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같은 구름다리의 뿌연 유리 너머로, 굿판에서 칼춤을 추는 무당처럼 나무들이 흔들렸고 흙탕물이 귀신처럼 허연 침을 튀기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연실색한 미은은 곧 앞서 간 세 사람을 따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구름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쿠궁, 하는 알 수 없는 소리와 발밑에서 느껴지는 불안정한 떨림이 미은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다친 학생을 부축한 민혁과 그 앞을 선두로 걷는 승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문에 도착했을 때, 승우가 문을 열자마자 엄청난 습기에 볼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체육관에 들어선 미은은 물이 이미 체육관 바닥을 가득 채운 것을 보고 놀랐다. 체육관 안은 마치 거대한 수조처럼 물에 잠겨 있었고, 농구공과 각종 체육용 공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공들은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부초처럼 표류하고 있었다. 물살은 체육관 벽에 부딪히며 작은 파도를 만들었고, 체육관 안은 마치 폭풍 속 바다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저 위야."
승우가 손가락으로 체육관 위쪽에 설치된 철제 통로를 가리켰다. 통로는 체육관의 양 옆을 따라 설치되어 있었고, 뒷산으로 연결되는 비상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제부터 조심해서 걸어야 해. 물이 계속 차오르고 있어."
승우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순간임에도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빠르게 분석하고 있었다. 미은은 그와 함께 철제 통로로 올라갔다. 통로는 차가운 철제 난간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발밑에 철렁이는 물살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자,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물은 점점 더 차오르고 있었고, 그 물살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그녀를 집어삼키려는 듯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눈 앞에 뱅글뱅글 돌고, 등 뒤에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괜찮아. 앞만 보고 걸으면 돼."
승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이 상황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덤덤했고, 미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미은은 숨을 고르며 승우의 말에 따라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녀는 여전히 아래에서 넘실거리는 물살이 두려웠지만, 애써 승우의 등을 바라보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래, 할 수 있어. 무사히 나갈 거야. 미나야, 조금만 기다려.
민혁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학생을 부축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그가 얼마나 단단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승우와 미은의 뒤를 따라 철제 통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구간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체육관 벽을 따라 거대한 물살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 순간은 마치 시간이 느려진 듯했다. 승우는 물살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거대한 물결이 그를 강하게 덮쳤고, 그 힘에 휘말려 승우는 중심을 잃고 몸이 팬스 쪽으로 기울어졌다.
미은의 비명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그녀의 눈앞에서 승우는 철제 팬스를 넘어 곤두박질칠 듯 물 속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민혁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는 학생을 통로 위에 내팽겨치듯 던지고, 주저 없이 승우를 향해 몸을 던졌다. 민혁은 승우가 떨어지기 직전,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의 손끝은 차갑게 젖어 있었지만, 승우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꽉 쥐어져 있었다.
승우는 깜짝 놀란 얼굴로 민혁을 바라보았다. 승우는 자신이 물 속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혁의 손은 단단히 자신의 팔을 잡고 있었고, 그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야이 바보 자식아! 앞에 잘 보라고!" 민혁은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마에서 땀인지 빗물일지 모를 물방울이 눈을 한껏 뜬 승우의 볼에 뚝뚝 떨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황과 분노, 그리고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승우는 놀라 잠시 말을 잇지 못했지만, 이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민혁을 바라보았다.
"난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민혁아."
민혁은 여전히 격양된 얼굴로 승우를 노려보았지만, 그 안에는 안도와 깊은 걱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민혁은 승우를 끌어올린 후에도 여전히 승우를 놓지 않은 채,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다시 이런 일 있으면... 내가 너 죽일 줄 알아."
승우는 그 말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지막 구간이야. 여기서 나가야 해." 승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며, 철문을 가리켰다.
"저기만 넘으면, 밖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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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은 마지막 구간을 조심스럽게 걸어 비상문에 도착했다. 승우가 가장 먼저 계단을 내려갔고, 그 뒤를 따라 미은과 민혁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민혁은 여전히 학생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온 체육관은 이미 물이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의 발걸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듯 힘들어 보였다.
비상문을 지나 굽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체육관 뒤편에 있는 뒷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출구가 나타났다. 이 출구는 학교에서 비상사태에 대비해 마련된 통로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였다. 승우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고, 미은과 민혁에게 말했다.
“저기로 나가면 뒷산으로 갈 수 있어.”
그들은 숨을 고르며 뒷산의 출구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후덥지근하지만 날카로운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때렸고, 비는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좁은 등산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예상치 못한 장벽에 부딪혔다.
