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育兒)가 육아(育我)인 이유 —
그날,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처럼 단정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엄마, 나 임신했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축하의 말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믿기 어려운 기쁨이었다.
늘 논리와 근거로 DINK를 주장하던 딸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명제가 되었다.
양가가 모인 자리에서 딸은 아무렇지 않게 초음파 사진을 꺼내 들었다.
“오늘 찍은 아기예요.”
시어른은 환호했고, 나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 방 안은 오래된 기도가 이루어진 성소처럼 고요하고도 뜨거웠다.
며칠 뒤, 딸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 낳으면, 엄마가 맡아 줄 수 있어?”
그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내 마음은 대답하고 있었다.
“그럼, 엄마가 도울게. 믿고 낳아.”
그 말에는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숨어 있었다.
초보 할머니의 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막 뒤집기를 시작한 아이는 어느새 백일을 맞았다. 옛 할머니들은 백일을 ‘세상살이의 첫 준비를 마친 날’이라 여겼다. 아이의 무병장수를 빌며 상을 차리고, 정성으로 하루를 채웠다. 나도 그 마음을 따라 소박한 백일상을 차렸다. 그날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미의 자세를 돌아보며 육아의 초심을 잃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짚어보는 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한 행복한 백날을 지나며 내 아이를 키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의 육아가 젊음을 바탕으로 한 열정이었다면, 노을육아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의 시간이 되었다. 물론 요즘의 육아 환경이 기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다음 순간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노을육아의 기술이었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배움의 과정이라 했다면, 나는 지금 ‘할머니표 육아의 기술’을 배우는 중이었다.
여름이 오자, 아이는 세상을 제 마음대로 뒤집었다.
작은 몸이 굴러가며 세상을 바꾸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때마다 내 마음의 행복도 함께 굴러 커졌다.
딸은 여전히 이성적이었고, 나는 여전히 감성적이었다.
아이 앞에서는 우리 둘 다 초보였지만, 아이 사이에서 웃으며 타협하는 법을 배워갔다.
어느 날 아이가 혼자 앉더니, 다른 날에는 두 발로 섰다.
기적 같은 순간이 눈앞에서 펼쳐질 때마다 이 거룩한 장면을 함께 보지 못하는 딸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내 마음 한쪽이 저릿했고, 그 대신 나의 카메라가 바빠졌다.
명절이 찾아왔다.
아이가 식탁의 한가운데 앉자, 식탁은 더 둥글어지고 우리의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젊은 날 나는 엄마에게 늘 미안했다. 이제는 그 마음을 딸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세대의 시간은 그렇게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어졌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문화센터에서 사회성을 배우며, 단풍 고운 공원 잔디 위를 기어 다니던 아기가 첫눈을 맞을 때는 눈사람을 짚고 서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첫걸음을 떼었다.
나는 고흐의 그림 〈첫걸음〉을 좋아한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나아가는 아기, 그리고 그 장면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 그림 속 가족의 환희를 내 아이에게서 느꼈다.
그렇게 아이는 내 손을 떠나 자신의 운명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괜찮아, 넘어져도 돼.”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의 속삭임이 그 작은 귀에도 닿았기를 바랐다.
다시 봄, 돌잔치 날이 다가왔다.
첫돌을 맞으며 지난 일 년의 감사와 기록을 정리했다. 나는 아이가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간직할 타임캡슐을 준비했다. 초음파 사진을 시작으로 내가 만든 배냇저고리와 턱받이, 첫 장난감과 그림책, 유아세례의 증서도 함께 넣었다. 오래 간직했던 내 딸의 첫돌반지도 챙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 가족의 사랑을 손 편지로 써서 함께 담았다.
그 안을 채운 모든 물건에는 아이를 향한 우리의 마음과 매 순간을 소중히 살아가길 바라는 기도가 깃들어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위기가 찾아온다. 그때 이 타임캡슐이 때로는 빨간 물약도, 파란 물약도 되는 작은 위로의 빛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이 특별한 의식을 통해 아이가 힘차게 살아가길 바라는 온 가족의 염원을 모았다.
매일 아침, 베란다의 작은 화단에서 나는 아이와 함께 꽃들에게 물을 준다.
반가운 까치가 깍깍 울면, 아이도 “악악” 소리로 화답한다. 그 짧은 순간마다 나는 다시 태어나는 듯한 환희를 느낀다.
이렇게 일 년, 아이와 함께 선 내 삶의 노을은 더 깊고, 더 단단해졌다.
아이가 첫울음을 울던 날부터 어린이집에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까지, 모든 장면이 한 화면에 겹쳐 보였다.
백일의 햇살, 명절의 웃음, 첫걸음의 떨림, 돌잔치의 촛불. 그 모든 순간이 내 품에서 자라났다.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지 않는다.
아래로 흘러간 마음이 다시 위로 증발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돌아온다.
딸에게 흘러간 내 마음이 아이를 통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내리사랑의 순환이다.
밤이 깊어 불을 끄고, 차가워진 창을 닫는다.
오늘도 평안하기를, 내일도 안녕하기를.
노을빛 속에서 나는 새로운 사랑을 배웠다.
해가 지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사랑이 다른 모양으로 다시 떠오르는 일임을.
그래서 나는 그것을 ‘황혼육아’ 대신 ‘노을육아’라 부른다.
나의 노을은 저무는 빛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고마운 빛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