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걸 꼭 해봐야 아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일화 중 "이봐, 해봤어?"라는 질문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짧은 이 말은 산업화 시기 현실과 몸소 부딪혀야 했던 선배들의 자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과학, 공학 연구 과정의 본질에도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재료공학을 전공하며 연구를 하고 있다. 재료공학은 물질의 구조와 특성, 그리고 그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정 목적에 적합한, 더 나은 재료를 만들어내는 학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먼저 가설을 세운다. 훌륭한 선배 연구자들이 수립한 이론을 바탕으로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실험을 설계한다.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결과를 통해 다시 예측한다. 이 순환은 과학적 탐구의 기본 과정이자, 공학적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론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특히 재료의 세계는 작은 변수 하나에도 크게 반응한다. 재료 합성 공정에서의 미세한 온도 차이, 반응 환경의 사소한 변화, 혹은 실험자의 손끝 차이 하나가 결과를 뒤바꾼다. 이론적으로 모든 변수를 통제한다고 해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이럴 때, “이봐, 해봤어?”라는 말이 크게 공감된다. 책상 위에서 수많은 논문들을 통해 수백 번 예측해도, 결국 몸으로 부딪혀야만 얻을 수 있는 답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연구 과정에서 이를 실감한 적이 많다. 특정 재료를 합성할 때, 이론상 최적이라 믿었던 조건이 기대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교과서와 논문을 아무리 읽어도, 실험이 필요한 순간은 반드시 온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얻은 경험은 이론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틈을 메워준다.
그러나 연구를 하다 보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그걸 꼭 해봐야 아나?"
때로는 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반응 온도를 10도 높였을 때 일어날 변화를 짐작할 수 있고, 해당 재료를 전자 소자로 만들었을 때의 특성을 이론적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이런 합리적 추론의 과정이 결국 분석적 사고력을 길러주고 연구의 효율을 높인다.
당연하게도, 결국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태도의 균형이다. "이봐, 해봤어?"라는 적극적인 추진력과 "그걸 꼭 해봐야 아나?"라는 신중한 추론이 겸비 되어야 한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영역이 분명히 있고, 해보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 영역도 분명히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면 연구는 정체되거나, 비효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방향 없는 실험은 의미를 잃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이론에만 의존한다면 현실의 복잡성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세계를 다룬다. 그러나 해보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 나아가 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과학, 공학 연구의 목적일 수 있다.
정주영 회장의 짧은 질문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이봐, 해봤어?" 때로는 답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걸 꼭 해봐야 아나?" 더 깊이 사고하고,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