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도시를 지나며

한강작가 《소년이 온다》를 읽고서 광주로

by rosa


떠나야만 하는 이유 – 신발의 침묵 앞에서

금남로 아스팔트 위엔 살수차가 지나간 듯 얕은 물웅덩이가 남아 있었다.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빛이 그 위에서 반짝이며, 낯선 방문자의 발길을 붙잡았다.

영원히 소년일 수밖에 없는 《소년이 온다》 속 동호를 마주한 날부터 나의 여름은 1980년에 멈춰 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너무도 달랐던 그날.

이렇게 늦게라도 마주하지 않으면, 죽어 하늘에서조차 미안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여름의 광주를 걸었다.


낯선 도시, 나침반에 이끌리듯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 발길이 멈췄다.

세계인이 공감한 권력의 무자비와 그에 맞선 시민항쟁의 기록, 그것이 유산으로 등재된 곳이었다.

입구에는 주인을 잃은 신발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얼른 발 들이지 못한 나, 그 무거운 침묵 앞에서 준비하지 못한 마음이 먼저 휘청거렸다.

영영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하루, 그 슬픈 역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광주의 오월에는 존재했으나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정미, 정대, 동호, 진수—의 쓸쓸한 기록을 만났다.

살아남으려 한 것이 아니었으나, 살아서 더 큰 고통을 짊어진 이들의 외침도 그 안에 있었다.

분수대를 멈춰 달라고 전화하던 은숙의 목소리, 아들을 보내고 통곡하던 어머니의 울음이 겹쳐 가슴을 후려쳤다.

광주는 과거가 아니었다.

그날의 시간은 지금도 진행형으로, 이 습한 도시에 머물러 있었다.


도청 앞에서 – 그날에 멈춘 시계의 노래

전일빌딩 벽면에는 총탄자국 245개가 남아 있었다.

부정하려 애쓰는 사람들을 조롱하듯, 위쪽에서 발사된 탄흔들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시끄러운 변명은 그날 헬리콥터의 굉음처럼 공중을 맴돌았다.

아직도 울부짖는 원혼의 도시가 나에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를 따라 도청 앞으로 발을 옮겼다.

5·18 민주광장.

민주주의가 마지막으로 숨 쉬던 처연한 현장, 역사가 피 흘린 자리엔 그날을 기억하는 시계탑이 서 있었다.

오후 5시 18분이면 어김없이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렸고 지나는 이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 하루만큼의 무게를 더해 그 시간을 기억했다.

그날 멈춰 섰던 분수대는 이제 여름을 식히려는 듯 물을 뿜지만, 물줄기가 기억하는 장면은 여전히 뜨겁고, 선명했다.


“당신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 《소년이 온다》


광주에 머무는 동안 나는 밥을 넘길 수 없어 커피로만 버텼다. 향조차 느껴지지 않는 검은 액체를 수혈하듯 들이켜면, 그것은 혈관을 타고 내려가며 이상하게도 투명해졌다.

밤의 눈동자가 얇은 종이처럼 변해 가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밤,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도 아팠다.

겨우 어둠이 밀려난 새벽, 동호가 엄마와 걷던 천변을 따라 혼자 걸었다.

그때 흐르던 물이 지금도 흐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밝은 쪽으로 엄마를 이끌던 어린 동호가 내 손을 당겼다.

“꽃 핀 곳으로 가자.”

저만치 어정쩡 피어난 코스모스가 웃고 있었다.

나를 향한 웃음인지, 내 뒤의 누군가를 보며 웃는 것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상무대 – 아직 끝나지 않은 취조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고 법무장교 셋이 들어섰다고 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 죽여 애국가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가 어린 영재였다고,

그가 부르자마자 합창이 시작되었다고—증언자는 그렇게 말했다.

“살아남는 것보다, 잊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그 한 문장이 공기처럼 번져, 상무대 취조실의 시간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검은 커튼 속에서 눈감지 못한 형제와 자매가 나를 응시했다.

은폐되고 왜곡된 사실 앞에서 숨이 막혔다.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한 노인 해설사의 눈가에 오래 참았던 눈물이 번졌다.


망월동 묘역 – 이름을 부르는 일

언덕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나보다 먼저 망월동에 도착해 있었다.

묘역은 고요했다.

아무것도 모른 척 푸르른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멈춰버린 그날처럼, 이름도 얼굴도 사연도 얼어붙은 묘역을 걸었다.

나는 소리 내어, 한 글자씩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동안, 소리는 이름이 되었고, 이름은 사람이 되었다.

동호—아니, 문재학—의 묘비 앞에 하얀 국화를 내려놓았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소년이 온다》


5월의 신부를, 5월의 막내를 무덤 사이에서 만났다.

가슴이 무너졌다.

아직 시신을 모시지 못한 비석들 아래, 영정 대신 자리한 무궁화가 애처로웠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영령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다음 이름의 자리를 마음속에 비워 두었다.

멀리서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고,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렸다.

저녁이 물 드는 시간,

나는 아직 망월동을 떠나지 못했다.


귀로 – 산 자의 몫으로


처음 금남로에서 보았던 물웅덩이를 나는 살수차의 흔적이라 여겼다.

하지만 광주에 머무는 이틀 동안 여러 번 소나기를 맞으며 깨달았다.

그 물은, 억압의 기억 위로 흘러내린 영혼의 눈물이었다.

기억은 슬픔을 되풀이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윤리를 선택하는 일이다.

광주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현재의 목소리임을, 소년의 도시에서 알았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나는 그 질문을 바꾼다.

“산 자가 산 자를 구하라.”

만약 그 길의 시작이 ‘기억’이라면, 나는 지금 그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허기를 느꼈다.

살아 있는 자의 몫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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