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거 왜 샀어?
소비는 마케터들의 직업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제품과 서비스의 소비를 촉진시켜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소비할 기회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퍼런스 탐구 혹은 케이스스터디라는 명목하에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종종 진짜 소비자가 되어버리곤 한다. 그뿐인가, 생산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와 여기 브랜딩 너무 잘하네? 이렇게도 마케팅을 한다고?' 하는 감탄 역시 소비로 이어질 확률도 꽤 높다.
그렇게 소비에 관대한 마케터의 세계 속에서 나는 특이하게도 소비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타이트한 용돈으로 살아온 습관 때문인지, 물건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는 미니멀리스트의 기질이 있어서인지 다른 마케터들에 비해서는 물건을 자주 사지 않는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예 물욕이 없는 편은 아닌 것 같고 소비 욕구도 높고 인내심도 높아 사고 싶은 건 많은 데 그에 비해 실제로 사는 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소비도 잘 해야 좋은 마케터가 된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의기소침해지고는 했다. 소비를 적게 하는 사람은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없는 걸까? 하고.
그러다 1-2년 전에 의도적으로 소비를 확 줄이는 기간을 가지며 소비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소비 자체보다는 어떤 생각 와 감정으로 물건을 샀는지, 그래서 어떤 걸 느꼈는지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1번의 소비이더라도 진짜 좋은 소비라면 10번의 생각 없는 소비보다 큰 만족감을 줄 수 있고, 열렬히 어떤 제품을 살지 고민할 때 진짜 나만의 취향이 생긴다. 소비 습관을 지키면서 좋은 마케터, 좋은 기획자로 성장해나갈 자신감도 생겼다. 사고 싶은 건 엄청 많은 것에 비해 실제로 사는 건 별로 없단 점이 모순적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소비자로서 고민되는 포인트에 공감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소비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정보를 찾아본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분명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소비를 무작정 줄이는 게 답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소비도 분명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좋은 소비'를 지속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소비를 조금씩 늘리게 되면 왜 그 제품을 샀는지, 사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실제로 쓸 때는 무얼 느꼈는지 충만하게 돌아보면서 소비로그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무얼 쓸 거냐면요.
최근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많은 소비 (왜 샀는지, 만족하는지 등)에 대해 글을 쓰며 좋은 소비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을 더 정리하고 싶고
일하는 사람의 마인드로 산 제품을 소개하면서 감탄한 마케팅 레퍼런스나 응원하는 브랜드들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고
나의 취향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