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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E Jan 20. 2021

다른 이름으로 저장

반려견, 아니 우리 가족 대니


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쓰는 툴은 어도비(adobe)의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이다. 같아 보이지만 아주 다른 두 프로그램은, 최근 몇 년 전의 버전까지만 해도 가장 중요한 ‘저장하기'에 다른 키를 썼다. 일러스트레이터(줄여서 일러스트)의 저장하기는 ctrl+ s키,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는 ctrl+shift+S키. 반대로 포토샵은 control+s 를 누르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가 되었었다. 몇 년 전인지 모르지만, 이 두 개의 헷갈림을 해결하기 전, 사전작업으로 둘을 같은 키로 맞추는 설정을 하곤 했다. 그 이유는, 저장하기는 히스토리를 전부 덮어쓰는 것이고,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는 그 순간부터 다른 시/공간으로 나누어져 저장하는 아주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조금씩 썼던 글감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고 퇴근길에 몇 번이나 글을 머릿속으로 다시 썼다.

그 이유는 오늘은 휴대폰을 두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평소 편의점을 갈 때에도 화장실에 갈 때에도 휴대폰을 가져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감각이 없었다. 지각할 만큼 늦게 일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멍하니 지하철에 탑승하고 나서야,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집에 두고 온 거 같네.' 하고는 출근길 흐름에 그대로 올랐다. 지하철부터 회사까지는 대략 45-50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계로 정확하게 계산하고 가다 보니 48분이 나왔다. 매일 출근길에 듣던 노래도 없었고, 일하며 듣는 노동요도 들을 수 없었다. 짬 내서 담배를 태우는 시간에도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하루가 이상하게 짧았다. 지하철로 퇴근하는 길에 꽤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 이 글과 같은 것을 4-5편은 쓴 것 같은데, 그 짧은 순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이 도시에서 내가 폭력적이라고 말할 만큼 다양한 감각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하철에 서 있는 동안 옆 사람의 영상이나, 지하철의 소리, 앞사람의 향수 냄새, 지하철의 요동 거림 다양한 감각들이 나를 치고 있었다. 평소에도 느끼고 있었겠지만, 이를 인지하기보다는, 친구들과의 전화나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나를 빼고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단 하루 아주 잠깐 내가 휴대폰을 가져온 것이 아닌데, 10년을 넘게 타고 다녔던 이 지하철의 노선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서 있을 때의 생각과 감각이 참 우습게도, 앞사람이 내린 자리에 앉게 되자마자, 동전 뒤집듯 쉽게 생각이 변하기도 했다. 눈을 감으니 다른 감각들이 편안하게 잊히고, 목도리 속에 아침에 뿌린 향수 냄새가 다시 올라오기도 했다. 웃음이 나기도 했고, 시계를 더 쳐다보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 보너스로 산 명품시계를 꽤 오랫동안 기분 좋게 응시하며, 레이싱 시계의 시간 기록 기능을 써보기도 했다. 보통은 아무 생각 없이 뜨드드득 거리는 베젤의 느낌을 느끼기 위해 돌려 보기만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가던 길 보다 훨씬 오래 걸린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대폰을 놓고 장시간 외출한 것은 몇 년 만의 경험인데, 이 이유는 사실 우리 가족, 반려견 대니 때문이다.

대니를 처음 본 것은 3년 전이다. 9살 대니는 아버지 동물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 동생이 이사를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이사 가는 집주인은 해외로 가야 했고, 주치의인 아버지의 의견은 멀리 나가면 대니가 아주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 타이밍에 이러한 서로의 상황을 모르던 우리는 이사를 준비하던 중 대니를 만나고 새로운 가족으로 대니를 맞이했다. 앙상하게 말라서 벌벌 떨고 있던 대니와의 첫 만남을 대니는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3년을 지내며 알게 된 것은 대니가 참 착하고 짖지 않는 아이라는 것이다. 엉덩이를 만져주면 좋아하고, 산책을 나가면 나이가 있음에도 폴짝폴짝 뛰며 뱅뱅 돌고 잡아보라고 애교를 부리는 것을 보면 ‘이렇게 귀엽고 예쁜 생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안아주기도 했다. 대니는 오랫동안 간과 심장에 지병이 있었다. 한 달 전쯤부터 대니가 설사를 심하게 하고, 구토를 하고, 등에는 피부가 괴사 하기 시작했다. 따로 살고 있는 아버지를 보는 것은 일 년에 몇 번 안되었는데, 불행히도 대니를 데리고 보러 가는 날이 많아졌다. 아버지와의 오랜 감정은 몇 년째 잘 풀고 있지만, 자주 보며 마주하는 것도 좋지만 대니가 아프다는 것은 너무 싫었다. 


대니가 어제저녁부터 몸에 모든 것을 토해내듯 또다시 구토와 설사를 시작했다. 그전부터 기력도 없고, 먹지도 않았다. 너무 걱정이 되어서 아버지한테 급하게 전화를 해서 아버지 병원으로 향했다. 똥 범벅인 대니를 안고 주사와 링거를 맞추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밤새 옆에서 어머니와 번갈아 간호하다 보니, 대니는 새벽부터 기운을 되찾았다. 지난 한 달 남짓동안, 나는 사실 대니에게 죄책감을 너무 많이 느껴서 바라볼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미안해서 계속 안아주기만 했었다. 나 바쁘다고 산책도 많이 못 시켜주고, 늦게 들어와서 씻고 그냥 자는 날도 있었고, 짧은 강아지의 삶 속에서 나는 그저 그런 두 번째 주인으로 저장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주인으로 다른 이름의 가족으로 우리는 살고 있는데, 그냥 저장하듯 덮어씌워 저장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살아가다 보니 그냥 사는 가족처럼 말이다. 대니를 바라보고 있는 새벽 내내 눈물이 날뻔했다. 하지만 어제 새벽은 울지 않고 대니가 에너지를 받을 수 있게 좋은 말을 해주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대니와 조금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달라고, 어머니 옆에서 같이 기도하기도 했다. 정성 어린 마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니는 오늘 하루 종일 기운 차리고 밥도 잘 먹었다고 했다. 


앞으로 대니가 나와 함께해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친구에게 이런 무거운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대니를 대해 주어야겠다고. 연민과 죄책감보다는, 응원과 사랑으로 대니의 옆에 있어주려고 한다. 그동안의 사랑과 미안함과 추억들은 그대로 두고, 또 다른 이름으로 대니가 마지막에 기억하는 나는 열심히 사랑해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다.


집에 도착해서 대니가 편한 얼굴로 자고 있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올라오는 감정을 꾹꾹 내리고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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