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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25. 2024

ep3. 남편들 계시면 들어와봐요

◆ 와이프한테 무슨 말하고 살아요?

사연

아내한테 적재적소의 표현을 잘 못해서 편지라도 쓸라 그럽니다.

아내는 저한테 '수고했어, 힘들었지? 고마워, 앗 미안'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요. 자연스러워서 느끼지 못했을 뿐 항상 제 존재를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못했죠..

표현을 자주 하도록 노력하는 건 할 수 있지만 사람이 지금 당장 바뀌진 않잖아요..


남자가 사용하는 단어가 하루에 8천 자, 여자가 3만 자라고 했던가.. (추후 다뤄보도록 함)

남자는 대체적으로 여자보다 말수가 적기도 하고, 직업적인 언어가 더 익숙하기 때문에 다정다감한 말을 잘 못할 수도 있다.

인간으로 묶어놨지만 사실 종족이 살짝 좀 다른... 그런 어떤.. 서로 간의 필터가 좀 있어야... 그런대로 마주할 수 있는.. 뭐 그런 차이랄까...


하여튼

남편들은 시간을 내서 아래의 내용을 예쁜 종이에다가 옮겨 적기 바란다. 필요에 따라 가감하고 수정해야 한다.


평소 표현을 잘 못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큰맘 먹고 쓰는 편지

아내에게 쓰는 편지 대필내용을 편집한 것
사랑하는 OO에게

오늘 하늘이 정말 파랗고 쾌청하더라.

여름 안 끝날 것처럼 이글대더니 결국 시간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구나 싶다.

출근하는데 어디 기분전환 하러 나들이 온 것처럼 개운한 게 기분이 좋네. 회사는 일이 안 풀려서 난리인데, 대자연의 힘이란^^

문득 당신 생각이 났어. 

둘 다 바빠서 이렇다 할 대화도 잘 못하고 살았잖아. 사실 한 번씩 한 마디씩 말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당신이 정말로 큰 힘이 된다거나,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거나, 아들 보듯 나를 챙겨주는 게 고맙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거든.

내가 더 늦게 끝난다는 이유로 애들 보는 거 당신이 거의 다 하는 것도 항상 미안했어.. 미안하면 주말에라도 애 좀 봤어야 하는데 그치? 내가 역량이 안되나보다ㅜㅜ

학부모 상담 날짜 보면서 니가 가네 내가 가네 싸웠을 때 기억나? 혜린이가 그냥 둘 다 오지 말라고 하는 거 보고 정말 마음이, 뭐랄까.. 부끄럽고, 후회되면서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나는 좋은 남편도 아니고 좋은 아빠도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 참 많이 했었어. 아무래도 엄마가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하냐고 모질게 말했던 거, 늦었지만 정말 미안해. 너도 네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었을 텐데 나만 짐을 지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 

당연히 그래야 하는게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살면서 제대로 생각을 안 해봤는데, 지금 참회를 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각자의 당연한 몫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케어하고, 명절엔 당연히 어른들을 뵙고, 그렇게 말이야. 

이렇게 이기적인 나를 돌아보니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더 많지. 껍데기만 있었던 약속들을 하나씩 지켜보려고 해. 이렇게나 날씨가 좋은데, 주말에 내가 애들 데리고 라이딩 다녀올까? 당신이 항상 원했지만 항상 약속만 하고 항상 안 지켰던 그것! 당신 빼놓고 애들만 데리고 놀아주고 오는 그거! (물론 함께 가도 대환영!)

이번주말에도 오늘처럼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네! 날씨 핑계로 또 잠만 자는 아빠가 되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ㅎㅎ

여보. 나는 참 부족했고 당신 없인 뭣도 아니었지만, 당신이 해왔던 수많은 양보를 잊지 않고 잘하도록 노력할 거야. 주말마다 놀러 다니고 애들 교육비 걱정 없이 잘 사는 부자가 아니어서 그게 그렇게도 미안했던 나의 좁은 그릇을 반성할게. (이제 안미안하다는 건 아니고) 빨리 벌어서 무언가 이룩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당신의 다정함을 가리고 외면하게 했던 것 같아. 

말로 하기가 어딘가 부끄러워서 편지를 썼는데, 편지 역시 부끄럽긴 마찬가지군. 이제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그게 걱정이네ㅎ

이런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정말 사랑한다. 우리 행복하자^^ 


편지를 대필할 땐 증거영상을 남기는 편

시링하는 건 알겠는데..

나도 남편이 내 말을 그저 들어주기만 바랄 뿐인데 그걸 안 해줘서 서운했던 적이 많았다.


소설

아내: 오늘 있잖아 땡이 엄마가 나한테, 좀 배우고 사셔야죠 왜 그래요 이러는 거야. 기분이 너무 나빴어. 뭘 안다고 그래?

남편: 뭐? 정말 무례한 사람이네. 진짜 기분 나빴겠다. 

아내: 그러니까 말이야!

남편: 너가 아니면 아닌 거야. 기분 풀어! 괜히 꿀리니까 그런 소리 나 해대는 거지. 

아내: 그렇겠지? 그냥 상종을 말아야겠어!


현실

아내: 오늘 있잖아 땡이 엄마가 나한테, 좀 배우고 사셔야죠 왜 그래요 이러는 거야. 기분이 너무 나빴어. 뭘 안다고 그래?

남편: 고소할까? 

아내: 아니...

남편: 명예훼손인데

아내: 그걸로 무슨 명예훼손까지..

남편: 그럼 별일 아닌 거에 뭐 하러 기분까지 나빠해? 내비둬 그냥.


최악

아내: 오늘 있잖아 땡이 엄마가 나한테, 좀 배우고 사셔야죠 왜 그래요 이러는 거야. 기분이 너무 나빴어. 뭘 안다고 그래?

남편: 배우고 살라는게 나쁜 건 아닌 거 같은데. 

아내: ...


이렇게 되면 더이상 말하기 싫어지는 거다. 

혹시 아내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지는 않았는가. 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일들로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위의 필사를 도전해 보자.

아내들은 의외로 해묵은 서운함이 다정한 말 한마디로 풀리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건, 굳이 굳이 굳~~~~~이 해결해 줄 마음을 갖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남편이 깊은 공감만 해주면, 아내는 거기서 동력을 얻어 혼자서도 아주 잘 해결해 나간다.

이렇게 쉬운걸 왜 못하세요?


인사는 습관

"나는 그런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줄 안다는 것은 "사랑해"라는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핑계대지 말라는 뜻) 처음 한 번이 어렵고 두 번째는 그 절반만큼 어렵지만 그다음부터는 난이도가 쭉 내려가서 더욱 화목한 주변환경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인사의 나라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잤어? 자. 가. 있어. 잘 지내지? 감사해요. 죄송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즐거웠어. 만나. 보고 싶어. 별일 없어? 괜찮아? 

말의 기본이 되는 수많은 인사말들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에게 얼마나 자주 하시는지? 

자, 오늘 집에 가면 아내에게 꼭 말하자.

"별일 없었어? 오늘도 고생했어. 고마워."

연습하세요. 별일 없었어? 고생했어. 고마워. 세 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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