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알고싶습니다.
때는 대학교 2학년, 수업이 지루해 자체휴강 생각만 하던 철없는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정발산역 1번 출구 앞엔 항상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나 정장을 차려 입고 대단한 걸 이야기하려는 듯 다가온다. 그러나 고작 팜플렛을 내밀며 "예수님 믿으세요!" 를 외치는 게 끝이다. 이를 매일매일 반복한다. 예수님을 존경하지만 매일 이 곳을 지나가며 다소 지겹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 역시 지지 않고 속으로 외쳤다, "혹시 마케팅이 뭔지 모르세요?". 이들이 내가 교회에 가야하는 그럴듯한 설득력이라도 보였으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나도 모르게 마케팅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땐 마케팅이라는 게 단순히 티비 광고나 영업으로 물건을 파는 게 아닌가하고 막역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생 땐 마케팅원론을 배웠으니 교환을 창출하는 모든 과정이라는 것까진 이해했다.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마케팅이란 무엇인지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심지어는 길을 가다 "세상만물이 마케팅인데??" 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으나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아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그 당시의 나만이 알 것이다.
현재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은 '욕망을 이루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음료 브랜드 코카콜라를 떠올려보자. 길을 가다 아무에게나 코카콜라를 홍보 해보라고 한다면 음료의 맛, 청량감, 시원함을 주로 내세울 것이다. 당장 목을 축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콜라를 마시면 갈증이 해소될 거란 믿음을 준다. 실제론 콜라의 당분 때문에 더 목이 마르지만 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갈 수도 있다. 사실 코카콜라는 단순히 맛이나 기능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하는 즐거움’, ‘행복한 순간’, ‘추억 속의 따뜻한 기억’ 같은 감성적 가치를 연결한다.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보이는 코카콜라의 연말 광고를 떠올려 보자. 캐롤이 울려퍼지며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가족과 함께 콜라를 마시는 장면은 음료 자체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망인 ‘소속감’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코카콜라의 마케팅은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함께 판다. 이처럼 마케팅은 제품 그 자체를 넘어서, 사람들의 내면 깊은 욕망과 감정을 읽고,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행위이다. 그래서 내가 되고 싶은 마케터는 "이걸 마시면 당신도 저 따뜻한 풍경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위 내용까지가 그동안 내가 생각하던 마케터이다. 그런데 위그로스의 마케터 홍인범 님의 회고록을 읽고 나니 내 생각의 한계점이 보였다. 믿음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으나, '어떻게' 설계할 거냐는 다른 문제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동안 감에 의존하는 안일함에 기대고 있었다. 그래서 홍인범 님의 회고록 속, 매일 스스로에게 던졌다는 질문들을 보며 뜨끔했다. "이 액션이 어떤 가치를 만드는가?", "실패한 시도는 어떤 전제부터 잘못되었는가?". 나는 내 사고에 대해 이렇게까지 깊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믿음을 설계한다는 건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을 꾸며내는 게 아니었다. 고객이 왜 이탈하는지, 어디서 반응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코카콜라가 주는 마법 같은 믿음도, 그 이면에 치밀한 문제 정의와 분석이라는 근거 아래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