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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ug 09. 2024

괜히 온 것 같다. 뉴욕.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이미 내 앞에서 숱한 작품들이 까이는 모습을 봤기에 난 한 껏 쫄아있었다.


'기죽지 마. 철판 깔아. 헬조선에서 대학생활 4년, 회사생활 3년 반이나 했어. 교수 크리틱 하나에 무너질 일이냐?'

스스로에게 미리 방어막이라도 깔아주듯 속으로 생각했다.


교수는 내 작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K, so it seems like you've only spent like... what... about a couple hours while they spent days. black and white? no colors?"

[보자... 몇 시간 안에 만든 거지? 다른 애들은 아마 몇 날 며칠을 밤새고 작업했을 텐데. 그리고 색도 안 썼네?]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솔직히 다른 애들처럼 며칠씩이나 밤새고 괴로워하고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과제에 시간을 쏟지는 않았다.


그저 옅은 미소로 대답했다.

'굳이 여기서, 네 사실 그렇게 시간 들이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애매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 뿐이었다.


"Look at his work, look at those details and you just had fun with markers."

[쟤 작품 좀 봐봐, 디테일 보여? 너는 뭐 그냥 마커로 장난친 것 같은데?]


방어막으로 깔아 놓았던 얼굴의 철판은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고, 목에서부터 열이 올라 얼굴이 시뻘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는 젊은 교수로부터 듣는 공개 크리틱은 공개 처형과 같았다. 계속해서 모질고 거친 크리틱을 듣고 있으니 받아 칠 힘도 없이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


크리틱이 끝난 후, 나는 풀이 죽어 "Good" 벽의 동지들과 교실 한 구석에 찌그러져 다음 과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솔직히, 다음 과제고 뭐고 귀에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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