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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Apr 29. 2022

명이나물 새롭게 먹기

온전히 즐기는 마늘향

명이나물을 처음으로 샀다. 간장 양념에 푹 절여져 흐물거리는 명이나물 장아찌 말고, 매끈한 잎새에 초록빛이 영롱한 생 명이나물이다. 명이나물의 또 다른 이름이 산마늘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잎 귀퉁이를 한 입 뜯어먹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화초 같이 반들반들 예쁜 잎에서 매콤 달콤한 마늘  맛이 났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산 이 명이나물은 고맙게도 한 주가 넘게 차디찬 냉장고에서 잘 버텨주었다. 항상 그렇듯 호기심에 마트에서 한 바구니를 덥석 집어놓고, 차일피일 요리를 미룬 탓이다. "뭐 해 먹지-근데 귀찮은데-내일 해 먹지 뭐"로 이어지는 귀찮음의 순환 고리에 빠져버린 나라 할 지라도, 일주일 동안 생생함을 유지하는 명이나물의 생명력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뭐라도 해 먹자. 명이나물은 그렇게 냉장고를 벗어나 조리대로 향할 수 있었다.


명이나물 요리를 계속 미룬 것은 게으름 탓이 크지만 실제로 '뭐 해 먹지'에 대한 아이디어 부족 탓이 확실히 있었다. 명이나물 요리법을 검색해 보면 내용은 거의 다 비슷했다. 80프로가 명이나물 장아찌이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명이나물 김치나 명이나물 무침이었다. 예쁜 명이나물을 두고 장아찌만 덜렁 만드는 건 남들 다 하는 건 재미없는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뭐 만들지, 뭐 만들지 하며 부엌을 뒤지며 발견한 재료 두 가지. 바로 스팸과 미소된장이었다. 괜찮은 게 나올 것 같았다. 또 간단하고. 명이나물을 냉장고에 담은 채 흘려버린 일주일이 무색하게, 나는 빠른 속도로 요리 준비에 착수했다. 메뉴는 바로 명이나물 미소 된장국과 명이나물 스팸 무스비!


부엌에서 긁어모은 재료는 다음과 같다.

명이나물, 미소된장, 스팸, 밥친구, 밥.

미소된장국을 먼저 끓여둔다. 끓는 물에 미소된장 한 숟갈을 넉넉히 퍼서 잘 풀고, 가위로 쑹덩쑹덩 자른 명이나물을 넣어서 잎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인다. 명이나물 미소된장국 만들기 끝.

명이나물 스팸 무스비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명이나물을 전자레인지에 1분간 돌린다. 순식간에 데친 것처럼 부드러워진다. 스팸은 납작하게 자른 후 뜨거운 물에 10분 정도 담가 염분과 기름을 뺐다가, 남은 물기를 깨끗하게 닦고 기름을 적당히 두른 팬에서 노릇하게 익힌다(기름을 둘러야 스팸 속의 지방이 더 잘 녹아 나온다). 다 익힌 스팸은 키친타월에 올려 기름을 뺀다. 밥은 적당히 데워 밥친구를 잘 섞어둔다(밥친구는 소금&참깨로 대체 가능). 스팸 통을 버리지 말고 깨끗이 씻어 두었다가 랩을 깔고 그 위에 밥을 얇게 깐다. 그 위로 스팸과 밥을 차례로 올려 스팸 주먹밥을 만든다. 랩을 들어 스팸 주먹밥을 꺼내고, 물기를 닦아낸 명이나물로 여러 겹 감싸 완성한다.


집에 있는 재료로 별생각 없이 만들었는데 묘한 뿌듯함이 차오르는 것은 아마 초록과 흰색, 분홍빛이 어우러진 먹음직스러울 자태 덕분일 것이다. 일단 명이나물 미소된장국 먼저 시식. 두드러지는 것은 명이나물의 식감이다. 미끄덩하면서 살짝 질깃한 것이 미소된장의 짝꿍인 미역을 떠올리게 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마늘맛이 나는 것은 흡사 파를 먹을 때와 비슷하다. 미소된장국의 단골 재료 두 가지의 식감과 맛을 품고 있으니 명이나물을 곁들인 것은 잘 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는 명이나물 스팸 무스비 차례. 한 입 베어 물어본다. 명이나물에는 매콤한 마늘향이 남아 있고, 겉을 바삭하게 익힌 스팸은 고소하기 그지없다. 그 맛과 예쁜 모양에 취해 와구와구 먹다 보니 드는 생각 하나. 이거 삼겹살 집에 가서 삼겹살 구이에, 명이나물 장아찌에 공깃밥을 곁들여 먹는 그때 그 조합 아닌가! 어쩐지 잘 어울리더라니. 신박한 레시피 하나 제대로 창조했다고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명이나물을 새롭게 먹겠다고 스팸과 밥을 집어둔 순간부터 나는 머릿속에 수년간 각인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ㅇ 요리 동영상 링크

https://www.instagram.com/p/Cc7Fdi-vFvV/?igshid=YmMyMTA2M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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