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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20. 2024

개를 타고 엉엉 울었다

거의 조랑말만한 개가 우리집을 지키고 있었다.

셰퍼트계의 무슨 종이랬나, 그 개는 작은 나를 항상 애잔히 바라봤다.

내 눈에 얘는 개인데, 얘 눈엔 내가 인간이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애다.


마당에 있는 연못 둘레에는 큰 돌이 장식처럼 둘러져 있었다. 돌을 징검다리 건너듯 밟으며 놀자 개는 묵직이 다가와 나를 끌어내렸다.

나를 제어하는 개가 무섭진 않았지만, 개가 목줄로 끌고 집에 놀라서 울었다.


"엄마! 얘가아~~ 집을 가지고 왔어 으앙"


그럼 엄마는 개를 혼내야지 나를 혼냈다.

개가 미웠다.

개는 지 집까지 짊어지고 나를 지켜줬건만, 돌아온건 원망 뿐이니 기가 찼을 것이다.


비 개인 어느 날,

집 앞 골목에 움푹 패인 곳마다 물이 고여 고약한 길이 됐다. 이 기회를 놓칠수 없지. 나뭇가지며 나뭇잎이며 공벌레를 다 주워다가 웅덩이에 빠뜨렸다.

또 개가 다가온다.

"아 왜 너 안묶었어? 아 묶어야 되잖아!"


묶인 날보다 풀린 날이 많았던 건 엄마의 의도였다.

저 날다람쥐를 지켜라-

하명을 받은 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뭔지 모르겠다면 일단 막아서야 했다.


"너는 왜 그러니? 그냥 같이 놀아. 응?"

개 앞발을 잡아끌어 웅덩이에 담그려고 낑낑댔지만 이 개를 이길 재간이 없다.

어째서인지 나는 냅다 달렸다. 도망가려는건 아니었고, 그저 객기였다.

당연한 수순인듯 머잖아 웅덩이를 밟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개는 하염없이 우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웅덩이로 들아와 나를 일으켰다. 울음은 그쳤지만 달라붙은 바지가 불쾌해서 움직이기 싫었다.

개에 올라타 끌어안았다. 허벅지가 차가워서 훌쩍거리고 울기를 반복하는 동안 개는 묵묵히 집으로 향했다.

"어휴 이게 뭐야 너!"

나를 무사히 엄마에게 인계하고 오늘의 소임을 다한 개는 간단히 목을 축이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날이 되자 나는 신문지를 벅벅 찢고 뭉쳐서 부리나케 골목으로 향했다.

웅덩이에 공을 골인시켜야 하거든!

밤 사이에 비가 왔다 그쳤다 했던 소리를 분명 들었다. 웅덩이는 아직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웅덩이가 사라졌다.

웅덩이들은 연탄재로 무참히 메꿔져 버렸다.

이럴수가.

오늘 할게 너무 많았는데!

10점짜리 점수를 주려했던,

지름10센티의 패임마저 완벽하게 메꿔졌다.

나는 괜히 개집으로 들어가서 엉엉 울었다.

"너가 그랬지! 너가 그랬지! 너 때문에 내가 살수가 없어!"

시원하게 울고 나니 기분이 묘한게 이내 다른 놀이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토끼장 가서 놀자"


토끼장의 창문은 손수 만든 철망이라 듬성듬성 하자가 많았다.

나는 기어코 그 하자 구멍으로 신문지를 쑤셔넣었다. 어휴 이 망나니를 누가 말려. 토끼들은 구석으로 모여 바들바들 떨었다.

토끼는 개가 출몰한 순간 이미 대혼란에 빠졌었고, 신문지공 따위에 동요한건 아니었다.

개는 무척이나 짖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 말라고.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하지만 개는 자신의 영향력이 어떤지 알고 있으며, 지금 이곳에서 짖는다면 토끼왕국에게 민폐가 된다는 걸, 지금은 나를 말리는 것보다 토끼를 보호하는게 우선이라는 걸 계산했을 것이다.

그때, -어느 구역에나 미친놈은 있는 것인가- 회색의 큰 토끼가 철망으로 달려든다. 어쭈 이것봐라 공격을 하겠다? 신문지 파워로 반격해주자!

개는 나를 말렸어야 했다. 숨만 헐떡이던 개는, 내가 철망에 손가락이 끼어 토끼에게 물릴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놀라 나자빠진 나는 할줄 아는게 우는거밖에 없었다.

"너 때문이야! 으아아앙!"

그런 처절한 원망이 또 어디있을까. 세상 모든 죄가 개에게 있는 듯 그렇게나 울어댔다.

"엄  마 하.. 하  테  가..가.. 갈  래 흐..흥..흑.."

다젖은 얼굴을 하고선 또다시 개 등에 매달렸다. 너무 졸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은 잘 안났다.

일어나자마자 비스켓을 책 사이에 끼워 나갔는데, 개집이 텅텅 비어있었다.


"야!"


아무도 없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응, 며칠 있다 올거야. 어디 좀 갔어."

"왜갔어? 몇밤자?"

"세 밤"


나는 태어나서 제일 긴 나흘을 보내야 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짜증이 나서 괜히 개집 지붕 모서리를 쥐어 뜯어놨다.

"왜갔는데"


둘째날이 되자 불안증에 시달렸다.

하루종일 구긴 얼굴로 대문에 풀을 비벼댔다.

