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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도

by 양M

윤석철 교수는 그의 저서《삶의 정도》에서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가족간의 사랑

둘째, 먹고 살만한 경제력

셋째, 장래 희망

"앞에 두 가지는 부모 세대의 노력에 의해, 마지막 항목은 자녀 세대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윤 교수가 일흔 한 살에 출간했던 책이다. 올해 그의 나이 여든 하나. 김형석 교수에 비하면 아직 청년인거다. 그는 경영학자로서의 권위도 있지만, 1981년 부터 10년 마다 연구의 결정체 격으로 책을 내며 명실상부(名實相符)를 입증한다.《삶의 정도》를 마지막으로 윤 교수의 신간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오래 전 깊이 공감하며 읽은 책이다. 그 후로 저자가 살면서 '달라진 생각'이 또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최근 저작 소식이 궁금하다.


필자의 집안을 '행복한 가정'의 기준에 대입해 본다. 앞선 부모님들께서는 이미 두 분 몫을 다 해내셨다. 뒤를 볼 때 필자도 자녀들에게 부모된 입장으로서는 나름 자신있다. 그러면 '자녀세대의 노력'이 남는다. 필자의 장래 희망은 '찾고 싶은 본가'를 만드는 것이다. 지구 나이 수십억 년을 하루로 치면 초 단위로 살다 가는 인생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친인척들이 다함께 연대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장래 희망을 위한 자녀들의 노력은 지켜볼 일이다. 방학 중에도 랜선 앞에 앉아 보충 수업을 듣는 이유가 다들 있지 않겠는가. 필자는 자녀들에게 자기만족과 성취감을 위한 도전과 노력만을 당부한다. 자녀들은 오히려 신체적으로는 부모보다 월등하다. 영적으로 미숙할 뿐이다. 어디서 그리 익혔는지.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아직 요술램프 요정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주님의 때를 기도하며 기다린다.

한국 경영학계의 구루에게 포착된 행복한 가정들이 가진 '교집합'은 세가지다. 필자의 주관적 경험에 비춰 살펴본다.


첫째, 가족간의 사랑 ㅡ 아.. 그렇다. 사랑이다.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로 삶을 분석한 한국의 '피터 드러커'도 사랑을 들었다. 이 첫째 원인이 갖는 본질적 의미는 우리에게 참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사랑을 깨달으며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을 사랑하게 된다.


필자는 본인가족 보다 대가족을 더 챙기시는 부친을 이해 못했다. 빠듯한 살림으로 시댁일 하셨던 모친과의 갈등은 당연한 결과였다. 장손에게 짐지워진 부담감과 억압된 사춘기를 지냈다. 그 시절 부모님이 늘 미웠다. 적나라한 분쟁들 속에서 "네가 이 집안의 장래"라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을 들어야만 했다. 이제는 안다. 부모님께서는 자기를 내어주고 이웃을 섬긴 분들이다. 크리스천들이다.


둘째, 먹고 살만한 경제력 ㅡ 일전에 필자가 맹자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을 고찰한 내용이 이거다. 윤 교수도 2천 3백여년 전 맹자의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셋째, 장래 희망 ㅡ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제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실상 그렇지가 않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 안 했는가. 정작 자녀들은 '목표하고 공부하지 않으면서, 공부하는대로 목표하는 삶'을 산다. 어른들은 방관한다. '그게 다 인생이야'로 수긍해 버린다.


외면하거나 포기한다. 못 입고, 못 먹는거, 못 가진거 없는 가정에 행복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게 문제다. 문제를 안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풀어야 한다. 필자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케이스를 따르기로 했다. 9명 정원, 'YM EDU LAB'을 운영하고 있다. 꿈꾸는 자들과는 함께 꿈꾸고, 희망 없는 자들과는 진로를 같이 모색한다. '코칭 메니저'로서 말이다. 연구생들 표현을 빌리자면 "양메"다.


윤석철 교수는 '평생 교수'라는 직업인에 머물지 않는다. 진정한 경영학자이며, 시대의 지성이자 성숙한 인간이다. 이런 그를 책을 통해 만나 볼 수 있음은 커다란 기쁨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한 사람씩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감찰 하신다. 윤석철 교수의 인생 연수를 김형철 교수와 비교함은 부적절 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일 년 같은 하루를 살아내기도 하고, 십 년을 일 년처럼 허송하며 살아가는 게 또 사람 아니던가.


끝으로, 윤 교수가 책에서 인용했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의 서두 부분을 옮기며, 필자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리라 다짐한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들은 대개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집의 경우는 그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ym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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