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이준 도슨트 Oct 12. 2023

조선의 화공, 조선의 소, 중섭의 소

[이중섭]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소의 외침

이중섭, <흰 소 (1954년경)>


이중섭은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 지 1년 만에 일본에 건너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짧고 아쉬운 만남이었지만 가족들을 만난 중섭은 에너지가 넘쳤죠. 그리곤 통영에 돌아와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그의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이중섭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 소가 등장하죠. 이중섭에게 소는 오산학교 시절부터 그려 평생 가장 오랫동안 그렸던 소재였습니다. 유화로 완성한 소 그림만 스무 점인데요. 이중섭의 소는 저마다 조금씩 행동이나 색채는 다르지만 모두 강인한 힘을 내뿜고 있는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이중섭에게 소는 한국의 민족성을 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남덕에게 자신은 조선의 소를 그린다고 강조했고, 누군가 그의 작품을 보고 스페인의 투우와 비슷하다고 했다가 불같이 화를 낸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는 우리 민족성을 강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는데요. 실제로 이중섭 작품에는 대부분 서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사인은 멋스러운 한글로 적었습니다. 당시 일제의 창씨개명을 강요하던 시절이었지만, 꿋꿋이 이중섭은 우리 한글을 적습니다. 민족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황소는 격동의 참혹한 시대를 살아낸 우리 한민족의 정신력을 상징하는 동물이었습니다. 한편으론 그 시대를 몸으로 겪으며 살아낸 화가 자신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이중섭 화백은 조카에게 남긴 단 한 점의 자화상 외엔 자화상을 거의 남기지 않았는데요. 평생을 관찰해온 소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함께 담아냈습니다.


잿빛 배경에 당당히 서 있는 흰 소가 있던 작품 〈흰 소(1954년경)〉가 있습니다. 우직하면서도 성실한 면이 한국 사람과 닮았는데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소가 삐쩍 말라 있습니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주린 배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이중섭과 가족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매서운 눈매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게 모든 걸 꿰뚫어보는 우리 민족성을 담았는데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어떤 역경도 뚫고 나가려는 강인한 이들의 의지가 담겨 있죠. 이런 강인한 의지를 더욱 돋우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중섭도 황소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로서 자신의 의지를 다잡았던 걸까요? 이 시기 그만의 걸작들이 탄생합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결코 굴하지 않고 소처럼 듬직한 발걸음으로… 힘을 내 그림을 그린다오. 그대의 상냥한 편지만이 내가 매일 기다리는 나의 유일한 기쁨이라오. 그대 편지를 받은 날은 평소보다 몇 배나 그림이 잘 그려진다오.’

- 1954년 11월 21일,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나요.

아고리(이중섭의 별명)는 점점 더 힘을 내어 순조롭게 작품을 슥슥 그려내고 있어요.

나도 놀랄 정도로 작품이 잘 되어 감격스러워 가슴이 터질 것 같다오.

더욱 힘을 내어 추위에도 지지 않고 굴하지 않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전등을 밝히고 그림을 제작하고 있어요.’

- 1954년 11월경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가난에도 흔들이지 않는 우리 네 가족의 멋들어진 미래를 확신하고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요. 진정으로 사랑하고 더욱더 서로 사랑하며 하나로 녹아서 올바르게 힘차게 살아가요. 진심으로 나를 믿고 기뻐해줘요.’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하면 그 어디든 낙원이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