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외손녀를 기다리는 사이
근처 신축 아파트 정원에 잠입했습니다.
단풍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오솔길이 참 좋습니다.
조금 걷다 보니
꽃밭에 해국이 가득 피어있습니다.
바닷가 벼랑이 아니어도
너무나 아름답게 모여 핀 해국에
정신을 잃고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름에서부터
바다 냄새가 날 것 같은 꽃이어서
뒷 배경에 피어있는 꽃들은
햇빛이 반짝이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나와
수영장으로 가는 길가
어느 카페 옆 작은 화단에
붉게 익은 구기자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죠.
외손녀가 나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시계를 보면서 또 몇 장을 찍었습니다.
얼마 전 구기자 꽃 시기를 놓쳐
끝물 사진만 찍었는데
열매는 제 때를 만나 다행입니다.
우리 동네 구석구석에는
별개 별개 다 있답니다.
가을의 소원/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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