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건 사야 해!
애호박이 990원이다!
나도 모르게 또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것도 2개나.(최대 담을 수 있는 수량 2개)
얼마 전에 다른 마트에서 세일한다고 2개 세트에 1980원이라 사놓은 거 같은데.
기억이 흐물흐물 확실하지가 않다.
친정엄마가 오셨을 때 나물로 하나 해치우지 않았나?
애매모호한 내 기억력을 조작하고 이내 사는 걸로 마음을 굳힌다.
집에 도착해 보니 역시 2개가 고스란히 냉장고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애호박이 총 4개가 되었다.
아... 4개면 좀 많은데..
잠깐, 나는 왜 이리 애호박에 집착하는 걸까?
하긴 굳이 애호박이 아니더라도, 다른 채소가 또 세일을 하면 이내 충동구매를 했을지도 모른다.
지역 맘카페에 애호박이 쌀 때 쟁여서 냉동실에 소분하는 팁이 인기글에 올라왔었다.
된장찌개용, 볶음밥용, 나물용.
분리해서 야무지게 썰어놓는 거다.
하지만 나는 샀을 때 다 먹어치우자 주의여서 냉동실로 간 적은 거의 없다.(소분하는 게 귀찮은지도..)
애호박 가격에 예민한 건 나뿐만이 아니구나 맘카페 엄마들과 동료애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결혼한 지 1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주부’라는 단어가 무섭다.
그 이름에 어울리게 요리도 뚝딱뚝딱, 집안 살림도 반짝반짝 빛나게 해야 할거 같은데
나는 살림에 영 소질이 없는 건가.
두 사내아이들이 어질러놓은 거실 가득한 로봇들을 보면 살포시 눈을 감아준다.
우리 집은 TV에 나오는 화이트하우스가 아니란 걸 인정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한 가지 잘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때그때 마트에서 할인하는 상품들을 잽싸게 겟하는 능력이다.
이사오기 전 살던 아파트 앞에 대기업 마트가 있었다.
오후쯤 가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들을 40% 정도 세일가를 붙여서 한 곳에 모아둔다.
나는 일단 마트에 입성하면 그 장소로 직진한다.
내가 원하는 식재료들이나 원하는 가공식품들을 만났을 때 그 짜릿함이란.
누가 먼저 가져갈세라 보는 즉시 장바구니에 넣는다.
마트 세일상품을 못 만나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기운이 쭉 빠져버린다.
술, 담배만 중독되는 게 아니다.
마트 할인도 중독이다.
주부라는 타이틀에 맞게 나는 아낄 수 있는 영역에서는 최선을 다한다.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고정지출비는 손을 대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애호박 990원을 보면 눈이 뒤집히는지도 모르겠다.
당분간 집에 반찬들이 애호박일 거 같다.
자장면 한 그릇에 8천 원 하는 고물가 시대에 990원이 주는 소소한 행복이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요즘 머리에 많이 주입시키고 있다.
멀리서 찾으려니 안 잡힌다.
코앞에 있는 행복이라도 잡아야 내 것이 된다.
그래서 오늘 내가 잡은 애호박 990원은 찐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