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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Min 민윤정 Jan 17. 2020

한 엄마와 딸, 미국 보스턴 단기 동반 유학기

좌충우돌 딸 데리고 단기 미국 유학기

*실명이 무진장 등장하는데, 아무 허락도 안 받았다. 좋은 얘기만 써서 일단 쓰고, 혹시 문제 있으시면 말씀 주세요!!!


2008-2010


회사에서 매년 본부장 중 한 명을 뽑아서 유학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내가 선정이 되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금융위기기 오면서 회사 사정도 여의치 않았지만 당시 회사 대표님이던 석종훈 님, 이사회 의장이셨던 최세훈 님, COO 셨던 문효은 님 결정으로 지원자가 되었다.


MIT 슬론은 MIT의 경영대학원이다. 그곳에 슬론 펠로우즈 프로그램은 1년 단기 과정으로 MS 나 MBA  학위를 수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문제는 영어였다. 토플 IBT 가 당시 스피킹이 강화되면서 난 2주에 한 번씩 무려 4번인가 5번인가 점수가 나올 때까지 시험을 쳤었더랬다. 토플 준비에 영어 인터뷰에, 추천서 준비에, 대학 성적 제출까지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고 다른 한국 대기업의 스폰서십 학생을 대학에서 떨어뜨려서 다른 후보자를 보냈다는 학교의 경고가 사실임을 알게 되고 정말 힘들게 준비했었더랬다. 당시 현업 직책이 있었던 나는 유학원이나 외부 도움을 받을 시간이 없었다. 준비요령은,


학교 admission 홈페이지를 찬찬히 세밀하게 읽는다.

주변에 해당 학교 졸업자를 컨텍해 admission 받은 노하우를 전수받는다. 당시 지금 마켓플레이스 파운더인 김현영 님이 자기 준비 폴더를 통째로 주셔서, 추천서니 에세이 작성에 큰 도움을 받았더랬다. 디앤샵(GS에 매각된 다음 쇼핑) 어머니 이숙희 님의 인터뷰 노하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일단 토플 점수가 없으면 지원이 안되기 때문에, 초기에는 토플에 집중, 이후 에세이 준비, 인터뷰 준비 순이었다. 대학 성적도 중요했다. 3.85/4.5 가 내 성적이었고, 이 중 디테일하게 전공과목과 이산치수학 점수가 A, A+ 인 것도 어필하기 좋았다. 이 점수가 있으면 GMAT 시험을 대체할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6개월가량 준비했던 것 같다. 막판에 다음 커뮤니티가 저작권 형사 소송에 연루되고, 검찰 조사를 받았던 기억도 난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아무튼 슬론 합격 소식에 벅차 하면서 학기 시작 전에 가서 영어 준비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붙은 후는 졸업이 문제였으니까. 합숙 형태로 인텐시브 영어 프로그램 운영 학원이 보스턴에는 여러 개가 있었다. 수배해서 한 군데를 예약을 하고 캐리어 하나 끌고 혼자 보스턴에 도착!


당시 라이코스에 다니던 김자영 님, 신승철 님의 따뜻한 환대 속에, 보스턴 생활을 꾸리다. 또 하나의 기회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우리 딸을 데려오겠단 계획이었다.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 무려 같이 와서 아이를 돌봐주시기로 해서 나는 한 두 달이었나 먼저 가서,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집, 차 등 생활여건 만들기를 했다.


아이 초등학교를 정하다

나는 차가 있어서, 우범지역이 아니고 걸어서 딸과 어머니가 학교에 갈 수 있고, 너무 한 인종만 사는 곳이 아닌 곳을 찾다가 알링턴 초등학교를 발견.

https://goo.gl/maps/1eTeY7LUi2koobni9 

아시안이 30%가량된다는 통계를 보고 초등학교를 정하고, 인근 깔끔한 아파트를 찾기 시작했다. 우체국, 스타벅스가 길 하나 건너면 있고, 고령층이 많이 사는 조용한 아파트였다. 천장이 높은 3 bed room.

내 학교가 차로 30-4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지만 조깅, 산책로로 15분 정도 초등학교에 걸어갈 수 있었고, 이웃 한인 어머니들이 가끔 라이딩도 많이 해주셔서 좋았던 선택이었다.

교통사고도 한번 있었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도 딸도, 우리 어머니도 멋있게 보스턴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학교가 3일 이상 쉬면 아이와 어머니와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여행도 이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뉴욕, 워싱턴, 나이아가라, 푸에르토리코, 플로리다 등등을 차로, 저가 항공기로 신나게 다녔더랬다.


