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 그리고 겨울의 끝(5)
2021/01/02
너와 처음 만났던 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떠올리면 나는 비를 떠올리게 된다. 소나기처럼 예상치 못한 영화의 한 장면의 영화 같은 마주침, 가랑비처럼 젖어가는 줄도 모르는 관계 또는 예정된 일기예보의 적당한 이슬비처럼 조금은 굳어있는, 그런 준비된 만남의 소개팅. 폭설이 내리는 겨울이지만, 이런 호우시절을 겪는 중이다 보니, 나에게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아니 정확히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계절과 날씨의 이름만큼 다양하다. 절기가 바뀌는 것은 정확한 날짜가 말해주지만, 우리는 그만큼 그 계절을 쉽게 체감할 수 없다. 1월의 추운 겨울 어느 밤, 나는 어느 계절의 비를 맞고 있을까.
비가 오는 날은, 땅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쿰쿰하게 올라온다. 너무 딱딱한 이 도시가 살아있는 땅 내음을 풍겨낸다. 어디든 비를 피할 수 있는 아늑한 곳으로 들어가고, 축축하게 젖어있던 것들이 뽀송하게 마르는 감각이 좋다. 나는 꽤 많은 사람들과 여러 가지 비를 맞아보았고, 언제나 맞을 수 없는 일기예보를 그래도 맹신하는 것처럼, 사람을 만나는 타이밍을 예상하곤 한다.
아, 이 시작은 가랑비인 줄 알았는데, 소나기인 듯하다. 그날 아침 나는 쨍쨍한 하늘을 보고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것을 알고도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우리가 만났던 이 겨울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축축함을 한 움큼 안고 있는 듯하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던 타이밍이 다르기도, 호흡이 다르기도 하여 소나기의 틈 속에서 우산을 살 타이밍을 놓쳐버린 줄 알았다.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말 소나기처럼 훅 들어온 너의 마음에 나는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그 새벽 마음을 확인하고, 대답을 원하는 너의 모습은 얼마 전 네가 구해줬던 아기 고양이처럼 부르르 떨고 있었다. 술김에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불안해하는 너를 안아주고 내일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너의 집 앞에서 먼길을 멀리도 돌아서 들어왔다.
다음 날 해지는 저녁, 한강. 너의 차 안에서 손을 포개 천천히 연인으로 잘 만나보자는 말로 우리는 시작했다.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가 예상했던 순간은 너에게 설렘이나 호감의 지점이 아니었고,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네가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 너의 언어로 안심이 되었다고. 같이 있으면 안심이 되는 그런 믿음의 정도. 그런 모습을 봐준 네가 고마웠고, 축축하게 젖어있던 공기가 어느새 뽀송하게 변해있었다.
이런 나와 예쁜 너와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이름을 만들어 갈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계절의 끝에 다가갈 이름이 너와 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은 그 마음을 모두 정리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