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글 천 번째를 기념하며ᆢ
「경기도 예술인 기회소득」 큰돈을 지원받아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과연 수혜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늦깎이로 글을 쓰며 아직은 시답잖은 문장만 늘어놓는 내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속으로 지원받았다. ‘뛰어나진 못해도 게으르지 말자’라는 조용한 다짐이 마음속에 스멀거렸다.
지원금을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부담감이 한참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결국 나는 그 무게를 풀어낼 실마리를 길 위에서 찾기로 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때때로 누군가의 언어가 태어난 자리, 그들의 상처와 시간이 지나간 풍경에 직접 닿아보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에게 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여행 가방에 옷보다 먼저 챙긴 것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정지용 시집》이었다.
그들의 시어와 흔적을 따라 걷는 이번 여행이 시인의 호흡을 느끼며 작가로서 나를 돌아보는 여정이 되기를 바랐다.
교토, 윤동주와 정지용 두 시인이 머물렀던 가을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청년 윤동주가 공부하던 도시샤 대학은 시간을 멈춘 듯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붉은 벽돌 건물들 어느 창가에서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일부
꽃, 태극기, 시집…. 윤동주 시비 곁에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발걸음 했을 사람들의 설레는 흔적이 놓여 있었다. 나는 육필원고 그대로 돌 위에 새겨진 〈서시〉를 한 글자씩 만지며 읽었다. 시인의 고뇌가 차가운 손끝을 타고 올라 내 가슴에 똬리를 틀었다. 한참 동안 청년 시인과 그의 시와, 그리고 내 마음에 들어선 시심을 위해 나는 다독이듯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윤동주의 정신적 스승인 시인 정지용, 고향을 그리는 시인의 아픈 노래도 이웃한 자리에서 찾았다.
압천(鴨川) 십리(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아라.
정지용, 〈압천〉 일부
찬란한 교토의 가을 정취를 뒤로하고, 시인이 노래한 ‘압천’을 보겠다며 이른 아침 강가를 헤맸다. 물안개가 강 위에 얇게 깔려 흐르는 그 순간, 나는 그의 시 속으로 한 발을 디딘 듯했다. 시인이 바라봤을지도 모르는 수채 풍경 앞에서 그의 시어를 더듬으며 ‘작가로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한동안, 아주 오래 거기 서 있었다.
그렇게 여기 머물렀던 두 시인의 발자국을 뒤따르며, 낯선 거리의 공기를 호흡했다. 누군가의 짧은 생이 남긴 큰 울림도 생각했다. 윤동주가 이곳에서 체포되었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친 안타까운 역사를 알게 된 지점에서—
나의 다음 여행지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후쿠오카.
마치 시인이 나의 손목을 잡아끌며 “여기까지 와야 여행이 끝난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의 마지막 하늘이 남아 있는 곳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을, 기념품 대신 짐에 조용히 싸 넣은 채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고백하건대—
이렇게 진지하게, 성실하게 두 시인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고 나니….
나는 내년에도 예술인 기회소득을 꼭 받아 숙제로 남긴 이 여행을 마저 이어가고 싶어졌다.
부끄럽지만 솔직한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더 부지런히 읽고 쓰며,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나를 응원해 준 사회에 조금이라도 빚을 갚는 정직한 작가가 되려 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일부
천 번째 브런치입니다.
저보다 먼저 챙겨주신 작가님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기뻤던 날들에 느꼈던 기억을 잊지 않고 매일 기쁘게 글 쓰려 노력합니다.
특히 천 번째 포스팅이 가능하도록 매일 새벽 우리말을 가르쳐주시는 남항우시인님께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