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경 Oct 27. 2023

꼭 같이 꽃같이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몸이 먼저 살아내고 뒤늦게 이해의 시간들이 따라왔다. 후회만 남은 과거는 다독여 돌려보내고 불안하기만 한 미래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 어떤 의식을 치르듯 화해하는 마음을 담아 과거와 미래를 채색하자 지금 현재가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낸다.

미움, 원망, 우울 같은 감정은 사는 게 힘들어서 생겨난 부속물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둠의 장막을 거두어 내니 행복, 사랑, 웃음처럼 그것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란 걸 알겠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화해할 수도 없었던 마음은 세상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키워낸 불행이다.

봄이 오기도 전에 작업실 화단에 연하디연한 연두색이 삐죽 보인다.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자세히 보아야만 새싹인지 알 수 있다. 뭘까 이 존재는 생각하다 땅속에 쑤셔 넣은 것들이 생각났다. 씨앗이 생기거나 뿌리를 얻으면 한 뼘도 안 되는 작업실 화단에 마구마구 다 찔러 넣고 돌아섰다. 나오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했다. 심는 방법이나 특별한 관리 같은 건 염두에 없었다. 겨우내  화단은 눈이 쌓이거나 꽁꽁 얼어있거나 했고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아무렇게나 쑤셔 박힌 것들은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긴 긴 시간을 추위와 싸우며 버텨내고 파릇하게 얼굴을 내밀다니 잡초면 어떻고 풀이면 어떠랴, 기특한 생명이다. 정작 선물 받은 비싼 금전수는 작업실 안에서 귀하디 귀하게 대접을 받아놓고는 얼어 죽어 버렸는데 내팽개친 생명들이 강한 기운을 내뿜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화분에 있던 금전수는 혼자라 더 추웠던 건 아니었을까, 같이 버텨줄 친구가 없어 너무도  외로웠고 힘들었는데 작은 화단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씨앗들과 알뿌리들은 꼭 같이 붙어서 껴안은 채 함께 지냈을 터이다. 땅속에서부터 꽃이었을 수많은 꽃들은 날이 따뜻해지자 제각기 자신만의 존재를 내보이며 개성을 뽐낸다. 저리 당당하고 자신 있게 설 수 있는 건 다 땅속의 어둠을 꼭 같이 붙어서 함께 이겨낸 덕분이다. 그 시간들은 죽은 시간처럼 깜깜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두려웠을 테지만 뚫고 나오면 알게 된다. 그 어둠 속에서 얼마나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말이다.

세월이 증명하는 여유 속에서 나를 꺼낸다. 나를 꺼내고 보니 함께 있던 세상이 보인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어둠 속에서도 세상은 항상 환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마음으로 피운 꽃그림은 오늘을 꽃같이 살라고 환하게 미소 짓는다.


 

수채화 _아르쉬지 세목 80×100

저마다의 개성은 혼자일 때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은 꼭 같이 살아야만 개개인의 힘듦도 견딜 만해진다. 서로서로 뒤섞여 미워하고 슬퍼하고 행복하고 사랑할 때 인생은 더없이 아름답게 피어나며 웃고 울며 후회하고 아파하는 이 모든 삶의 과정은 항상 활짝 피어있는 꽃같이 찬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