대문 근처에 더이상 남은 풀이 없다.

'그려볼까?'

연탄을 쪼갰다.

"어떻게 생겼지?"

도무지 기억이 안났다. 연탄조각을 던져버렸다.


셋째날이 됐다.

"오늘 밤엔 안잘거야"

퍽도 그랬다.

아침이 되었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일어나 뛰쳐나갔다.

"야!"

괜히 눈물이 흘렀다.

"너 왜 인제 와? 너, 야, 너 집에 들어가"

개는 그대로였다.

"너 뭐하고왔어?"

나의 냄새를 킁킁 맡는다.

"내가 여기 과자 갖고 왔다"

책을 펼쳐 눅눅해진 비스켓을 꺼냈지만 먹어주진 않았다.

"내가 미안해"

개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토끼 안괴롭힐게"


나는 약속을 지켰다.

토끼를 괴롭히지 않음은 물론, 위험한 장난은 치지 않았다.

가끔 스티로폼을 주워다가 담벼락에 긁으며 눈이 온다는 설정놀이를 하곤 했었지만, 더이상 담장 위로 올라타지 않았으며 담 너머로 돌을 던지지도 않았다.

매일 책에 도시락을 싸서 개집으로 들어갔다.

책을 펼쳐주고 나는 낮잠을 잤다.

이젠 울지 않을 거라고 개 앞에서 호언장담을 일삼았지만, 그건 별로 지켜지지 못했다.


우리는 이세상 모든 코스모스를 다 셀 것처럼 가을을 누볐다.

개가 남의 밭에 똥을 싸서 밭주인에게 혼날까봐 고이고이 싸들고 집에 오기도 했다.

옥상에 올라가서 반쯤 마른 무말랭이를 함께 훔쳐먹고선 상황극을 펼치느라 옆집으로 숨어들어가기도 했다.

"들켜선 안돼! 난 열개나 먹었거든! 키득키득"


어느날, 비파나무에서 열매가 툭 떨어졌다.

"까마귀가 저기서 먹을라고 했었나봐. 떨어뜨렸잖아. 바보"

잘 익은 비파. 날름 까서 먹었다. 난 맛있는데, 개는 입맛에 안맞는지 한번 먹고 고개를 돌렸다.

"맛있는데!"

비파열매는 주렁주렁 달려 익어갔다.

개는 한입쯤은 먹어주며 그런대로 익숙한 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 사라진 나의 친구.

어디로 간건지 엄마는 말해주지 않는다.


불안증이 재발했다.

도무지 밥도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한 밤이면 된다 했다. 

볏집을 주워와 대문을 닦았다.

내가 문지른 풀 자국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개는 한 밤이 지나 돌아왔다.

그런데 기는 싫은건지 그냥 나를 쳐다만 본다.


"너 바보야?"


개는 바보가 되지는 않았다.

그냥, 아팠다.

내가 계속 책에 비스켓을 가져갔는데도 아팠고,

닭다리를 발라서 갖다줘도 아팠다.

아빠가 쓰는 머리빗으로 털을 빗겨줬는데도 아팠다.

내가 등을 끌어안고 업어달라고 하는데도,

공벌레를 연잎 가득 주워왔는데도

아무리 애써도 개는 점점 더 아팠다.


그날은 왠지 특별해 보이게 아빠의 요리실습책에 비스켓을 넣었다.

당장 가서 자랑했지만 여전히 아픈 개는 배만 들어갔다 나왔다 그런다. 배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얼굴을 바라봤다. 눈을 계속 마주보고 있는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생긴지를 몰랐네.

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열 번이 세 번 정도 있자니 졸렸는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잠자야 안아프대"


얼굴을 쓰다듬 다시 배에 손을 얹었다. 여전히 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런다.

천천히 그런다.

더 천천히, 조금인가 더 천천히 그랬다. 그리고 이내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눈도 다시 뜨지 않았다.

점점 다리가 띡띡하게 변해갔다. 무서워졌다.


"엄마! 잠자는거 아니야! 안일어나! 무서운 꿈꿔!"

다급하게 엄마를 불러왔지만, 엄마는 개를 보더니 천천히 돌아 집으로 들어갔다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다시 내 옆으로 왔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안았다.

그제서야 알았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쾅 닫고 의자에 앉아 벽을 바라봤다.

화가 난건지 재미가 없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몸속에 찰흙이 들어찬 느낌이 들었다.

몸 속이 왠지 차가웠고, 어딘가 무거웠고, 자꾸만 뭉개졌다.

눈물이 흘렀다. 감정이 격해 엉엉 울었다. 끝나지가 않는다. 자동으로도 수동으로도 멈춰지지 않는 불능의 상태로 울었다.

네가 갔다. 떠났다.

나는 있는데, 너는 없다.

찰흙덩어리는 모세혈관까지 파고들었고 나는 푸욱 젖어 몸을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1987년, 온통 흑빛의 잔상으로 기억되는 어떤 날이다.

너를 타고 다니며 공벌레를 호령했던 그 아이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 너를 바라보고 있다.

슬픔이란 무릇, 피어나는 것이다. 고통이 함께 하고, 돌이킬 수 없으며 어둡고 고요하다. 피할수록 족쇄가 되고, 부딪힐수록 자유를 준다.

이 무거움을 정리할 수 있는 지금의 앎을 1987년 그때에도 알았더라면, 나는 보다 결연히 너를 보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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