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과 이마트의 운명
깨진 유리창으로 본 이마트
며칠 전 시골에 갔다가 겪은 일이다.
장인, 장모께서 TV를 사고 싶다 하셔서 모시고 근처 이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거기서 이례적인 경험을 했다. 직원의 불량 응대가 좀 특별났다. 기억에 오래 남았고 또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첫 번째 상황이다. 두 분을 모시고 TV매장으로 가서 진열된 제품을 구경하면서 여러 상품을 살폈다. 삼성과 LG제품 중심으로만 진열된 듯하여 다른 회사의 제품이 있는지 마침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매장 전체를 돌며 고객 상담을 도와주는 직원이었던 것 같다.
“여긴 삼성과 LG TV만 진열되어 있나 봐요, 혹시 다른 회사 제품은 없습니까.”
“여기는 삼성과 LG 제품만 있으니 다른 회사 것을 사시려면 그거 파는 데로 가시면 돼요.”
순간, 나는 예기치 않은 직원의 답변에 놀랐다. 이러한 응대가 현실인가 싶었다. 직원이 어디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듯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매장 직원을 쏘아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리곤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갑작스레 나빠져 ‘지방의 중소도시에 오면 서비스도 중소가 되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두 번째 상황이다. 진열 제품을 두루 살펴본 다음 구입할 TV를 두 개로 압축하였는데 두 분께선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이다. 마침 주변에 직원이 있었다. 이번엔 아까 그 직원이 아니라 다른 직원이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가 제법 커 보이는 매장 직원이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연세가 들어 꾸부정한 모습의 두 어르신에게 내려보듯 얘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구매자가 노인이라고 무시하는 것인지 편하게 대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매장이라고 생각하면서 가까이 가자 그제야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조금 공손해진 모습으로 바뀌었다.
직장생활 전반을 우리 기업의 고객만족경영 정착을 위해 일해왔던 나로서는 착잡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서로가 어렵고, 또 온라인 쇼핑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와중에 오프라인 중심 기업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알겠지만 그렇더라도 고객에 대한 기본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한때 최고의 고객서비스를 구가했던 이마트에서!
고객만족경영이 붐을 이루던 시기에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한 백화점업계와 이마트를 위시한 대형 마트업계는 서비스혁신을 통해 고객중심 문화를 선도했던 산업이며 기업들이었다.
비록 지방 중소도시에서 벌어진 조그만 일이지만 귀경하는 내내 혹시 ‘깨진 유리창’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치 나의 책임인 양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마트는 롯데마트, 홈플러스보다도 역사도 깊고 규모도 큰 선도적인 유통 기업이다. 한때는 최고 성장성과 수익성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정용진 부회장의 다양한 혁신과 오픈 리더십으로 여러 차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2인 가구 비중이 확대되면서 대형마트 이용이 줄어들고 온라인 시장의 급속한 확대로 이마트는 위기를 맞이했으며 마침내 2019년 2분기에 이르러서는 사업개시 이후 최초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마트의 주가는 2018년 2월 28일 304,000원을 기록한 이후 계속 떨어지다 2020년 7월 16일 현재 113,000원으로 2년 5개월 전 대비 60% 이상 하락했다.
이러한 소비 패턴과 트렌드의 변화로 인한 어려움은 단지 이마트뿐만 아니라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업계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다.
오프라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마트는 대대적 투자를 통해 SSG닷컴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작년 초 오픈하여 온라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노브랜드, 일렉트로마켓, 몰리스펫, PK마켓 등 전문점을 강화했고 이마트24라는 편의점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투자와 고객을 끌어들이는 사업 전략으로 이마트는 2020년 하반기로 가면서 매출과 수익성이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전국 140여 개에 이르는 오프라인 매장인 이마트 본연의 대형마트 사업은 하락의 방향을 뒤바꾸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마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월계점을 시범적으로 리뉴얼하였는데 고객이 머무르고 싶은 체험형 공간으로 바꿨다고 한다. 기존 매장과는 컨셉을 차별화한 것으로 고객 반응이 좋으면 이를 다른 매장으로 확대할 것 같다.
아직은 더 지켜볼 일이지만 가만히 앉아 죽느니 바뀌어 가는 고객의 쇼핑 트렌드를 읽고 시도하는 새로운 변화는 업계 선도기업다운 움직임으로 고객으로부터도 긍정적인 반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을 거치면서 고객은 더욱 온라인으로 쇼핑을 확대하는 언택트(Untact)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온라인 시장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현재 61.6%에 이르는 1~2인 가구도 대형마트에겐 위협요인이 된다. 3~4인 가구가 주류였던 시대 대응했던 대형마트 컨셉으로는 성장이 꺾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오프라인 대형마트를 둘러싼 환경은 부정적인데 그럼에도 이에 절대적인 매출을 의존하는 유통 기업들의 어려움은 그런 면에서 갈수록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오죽했으면 이마트는 작년 10월에 6년간 재임했던 대표이사와 함께 11명의 임원을 교체하면서 글로벌 유통 컨설팅 경험이 있는 베인앤컴퍼니의 유통부문 파트너를 대표이사로 영입까지 했겠는가. 갑작스런 CEO의 교체는 이마트의 위기를 대변하는 듯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 사소한 것 한가지가 전체를 대변해서 보여준다는 것을 말하며, 관리하지 않고 방치되는 부정적인 요소들로 인하여 사업 전체가 악영향을 받거나 고객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사업환경이 어려운 시기, 생존을 위한 변화와 혁신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이 보이지 않은 공간에서 우연찮게 겪은 불량 서비스를 확대해석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부디 내가 본 것이 깨진 유리창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살펴볼 일이란 점도 분명히 하고 싶다.
이마트가, 아니 우리의 유통 기업들이 바뀌어 가는 시대와 고객의 흐름을 잘 읽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생존과 도약의 방향을 잘 찾아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