등산로는 이미 산사태로 인해 막혀 있었다. 흙과 나무들이 무너져 내려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었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미은은 그 장벽을 보고 절망에 빠졌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손끝으로 흙더미를 만졌다. “더 이상 갈 수 없잖아… 우리 이제 어떻게 해…”
미은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물살을 뚫고 겨우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온몸이 무거워지며 주저앉을 뻔했다.
그러나 그때, 승우는 잠깐만, 이라는 말과 함께 침착하게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승우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가지 방법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뒷산은 길이 여러갈래로 나뉜 작은 동산이야. 분명 다른 길이 있을거야.”
그는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곧 눈에 띄는 작은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정식 등산로가 아닌, 산을 가로질러 나 있는 작은 사잇길이었다.
“여기야. 이쪽으로 가면 산 위쪽으로 갈 수 있어. 꽤 좁고 위험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어.”
가만히 있던 민혁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놈 상태가 별로 안좋아…. 거의 실신 상태인데 저길 올라갈 수 있을까?”
승우는 민혁의 말을 듣고 아주 잠깐 고민하는 듯 보였다. 순간 그의 눈에는 냉정한 판단력이 번뜩였다.
“여기다 두고 가자.“
“뭐?”
민혁이 되물었다. 미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명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여기서 쟤를 데려가면 모두 위험해질 수 있어. 부축하기엔 너무 위험한 길이야. 네 체력도 거의 한계잖아.”
“난 괜찮아. 그저, 이 놈 상태가…”
승우는 민혁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나중에 사람을 데리고 와서 구하면 돼. 그게 더 안전한 방법이야.”
민혁은 승우의 말에 동의하는 듯 보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갈등이 느껴졌다. 다친 사람을 두고 간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러나 그는 승우를 믿고 있었고, 승우의 판단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알았어.”
그러나 미은은 그 말을 듣고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뭐? 그럴 순 없어! 우리가 지금 얘를 두고 가면, 여기서 죽을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승우는 무표정으로 손가락을 비비며 미은을 바라보았다.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무사히 탈출하는 거야. 우리가 먼저 이곳을 벗어나야 얘를 구할 수 있어.”
승우의 단호한 태도에도 미은은 설득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아니, 그건 말이 안 돼! 우리가 얘를 여기 두고 간다면, 나중에 다시 올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 산사태가 더 심해지면, 이 길도 완전히 막힐지 몰라. 지금 데리고 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민혁은 미은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주저했다. 그는 승우의 말이 논리적이라는 것을 이해했지만, 미은의 절박한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사람을 두고 가는 것이 정말 옳은 결정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승우의 판단 쪽에 서 있었다.
민혁이 입을 닫고 있어도, 미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안 돼! 여기다 두고 갈 수는 없어. 우리가 지금 떠나버리면, 얘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승우는 미은의 격렬한 반응에 잠시 침묵했다. 철저하게 미은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지만, 결국 시간 낭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이마를 쓸어넘기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잇길은 좁고 험난했으며, 민혁이 학생을 부축한 채 그 길을 걷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은의 결연한 표정을 보며, 승우는 깊은 숨을 내쉬며 결정을 내렸다. “알았어… 같이 데리고 가자. 민혁아, 절대 발을 잘못 디뎌서는 안 돼. 내가 밟는 곳만 밟고 따라와.”
미은은 승우의 말을 듣고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민혁도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을 다시 부축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걱정이 서려 있었지만, 표정은 한결 편안해보였다.
그들은 마침내 좁은 사잇길로 들어섰다. 그 길은 매우 험하고, 비에 젖은 흙이 질척거렸다. 발을 디딜 때마다 진흙이 종아리에 튀었고, 그 위로는 빗물이 콸콸 쏟아지며 그들을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길은 좁고 가파르며,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들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진흙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조심해, 신중하게 움직여야 해.” 승우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며 길을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뒤에 바로 민혁이 따라올 수 있게 한 뒤, 민혁과 학생 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장애물을 치우고, 한 발 한 발 아주 조심히 신발로 꾹꾹 눌러가며 걸었다.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빗물에도 승우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민혁과 그를 뒤따르는 미은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승우를 따라갔다.
길을 따라 오르자, 마침내 그들은 산의 중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승우의 기지 덕분에, 그들은 더 안전한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고, 드디어 물살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들이 왔던 길이 완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미은은 그제야 깊은 숨을 내쉬며, 자신이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깨달았다. “우리가… 우리가 해냈어.” 그녀는 물에 잠긴 길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민혁은 말없이 학생을 잠시 내려놓으며 승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함께, 승우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승우는 민혁의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