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름방학은 끝났지만 여전히 문틈 사이로 뜨거운 열기를 가득 담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선생님은 여름 방학 동안 1학기, 아이들과 함께 했던 따뜻한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았습니다.
개학 첫날, 방학 내내 머리를 점령하고 가슴을 뛰게 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환한 웃음과 "보고 싶었어"라는 말과 함께 반갑게 맞이합니다.
반가워하는 선생님과 달리 아이들은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꾸벅 인사만 하고 대면대면 교실로 들어섭니다. 선생님 옆에서 조롱조롱 매달리던 아이들이 그 사이 훌쩍 커버렸습니다. 아무 말 없이 의젓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들을 보니 기특하면서도 아쉽습니다.
개학 후 나흘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방학의 여파가 남아있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찾아갑니다.
오늘은 다음 주에 있을 '친구 사랑의 날'을 맞이하여 친구 사랑 홍보물을 만들어 봅니다. '친구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형식은 자유입니다. 포스터, 만화, 표어, 입체작품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해 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고민의 시간에 빠져듭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바라만 봐도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어보라고 독려해 봅니다. 저마다의 생각을 마무리한 아이들은 각자의 작품 활동에 들어갑니다.
저는 작년에는 1학년 담임을, 현재는 6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양 극단을 달리는 학년을 연이어 맡다 보니 그 차이가 여실히 느껴집니다. 성인의 6년과 아이의 6년은 비견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막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 시작한 여덟 살 아이들이 6년 만에 이렇게 다채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친구 사랑을 표현하는 예쁜 문구들이 아이들 책상을 점점 채워갑니다.
-시든 꽃에 물을, 친구에게 우정을
-친구, 소중히 대해주세요
-그냥 있어도 함께여서 좋다
-친구야! 시간이 가고 있어. 넌 나와 무엇을 할래?
-서로의 손이 닿을 때 우리는 가장 빛나
반짝이는 아이들의 생각이 예뻐 선생님도 농담 한 스푼을 섞어 말을 이어갑니다.
-너희들 작품을 보니, 선생님도 정말 친구 생각이 난다. 초등학생 때 친했던 친구가 그리워 눈물이 나는데?
말을 마치며 눈가도 슬쩍 닦아봅니다.
항상 선생님 말을 되받아 치는 희재도 농담을 잔뜩 섞어 우는 척하는 선생님을 달래 봅니다.
-에이, 선생님. 우리가 선생님 친구잖아요. 선생님 친구가 이렇게 많은데요?
아이의 말에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한바탕 크게 웃어봅니다. 너희와 나는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라고, 선을 넘지 말라는 이야기를 3월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 왔습니다. 방학 동안 키만 큰 게 아니라 말솜씨도 쑥 자라온 희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어댑니다. 그 모습에 선생님도 뼈가 있는 농담을 이어갑니다.
-아, 그래서... 네가 내 친구라서 말을 그렇게 안 듣는구나.
-에이, 선생님! 친구 중에 말 안 듣는 친구도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요. 어떻게 친구가 다 말을 잘 들어요?
3월 첫날, 선생님 눈도 못 마주치던 희재는 배시시 웃으며 넉살을 떨어댑니다. 말문이 막힌 선생님을 앞에 둔 채, 희재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작품에만 열중하며 콧노래만 흥얼거립니다.
친구 같은 학생이라, 제 인생에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 새롭게 하나 늘어갑니다.
선생님 세계를 넘나들기 시작한 걸 보니 우리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나 봅니다. 2학기에도 말 안 듣는 친구 같은 아이들과 잘 시작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