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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Dec 22. 2023

조금 빠른 송년인사


당나라 중기, ‘가도’라는 시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나귀 등에 앉아 길을 가면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밀다로 할까? 아니야, 두드린다가 더 좋아. 밀다가 더? 아니지 두드리다. 허 참, 헷갈리네.”


그러면서 혼자 손짓으로 미는 시늉도 해 보고 두드리는 시늉도 해 보았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그를 힐끗거리며 이상한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가도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지금 시 한 편을 두고 혼자 씨름 중이었다. 시의 내용은 이러했다.  


한가로이 혼자 머무니 함께하는 이웃도 드물고
閑居隣竝少
풀이 우거진 마당은 숲 속 오솔길로 이어지네
草徑入荒園
새는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어 있고
鳥宿池邊樹
스님은 달 아래 고요히 문을 두드리는구나
僧敲月下門


가도는 앞의 세 구절은 만족스러워지만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고(敲)로 할까, 퇴(推)로 할까 갈피를 잡지 못했다. ‘두드릴 고(敲)’를 쓰면 “스님이 문을 두드린다”가 되고 ‘밀 퇴(推)’를 쓰면 “스님이 문을 밀었다”라는 뜻이었다. 그때 높은 관리의 행차가 나타났다. 하지만 가도는 어떤 글자가 더 좋을지에만 깊이 빠져 앞에 누가 오는지도 몰랐다. 이윽고 제멋대로 가던 나귀가 행차를 가로막았다.


“무엄하구나!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행차를 가로막느냐!”


가도는 시종들에 붙잡혀 앞으로 끌려갔다. 다행히 그 관리는 유명한 시인 한유 1)였다. 가도가 길을 막은 사연을 이야기하자 한유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여보게, 그건 두드릴 고(敲)로 하는 편이 낫겠네.”

이 일을 인연으로 두 사람은 고삐를 나란히 하고 돌아가 함께 시를 논하며 친구가 되었다.


‘퇴고(推敲)’는 여기에서 비롯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이지만 ‘글을 쓸 때 여러 번 생각해 잘 어울리도록 다듬고 고치는 일’을 뜻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퇴고 [推敲] (공부왕이 즐겨 찾는 고사성어 탐구백과, 2016. 1. 15., 글터 반딧불, 황기홍)



달아래 스님이 문을 미는 것은 쓸쓸하고 두드리는 것은 왠지 미안한 느낌이다.

스님은 쓸쓸함보다 미안함이 편할까?


推이던 敲이던 글자 하나를 두고 머리를 맡대어 소통하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며칠사이 평균 백 명 내외이던 조회수가 늘어나더니 어제는 칠백에 육박했다. 오래 묻혀있던 글들을 찾아 읽어준 작가는 누구일까?  아무리 뒤져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전날 일어났던 사고를 글로 썼다. 여러 라이킷과 댓글을 받으며 감사한 마음이 충만했다. 얼굴도 모르지만 글을 통해 안부를 묻고 평안을 기원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우리 속에서 어떤 명작이 탄생할지 도 자못 궁금하다.


2023년에는 작가라는 이름표를 단것만으로  큰 소원을 이룬 셈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게으르지 말자고 스스로를 채근한다.


브런치북대상을 수상한 작가들에게 축하인사를 전한다.

심기일전하여 새 글을 쓰고 있는 작가,  또는 밀고 두드리고 있을 모든 브런치 작가님께 송구영신 인사를 대신하여 네이버글을 차용했다. 폐가 되지 않기를...


나도 이해가 다 가기 전에 졸작들을 퇴고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새해에는 더 진솔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작가가 되자라고 버킷리스트에 조심스러운 한 줄을 올려본다.

모두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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