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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Oct 07. 2021

수고하는 나의 붉은 심장에게

평생 20억 번 이상 뛰는 욕구를 가진 심장을 위하여

 리듬이 예사롭지 않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댄서들 못지않게 활기찬 리듬을 탄다. 내 심장이다. 초음파실에 누워 심장의 판막(瓣膜)이 열고 닫히는 걸 본다. 판막들이 손바닥을 마주친다. 다시 손바닥을 뗀다. 빠른 속도로 쉼 없이 문을 열고 닫는다. 인간의 직립보행 때문에 심장 아래쪽 혈관에 있는 혈액은 중력을 이기고 반대방향에 있는 심장을 향해 흐른다. 심장이 뛰면 문이 열려 피가 나가고 심장이 쉬면 문이 닫혀 거꾸로 피가 들어오지 않게 한다.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붉은 강줄기 같은 혈액들은 살아 움직여 욕구를 가진다. 욕구는 매우 중요하다. 창조주는 욕구의 명령을 내렸다.


 “심장을 향해 가라. 내가 다시 명령할 때까지 쉬지 말라. 그것이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다.”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찍은 초음파 사진과 진료실에 있던 심장 모형 ⓒ꽃고래

 몇 년 전이었다. 처음으로 호흡곤란이 있던 것은. 걷다가 잠시 멈추어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 후로 심리적 스트레스나,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공황장애겠지. 요즘 공황장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잘 안다는 오만함 때문이었다. 증상은 꾸준히 나타났다.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빠르게 뛰거나 갑자기 숨이 가빠지면 나를 들여다보며 체크했다.

“무슨 일이야. 자꾸 왜 그래?”

 과학기술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혈중 산소와 심전도 체크가 가능한 ‘사과 시계’와 함께 꾸준히 갈비뼈 안의 붉은 덩어리를 추적했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병원은 싫다. 오늘은 병원 간다고 뻥치는 아내를 불신하는 남편은 매일 톡을 보내왔다.

“오늘은 병원 가.” “ 병원 다녀왔어?” “오늘은 꼭 갈 거지?”

집요한 놈.

 내가 사는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심장내과를 방문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코로나 거리두기가 무색하도록 대기실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어쩌면 나 죽을지도 몰라-하는 표정으로 TV도, 핸드폰도 보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3시간을 기다리며 심전도, 초음파 검사를 하고 드디어 의사의 용안을 마주하게 되었다. 황송하였다.


 내가 이곳에 살면서 만난 또라이 의사 top 5 리스트를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방언을 하는 한의사, 여혐 대학병원 의사, 돈 밝히는 어린이 치과의사, 횡설수설 쓸데없는 얘기하는 치과교정 의사. 그리고 오만 방자하여 알코올 중독자 같은 심장내과 의사. 분명히 말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픽션이며 뻥이다. 어쨌든 수십만 개의 심장을 봐왔을 의사는 내 심장이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부정맥이 간혹 보이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심리적 스트레스와 공황 증상을 이길 방법을 말이다. 안내와 조언, 친절한 설명보다는 개똥철학 그 자체였다.

“화병입니다.”

“화병이요? 알고 있어요.”

“어떻게 고치는지 알아요?”

“글쎄요. 저도 나름 노력합니다만.”

“하하. 그 노력 자체가 문제예요. 자기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그 문제. 억압하는 것이죠.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돈을 원해서, 성공을 원해서가 문제예요.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네?”

 의사는 들으려고 하기보다 자기의 말을 대체 네가 알아먹기나 하겠냐는 안하무인 태도로 연설을 늘어놓았다. 나 역시 지루했다. 의사의 눈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그렇다. 나는 기싸움을 좋아한다. 상대방이 그것을 모를 뿐.

“......”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원하면 기분 좋아지는 약을 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로또 10억 당첨되어 기분 좋은 상태의 느낌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죠. 설거지를 해도, 빨래가 많아도, 애를 보느라 힘들어도 전혀 힘든 기분을 못 느끼죠. 그냥 계속 기분이 좋은 거죠.”

