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襟度)의 정치를 꿈꾸며

< 라라크루 화요갑분글감 - 금 >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화요갑분글감 2025.05.27

< 금 >


출근하는 남편을 따라나서서 사전투표를 했다. 먼저 투표를 끝내고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의아해했다. 기표소에서 왜 그렇게 한참을 머물렀느냐고, 설마 막판에 마음이 흔들리기라도 한 거냐고 말이다. 그럴 리가. 오히려 반대였다. 혹시 소중한 내 표가 무효표가 될까 봐 신중하게 도장을 찍느라 그랬다. 투표용지를 접다가 인주가 여기저기 묻을까 봐 조심을 떠느라 그랬다. 처음 겪는 선거가 아닌데, 이번엔 그랬다.


토론을 가르치러 학교에 가면 정치 문제로 토론하자고 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작년까지는 빨간당 파란당으로 토론해 보자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계엄, 탄핵을 입에 올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그러는 학생도 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어 안달 난 학생도 있다. 그럴 때 난 이렇게 말해준다.

"정치, 종교 문제는 가족들과도 이야기 나누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토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저는 세상 모든 문제는 토론의 무대 위에 올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대로 공부해서 이야기 나누어야 합니다. 잘 모르고 토론할 때 싸움이 납니다. 어떤 문제든 잘 알게 되면 서로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죠. 아직 우리는 정치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오늘은 힘들겠습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핑계는 아니다. 타인과 정치에 관해 토론하기에는, 우리의 지식이 편향되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알아보고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채 이야기 나누다 보면 자신의 선호에 따라 상대를 탓하고 비방하는 일에만 열을 올리기 십상이다. 결국 서로 기분만 상하고 "몰라 몰라. 피곤해. 난 정치엔 관심 없어."라는 말로 일축하며 대화를 끝낸다. 여태 정치얘기만 해놓고 정치에 관심이 없다니, 아이러니다.


수업 때마다 학생들에게 대선 토론회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래의 유권자로서 리더를 뽑을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써서 볼 것인지를 염두하면서 보라고 말이다. 설득의 3요소인 로고스(논리, 이성), 에토스(신뢰, 윤리), 파토스(감정과 공감) 관점에서 각각의 후보를 평가해 보라고 주문했다.


각 후보들은 경제, 사회, 정치, 국정 전반에 걸쳐 사실, 통계, 전문가의 견해, 논리적 추론과 같은 객관적 증거들을 충분히 사용하여 토론하였을까?

각 후보들은 자신들이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며 인품이 훌륭하고 도덕성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줬을까?

각 후보들은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을까?


어느 것 하나 충족되는 장면이 없었고 하나라도 충족하는 후보가 없었다. 오히려 회가 거듭될수록 실망은 절망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절망의 끝에서 정치를 향한 관심의 스위치를 꺼버릴지도 모르겠다. 원래도 관심 없었는데, 이제는 지긋지긋해서 쳐다보기도 싫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는 계속 정치 얘기를 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정치는 절대 우리의 삶과 분리할 수 없다. 사람들도 다 알면서, 말로는 맨날 관심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짝이 된 남학생이 책상 한가운데에 금을 그었다. 넘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도 놨다. 나라고 가만히 었겠는가. 너나 넘어오지 말라며 응수했다. 그렇게 서로 날카로워져 있던 어느 날, 나는 부주의하게 금을 넘었고 짝꿍은 연필로 내 팔뚝을 내리찍었다. 아직도 내 오른쪽 팔뚝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연필심. 그 친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날을 기억은 할는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는지도 궁금하다. 그때는 왜 그렇게 금이 중요했던 걸까.


지금 우리의 정치도 오래전 나처럼 유치하다. 있는 힘껏 깊고 진하게 금을 긋는다. 금 건너편에 서있는 이들을 내내 째려보다가 금을 넘으려고 하면 할퀴고 때리고 찍고 물어뜯는다. 정가운데에 금을 그어놓고도 네 쪽이 더 넓네 우리가 더 좁네 하며 끝도 없이 싸운다. 서로의 팔에 수십 수백 개의 연필심을 꽂으면서 말이다.


요즘 학교 책상은 모두 1인용이다. 금을 넘었다며 싸울 일이 없기도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이다. 필요한 경우 두 명, 네 명, 다섯 명, 여섯 명끼리 모여 모둠을 만들 수 있다. 금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만든 책상 위에서 머리를 맞댄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의논해 보세요~"라고 했을때, "얘들아~ 이리 가까이로 와~ 머리를 맞대야 한대~"라며 말하는 아이가 있고 그 말에 얼른 모여 머리를 모으는 아이들을 보면 그 순수함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의 정치도 이랬으면 좋겠다. 서로의 금을 넘나들었으면 좋겠고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다. 진하고 깊이 파였던 금이 서서히 옅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금도의 정치를 꿈꾸는 건 과한 욕심일까. 금도(襟度)란 옷깃의 정도를 의미하는데,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을 뜻한다. 옷깃이 넓은 만큼 많은 것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싸울 때는 객관적 사실과 합리적인 논리로 격렬하게 싸웠으면 좋겠다.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치열한 질문과 답변이 오간 끝에 서로를 품을 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늘려갔으면 좋겠다. 정치에 관심 많은 우리 국민들에게, 조금은 달라진 정치판, 금도의 정치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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