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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Nov 24. 2020

시민의식에 대하여

민주사회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구한다. 시민의식은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시민의 권리에 대한 주장은 진압의 대상이었다. 시민권의 제한이 '한국적 민주주의'의 요체였고, 권리의 주장은 '반체제적'이고 '불온한' 생각과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반면에 시민들은 갖가지 의무들에 대해 조건 없는 복종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 의무는 시민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것을 넘어 권위주의 체제를 지탱하기 위한 억압적 장치들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군관민'으로 표현된 것은 다름 아닌 권력의 서열이었고 군대는 효율성(?)의 상징이었다. 군대식의 '빨리빨리' 문화는 이런 연고로 이 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문제는 그 '빨리빨리'에는 '대충대충'이 전제된다는 것이었다.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권위주의에 터 잡았던 시민권에 대한 억압 기재들은 하나 둘 사라지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권위주의의 잔재들이 살아남아 생각의 한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한 의식의 잔재는 생각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 속에 기웃기웃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초격차 시대라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도 의식의 일부는 20세기의 냉전시대에 머무르며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식은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표현하는 기본적인 에티켓에서부터 공동체를 훼손하는 이기심에 터 잡은 부조리를 배척하는 것으로까지 이른다.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거나 교양이 없는 것에 그치지만 부조리는 각종의 권력에 기생하고 균형을 파괴한다. 이러한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시민단체다. 그렇기에 시민단체의 활동가는 공동체에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의지와 도덕성을 겸비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감시에 필요한 전문적인 역량도 갖춰야 한다.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시민단체는 시민의 권리의식을 고양하고 숨겨진 부조리를 찾아내 드러나게 함으로써 그 뿌리를 마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가 이 만큼 성장하고 성숙하는 데는 시민단체의 숨은 공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단체가 역량을 발휘하면 영향력을 얻게 되는데 이 영향력이 권력을 지향하게 되면 시민사회는 정치단체로 변질되고 만다. 시민단체 출신의 활동가가 정계에 입문하는 경우에도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 해당분야에서 오랜 기간 봉사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것이 권력화 되는 것은 새로운 부조리와 불균형의 매개가 되기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요직에 근무하던 사람들에 대해 일정기간 자신이 간여하던 분야로 이직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과 유사한 규제의 도입도 생각해볼 일이다. 시민단체 출신들이 정권에 편승하여 공공기관의 요직에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일은 묵묵히 헌신하는 활동가들을 배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스스로는 공정성에 기반하여 소신 있게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그렇지 못한 사례들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시민단체라고 묶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단체들도 시민단체를 표방하는 경우들이 있다. 특정 이익단체를 대변하거나 정치적인 이념을 행동화하는 경우들이다. 이들은 시민공동체의 발전이나 시민의식의 고양과는 동떨어져 특정 집단의 이해와 정치적 책략에 동원된다. 시민사회에 노이즈와 같은 존재들인데 버젓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간다. 세금을 내는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 중에 하나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영역이다.




무엇보다도 시민의식의 주인공은 시민들이다. 지켜보면서 눈살을 흘기는 것에 그치기보다는 '행동하는' 시민으로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나서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들이 발걸음을 붙잡겠지만 굳이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서 개입할 수 있는 방법들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활영역 안에서 부조리에 협력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보고도 눈을 감는 것은 수동적으로 부조리에 동역하는 일이다. 시대의 숙제를 제 어깨에 다 짊어질 수는 없겠지만 후대의 숙제를 다소나마 덜어내는 일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작은 돌부터 하나하나 치우다 보면 어느덧 태산 같은 부조리도 설 자리를 못 찾게 되는 것이다.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그 현장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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