다.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이 더 선명해져서 미칠 것 같았다. 그의 눈빛, 그의 미소 너무 보고 싶어서.  그의 목소리 간절히 듣고 싶어서. 무언가에 이끌린 듯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마음으로 손가락을 꼬옥 잡아놨다. 그가 먼저 연락해 주길 기다렸다. 기다림은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멀어졌다.



  일 년이 더 지나고 나면 그는 얼마큼 내 맘에 남아 있을까? 함께했던 추억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를 떠올리는 시간도 줄어만 간다. 희미해지다가 결국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걸까?  


 따뜻했고, 다정했던 그를 잊고 싶지 않다. 그와의 추억이 계속 선명하길 바라고 바란다.


 그가 떠오른 오늘, 그와의 추억을 그 기억의 조각을 진하게 칠해 본다.



© marcospradobr, 출처 Unsplash


 





 이음새



https://youtu.be/L9lduABo1ZU?si=G3pydHbs8BXsm3xy





지우려 하지 않아도 쓰여지는 게 너무 많아서

오래된 기억은 감춰지곤 해.

길었던 우리 얘기도 몇 개의 단어만 남겨지다

작은 점이 되어 갈지도 몰라.



늘 어디에 배인 네 향기도,

나에게만 낸 목소리도

작은 다툼도, 뜨거운 화해들도

거기 사랑이 있었다고, 그게 우리의 증거라고

그리 특별하지 못한 이음새 같은 순간 속에

여기 네가 있던 자리가 아물어 버릴까 봐

이따금씩 난 일부러 멈춰서 기억을 이어 본다.




늘 너와 걷던 거리를 흔히 그러듯 걸어 보았어

나만 느끼는 작은 낯설음

이쯤에서 널 기다렸고,  이쯤에서 아쉬워했지

너를 안으면 턱에 닿던 머릿결

거기 사랑이 있었다고, 그게 우리의 증거라고

그리 특별하지 못한 이음새 같은 순간 속에

여기 네가 있던 자리가 아물어 버릴까 봐

이따금씩 난 일부러 멈춰서 기억을 이어 본다.




게으른 옷차림, 따분한 주말 부시시 웃던 너의 얼굴

예쁘게 남겨진 사진들 속에

담기지 못한 서로가 당연했던 너와 나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너무 소중했었다는 걸

그리 특별하지 못한 모든 순간을 나눴던 게

여기 네가 있던 자리가 아물어 버릴까 봐.

굳이 소리 내 너의 이름을 또 아프게 불러본다.

흐려지는 기억의 선을 그려본다.


성시경 8집 앨범 "ㅅ" 수록곡






  부끄럽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저랍니다. 물론 시간 상으로는 훨씬 더 오래된 이야기지만요.



  첫사랑 선배와 신촌역 주변, 연대 캠퍼스를 자주 걸었어요. 주머니가 가벼웠기 때문에 주로 길바닥을 헤매고 다녔었지요. 선배와 연락이 끊긴 후, 실제로 한동안 신촌에 가지 못했어요. 종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움을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요즘 말로 썸만 타다 끝나 버렸지만, 저에게 그 선배는 아직도 첫사랑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축가 콘서트의 "이음새" 덕분에 그때의 기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공연이 끝나고 다시 신촌역으로 향하면서 기억의 조각들을 진하게 칠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기억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지난 5월,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에요.  조금 다듬어서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의 4화로 연재합니다.


 역시나 저에겐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흐려진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을 진하게 칠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전 03화 오늘도 무사히 보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