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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회장, 아프지 마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올해 아이들은 유독 결석이 잦은 편입니다. 아파서 결석하는 아이부터 체험학습으로 결석하는 아이까지 최근 반 전체 학생이 등교한 날이 한 달 중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태린이가 결석했습니다. 태린이는 2학기 회장입니다. 저는 임원을 많이 활용합니다. 수업이나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무슨 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회장!"을 불러댑니다.


2학기 임원들은 선생님의 이런 성격을 알고 지원했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부여합니다. 2학기 임원선거를 마치고 태린이에게 미리 안내도 해 두었을 정도입니다. "이제부터 선생님은 네 이름 마르고 닳도록 부를 거야."라고요.


2학기 회장 아이는 본인의 위치를 알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아이입니다. 혹여나 힘들지 않을까 은근슬쩍 물어보면, 본인이 지원했으니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언제나 교과서처럼 대답합니다.


그런 아이를 보니 선생님도 바라는 게 점점 많아집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님의 요구사항이 계속 늘어납니다. 결국 태린이도 회장의 무게가 많이 버거웠나 봅니다. 어느 날은 "선생님,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열세 살이에요!"라고 입을 삐죽 내민 채 불만 섞인 투정을 부려 봅니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완수하지요. 이런 아이의 모습이 예뻐 2학기에 선생님은 유독 회장을 더 찾았습니다.






그런 아이가 오늘 처음으로 결석을 했습니다. 회장이 없으면 순서에 따라 여자 부회장이 회장의 모든 역할을 대신합니다. 소리 없이 교실 구석구석을 챙기는 마음 따뜻한 아이이지만, "혜린아!"라고 회장 대신 끝없이 불리는 자신의 이름이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점심시간 제 앞에 앉은 혜린이가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선생님, 저는 태린이가 회장이어서 정말 든든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 회장이 모든 일을 먼저 다 나서서 해 준 것 같아요. 태린이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요.


항상 군말 없이 책임을 다하는 친구의 빈자리가 혜린이에게 크게 느껴졌나 봅니다.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니 이름을 부르기 미안해집니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가니 교실에는 한바탕 다툼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밥을 빨리 먹는 남자 부회장 아이가 회장 대신 교실을 지키던 중 여기저기 다툼과 고성이 오갔나 봅니다. 희재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곧장 다가와 호들갑스럽게 있었던 일을 상세히 전합니다.


밝고 해맑은 미소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지만, 항상 촐랑거리는 희재의 말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희재를 좋아하지만 희재가 하는 이야기는 웃음으로 가볍게 넘겨버리기 일쑤입니다. 선생님이 오기 전 희재도 교실 상황을 정리하려 나서 보았지만, 자신의 중재가 먹히지 않는 교실 상황이 버거웠나 봅니다.


선생님이 나서 다툼을 정리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태린이가 있었다면 달랐을까요?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태린아'라고 회장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립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니 어느덧 하교 시간입니다. 집으로 출발하기 전 혜린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선생님, 내일은 태린이 오겠지요?"라고 간절한 표정으로 물어봅니다. 모르겠다고 답은 하지만 사실 아이보다 선생님이 더 회장을 기다립니다.



다음 날, 태린이가 교실에 들어섭니다. 여전히 아픈 기운이 남아있습니다. 소리 없이 씩 웃는 아이 특유의 웃음이 얼굴에서 사라졌습니다. 안쓰러워 오늘은 아이의 이름을 입 안으로 삼켜보지만, 태린이는 그 와중에도 평상시 자신이 했던 일을 찾아 묵묵히 해나갑니다.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안타까워 아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마음을 건네봅니다.



-태린아, 네가 없는 동안 교실이 텅 빈 것 같더라. 선생님 어제 너 보고 싶어서 울 뻔했어. 이제 아프지 마. 건강해야 해.



선생님의 과장 섞인 고백에 아이는 소리 없이 배시시 웃으며, 짧게 '네'라고 답해줍니다.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어야,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아이들이 보여준 신뢰와 믿음에 선생님도 아이들을 따라 함께 걸어가고 있었네요.


교실은 항상 선생님이 먼저라고, 제가 먼저 아이들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몸과 마음이 한 뼘씩 자란 만큼 아이들도 선생님 자리에서 역할을 나눠지고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교육철학 시간에 배운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교육은 교사와 아이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당시 저는 이 말이 참 와닿지 않았습니다. 교육학자들의 몽상 속에 만들어진 이상적인, 그저 허울뿐인 말이라 빈정거렸지요. 그런데 오늘 그 말의 의미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합니다. 교실은 선생님이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 만들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교실은 아이들과 선생님의 상호작용 속에서 함께 만들어지는 곳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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