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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E Mar 01. 2021

겨울의 끝, (2)

오후 2시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 짤막하게 이별을 고했다.

‘OO야, 서로를 위해서 그만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잘 지내’ 얼굴을 보고서도 아니고, 전화를 한 것도 아니고

아침부터 보내오던 카톡 위에 지금까지의 시간을 덧칠하듯 쏴버리고 말았다. 친구들과 있어서 호기롭게 헤어지자고 한 것도 아니고, 밤새 생각해본 결론이 이것으로 밖에 나지 않았다.

24시간이 채 되기도 전, 다 끝나가는 너의 마음을 붙잡고 다시 잘해보자고 노력해보겠다고 한 사람은 두 사람 중 나였다. 노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수화기 너머의 너의 목소리를 듣고도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느낀 내 감정은 일단 너무나 화가 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 가슴에 모진 말로 못을 박았는데 왜 나는 그 상황에서 제대로 화 한번 내지 못했는가. 나 자신에게 먼저 화가 났다. 그 뒤의 연락은 대충 대답하며,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화가 감정을 지배하려 들자 술은 취하지 않았고, 취한 겉모습과 반대로 속은 아주 냉정하게 마음이 굳어져갔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늘 아침이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이 되었다.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이다. 


카톡을 보내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을 하고 있어야 할 너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에게 들으니 오늘은 날씨 때문에 연착이 되었다고. 그리고 카톡으로 이별을 고하는 건 아니라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차분하게 연락이 왔다. 사실 카톡을 보내고 나서 내 주변에 사람이 있어서 내 감정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나는 떨고 있었다.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게 남아있는 너를 대하는 게 너무 어려웠고, 내 상처가 크다고 생각해서 나도 더 이상 너를 배려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의 중간중간 소개해준 커플이 서로의 상황을 중개하기도 악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다 너와 짧은 통화를 했다. 차분한 너의 목소리, 격양된 나의 목소리. 

시끄럽게 내리는 빗소리에 내 격양된 감정이 조금은 감춰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나에게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아주 차분하게 물었고, 나는 감정을 꾹꾹 누르며 어제 전화 통화 후 느꼈던 감정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카톡으로 이별을 고하는 개똥 같은 나의 매너에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짧은 통화를 끝으로 몇 시간 뒤 다시 통화를 하자고 상황이 정리되었다.



전화를 마쳤을 때, 오늘 신고 나간 얇은 운동화가 다 젖어있었고, 신발도 몸도 성한 곳 없이 젖어있었다.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급하게 집에 들어와, 운동화를 씻고 샤워를 하고 몸을 정리했다. 그런데 뽀송해진 몸과는 다르게 마음은 축축한 상태 그대로, 아니 더 무거워졌다.



그래, 잠깐의 너의 목소리를 듣고도 이렇게 안심이 되는 나는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의 통화의 결말은 ‘그래 끝내자.' 이 한 마디를 더 듣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속 깊은 곳부터 무거워진 솜뭉치 가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는 상태로 만들었고, 내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아 이렇게 손만 움직여 글을 쓴다.

‘글을 쓰면 내 감정이 뭐라도 정리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의식의 흐름이 지나가는 대로 글을 쓰고 있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 조금 솔직해지자면,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 더 크다. 그런데 지금 끊는다면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좋았을 때의 행복도는 짧게 만났음에도 만났던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행복도가 컸다. 반대로 그렇게 빨리 불타오른 만큼 너무나 빨리 식어버린 너의 마음을 두 번이나 마주하다 보니, 그 상처가 쌓여 나는 이제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 이렇게 나쁜 감정 없이 서로가 차분하게 정리하고 각자의 성향에 맞는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굳게 가지고 너의 전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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