미국 초등학교는 수학은 정말 쉬운 편, 읽기 량과 토론, 운동량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영어유치원부터 잘한다 잘한다 했던 우리 딸이었는데 처음 학교에 가니 ESL을 들으라고 해서 우리 딸이 자존심 상해하던 기억이 난다. 애프터스쿨에서 과학실험, 운동, 패션쇼, 만들기,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등 다양한 활동을 시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아이가 친구들을 사귀게 된 계기가, 할머니가 샌드위치 대신 밥 먹으라고 김밥을 자주 싸주셨는데, 아이 친구들이 코리안 초밥이라며, 가끔 한 개씩 주면 맛있게 먹으면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고 했다. 두 번째 계기는 학교에서 자선 패션쇼를 아이들과 애프터스쿨 선생님이 준비해서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딸이 자원을 했었더랬다. MIT 슬론에서 Cultural party 때문에 싸왔던 한복이 역시 예뻐서 아이들 사이에 대히트. 그때 만난 독일에서 온 친구, 알링턴 토박이 등 은솔이까지 5명이 5 musketeers라고 온 운동장을 뛰어다니면서 놀던 기억이 난다. 생일파티도 서로 초대하고 죽고 못 살더니, 유학생활 끝나고 이제는 소식이 끊겼다고.

생일파티에 처음 초대를 받고, 문화를 모르니, 당황했다. 아이들이 주로 뛰어 놀기 때문에 장난감도 간단한 인형, 간단한 액세서리 같은 걸 사주면 되었고, 애들을 데리고 가서 생일파티 장소에 데려다주고 언제쯤 데리러 가면 되는 식이라고 주변분에게 귀띔받고 참석. 당시 한국에서는 생일파티를 패밀리 레스토랑 등 이런 곳에서 하고 엄마들이 다 같이 참석했었는데. 알링턴 엄마들은 쿨했다. 아빠나 엄마가 아이 drop off 하고 반갑게 인사하고 언제쯤 데리러 오면 되니? 물어보고 끝! 처음 딸을 초대해준 아이는 Samantha 였는데 같이 팝콘에 피자 먹고 그 조그만 극장에서 만화영화를 봤다고 했었다.


음식도 간단히 피자, 음료수, 과자 정도 준비하면 끝이었다. 애들은 파티 주최하는 부모가 책임지고 보호하다가 애들 데리러 오면 끝. 우리 딸은 어린이박물관(말이 박물관이지 키즈카페 같은 곳) 안에

소셜라이징 룸이 있다고 해서 빌려서 피자, 과자 늘어두고 파티. 그 놀이터에서 뛰고 구르고 놀았더랬다.

아이들이 사실 소박했다. 컵케이크 하나면 세상 행복해했고,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 학교 안에서 뛰다가 허그하다가 넘어졌다가 깔깔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미국 초등학교 아이들 문화는 일단 아이들이 몸으로 놀았다. 우리 딸도 철봉에 매달려서 놀다가 팔을 다친 적도 있었고, 공부만큼이나 운동도 잘하고 학교 활동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어릴 때부터 강조되는 식이었다. 핸드폰 가진 아이들이 거의 없었고 게임에 빠진 아이들도 전혀 없었다. 시골 학교라서 그런지, 철봉에 올라가고, 정글짐에 매달리고 점프하고, 갑자기 상황극(난 musketeers red, blue) 이러면서 유치하게 놀았다.


숙제도 많이 없었고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없었다. 읽기 리스트는 있어서 책을 엄청 읽었던 것 같다.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수배해서 알아보니 한국어 동화책을 주에 몇 권씩 빌려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딸은 한주에 2-3권 한글 동화책, 도서관에서 빌려온 영어책 2-3권씩은 읽었던 것 같다.


영어가 빨리 늘었던 딸은 아무튼 몇 가지 이벤트로 좋은 친구들이 제법 생겼더랬는데, 아이가 기특하게도 한국이나 일본에서 전학 와서 말도 서툴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애들은  챙겨서 자기 친구들과 놀게 하곤 했었다. 지나가는 말로 서로 돕고 챙기자 얘기했었지만 스스로 그런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이들이 일단 어리고 노는 게 뛰고 태그하고 이런 식이었으니 가능했지 않았을까?

한국에 돌아올 때 환송파티를 한 일본인 어머니가 해주셨는데 그 얘기를 하셔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셔서 참 뿌듯했더랬다.


맺으며: 조기유학에 대하여

나는 기회가 되고, 여력이 된다면 찬성이다. 단, 부모나 완전 아이 편인 보호자가 같이 간다는 전제로.

아이와 살면서 난, 우리 딸이 운명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때로는 냉정하고, 이기적이고, 가끔 막 돼 먹기도 하고, 순수하고, 애처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딸과 좌충우돌을 겪으며 돈독해진 면도 있고, 이 짧은 유학이 아이의 향후 진학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아이에게 학원에서 학원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경험을 주지 않은 것도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굉장히 다양한 문화와 인종과 사람들과 지내는 경험을 준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다음 편에는 제주 국제 학교 NLCS 도전과 적응기를 써보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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