“로또요? 실제 당첨되지 않았는데 당첨된 것처럼 느끼는 그것으로 모든 상황을 덮는 건 너무 허무한데요.”

 그는 조소와 희롱의 표정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홀짝. 이미 마스크는 벗어던졌다. 낮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발음이 꼬여 알아듣기 힘들었다. 밖에 환자가 20명은 더 남았는데 계속 나에게 개똥철학을 논할 태도였다. 중언부언 꼰대질 오랜만에 만나서 소름 끼치게 싫었지만 내심 좋았다. ‘앗싸, 글감 나왔다.’ 커피 마시고, 다리 꼬고, 주사처럼 블라블라.

“저기요, 원장님. 그만하시죠. 저 가서 애도 봐야 하는데 가보겠습니다.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오죠.”

 무뇌(無腦), 아메바 상태로 살라는 의사의 외침을 등지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굉장히 불쾌했으나 이상하게 심장은 요동치지 않았다. 내 심장이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주차장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너 때문에 또라이 의사를 만났다고 하소연했다. 남편은 그저 아내의 심장이 건강하다는 소식이 기쁜가 보다. 계속 웃기만 했다. 바보.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나의 욕구를 지워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심장이 건강해서 계속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 새 천년의 초입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 말이다.”_캐럴라인 냅,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 중에서.

 이 사회는 여성들에게 닥치고 가만히 주어진 일에 승복하라고 하지. 나의 욕구가 사라지는 날, 붉게 물든 너의 욕구도 사라지겠지. 수고 많았고, 또 많은 수고를 부탁한다. 평생 20억 이상 뛰는 나의 수고하는 심장에게.




수고로움 레시피

*대충 막 하지만 이상하게 맛있는 이주부 밥상


(※참고: 기본 베이스 양념이 다 맛있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맛이 납니다. 집된장과 국간장은 한살림 선생님들 따라가서 일손 거둔 거밖에 없지만 직접 만든 것들이라 훌륭합니다. 대부분 유기농 재료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빠의 건강 때문에 현미밥이 대부분입니다. 정확한 계량은 하지 않는 편이어서 맛이 뒤죽박죽입니다. 빠른 시간에 후다닥 차리는 게 특징입니다. 따라 하지 마세요. ><)

한껏 멋 부린 토마토 브루스케타. 이름 헷갈림. ⓒ꽃고래

<토마토 브루스케타>

프랑스 가정식인 것 같은데, 이탈리아 음식이라고도 하고. 구운 바케트빵 위에 올리브, 치즈, 야채 등을 올려 먹는 음식입니다. 비주얼이 좋아 손님 초대 후 애피타이저로도 좋습니다. 은근히 아이들이 더 잘 먹어요!


*준비: 바게트빵, 레몬1, 양파 1, 작은 토마토 4, 바질잎 10장, 소금1t, 간 마늘 1t, 한살림 농축 사과식초 (혹은 발사믹 식초), 올리브 오일, 통후추


1. 바게트빵은 버터에 구워줍니다.

2. 토마토와 양파는 촵촵 다져줍니다.

3. 바질잎을 다져 토마토와 양파를 섞습니다.

4. 소금, 후추, 마늘, 레몬, 사과식초로 버무립니다.

5. (저는 신 맛을 좋아해서 레몬 1개를 다 넣었는데 1/2개도 괜찮아요. 국물이 많으면 샐러드 드레싱으로 활용해도 좋습니다.)

6. 마지막으로 통후추를 갈아 뿌리고, 올리브오일을 두룹니다.

7. 구운 바게트 빵 위에 양껏 얹어 먹으면 됩니다.



소스가 다 했어요. ⓒ꽃고래


1. 팬에 살짝 구운 또띠아를 펼쳐줍니다.

2. 로메인 상추를 두어 장 깔고 아보카도 살사소스와 구운 콩조림 얹어줍니다.

3. 닭가슴살과 채 썬 양파, 오이를 깝니다. (양파와 오이는 식초, 발사믹, 올리브오일 등에 버무려 놓으면 더 좋아요.

4. 잘 말아먹습니다. 스리라차 소스를 뿌리면 깔끔한 매운맛을 더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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