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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스텔라, 폭풍처럼 자라나는 작은 우주 2

스스로 자라나는 아이

by 슈퍼거북맘

지난 글에 이어..


https://brunch.co.kr/@ymisblue/113



3. 정서와 사회성



감정 표현 및 자기 주도성 강화


감정이 풍부해지고 표현이 명확해졌다.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과제를 하다가 본인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면 단호한 표정으로 팔짱을 딱 낀다. 마치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하기 싫다고 말로 표현하는 건 물론이고.


또 좋아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하자고 요구한다. 얼마 전까지 루크에 꽂혀있었는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루크 책과 칩을 꺼내 스스로 맞춰보고 책꽂이에 있는 여러 권의 책들 중 본인이 원하는 편을 정확히 찾아 수시로 연습했다.


요즘 나와 쇼파에 내동댕이치기 놀이에 심취해있어서 수시로 하자고 조른다. 내가 어부바해준다음 쇼파에 함께 쓰러지는 건데 할 때마다 꺄르르 웃으며 너무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pushing mommy, falling down 등 상황에 맞는 언어를 스스로 내뱉는다.


예전에는 내가 거의 모든 활동을 주도하고 리드했다면 이제 스텔라가 주도하고 리드하는 비율이 많이 늘어났다. 얼마 전에도 한동안 안 하던 인형의 집 놀이를 먼저 시작하더니 내가 좀 맞춰주자 신나하면서 인형들을 집 구석구석에 배치하며 "What is daddy doing?" "Daddy is taking a bath" 등의 대화도 하고, 차를 타고 여행을 가기도 하는 등 스스로 놀이를 주도했다.



사회적 참여 및 상호작용 증가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상호작용 원활히 하고, 시키지 않아도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질 때 Hi, Bye 등의 인사를 한다. 특히 학교 끝나고 센터로 이동할 때 프론트 데스크를 지나며 나오는데 항상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Bye! 하고 인사해서 프론트 직원들도 스텔라를 예뻐한다.


만난 지 두 달 된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을 거의 다 알아서 사진을 보며 누구냐고 물으면 이름을 말해준다. 예전에는 또래랑 손잡는 것도 싫어하고 거부했는데 이제 자연스럽게 손도 잘 잡는다. 학교 recess 시간에 친구들과 미끄럼이나 그네 등을 타며 같이 잘 어울려 논다고 한다. 센터에서도 또래 상호작용을 잘 해서 심지어 스텔라의 담당 BCBA는 스텔라가 'very social' 하다고 했다.


지난여름에 처음으로 발레 레슨을 시작했다. 사실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그냥 부딪쳐보자는 생각으로 여름방학 특강 레슨에 등록했다. 한 15명 정도의 또래 아이들이 함께 받는 그룹 레슨이었다. 1시간여의 수업 시간 동안 큰 창을 통해 참관할 수 있었는데 처음엔 아주 엉성했다. 선생님이 하는 동작을 따라서 하기보단 혼자 거울을 보며 마음대로 움직였고, 지시에 바로 따르기보단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조마조마 콩닥콩닥해서 손에 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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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박자 늦긴 해도 어쨌든 지시에 따랐고, 한 박자 늦긴 해도 다른 아이들이 이동하면 따라서 움직였다. 어쨌든 조금 느리긴 해도, 선생님의 손이 한 번 더 가긴 했지만 10명 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룹 수업에 참여한 것이다. 스텔라의 거의 첫 그룹 수업이었고, 심지어 일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첫 사교육 수업이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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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특강을 마치고 학교 개학에 맞추어 지난 8월부터 새로운 1년 과정 수업을 등록했다. 스텔라의 늦은 대근육 발달 수준을 고려해 가장 기초반 수업을 선택했다. 지난 여름특강과는 달리 한 5-6명 정도의 소그룹 수업이었는데 아이들 수가 적어져서 그런지 스텔라의 참여도도 더 향상했다. 선생님이 하는 동작을 바로바로 따라서 하고 지시에도 곧잘 따랐다. 발레 슈즈와 탭 댄스 슈즈를 번갈아 신는 과제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스스로 잘 해내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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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ABA 센터, 발레 레슨과 토요일 한글학교 스케줄까지, 스텔라는 점점 사회적 루틴에 잘 적응해 가고 있다.



하나 더, 그동안 누가 스텔라에게 "Hi, Stella!" 하고 인사하면 스텔라는 그 말을 그냥 따라서 "Hi, Stella!" 하고 대답하곤 했다(반향어). 나는 인사할 땐 상대방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ABA 센터에 갔는데 "Hi, Cindy!" 하고 상대방 선생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자기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며 자아개념과 동시에 사회적 소통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4. 신체 및 운동, 감각



화장실 자립


나의 그동안 가장 큰 걱정이자 스트레스 요인은 바로 잦은 소변 실수였다. 가장 기본적인 자조 활동이자 자기 조절력이라 할 수 있는, 요의를 인식하고 화장실에 스스로 가는 것은 중요한 독립 기술이다. 그동안 이 부분이 안정적이지 못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속상한 적도, 조절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던 순간도 많다. 잘 하다가도 주기적으로 실수를 하곤 했다. 특히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은 시기엔 더 그랬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화장실에 가라고 리마인드 시켜주어야 했다.


얼마 전 한글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안간힘을 쓰며 참으면서 스텔라에게 "엄마가 지금 화장실 가고 싶은데 참고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텔라의 카시트 벨트만 풀어주고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잠시 후 스텔라가 집 안으로 들어와 2층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2층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텔라가 스스로 판단해서 화장실에 간 것이다. 그때의 감격이란.



대근육 및 소근육 협응


대근육 발달이 늦어 어설프게나마 두발 점프를 하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 일이다. 이제 안정적으로 두발 점프를 할 수 있을 만큼 운동 능력이 발달해서 신이 나면 폴짝폴짝 뛰면서 자기감정을 표현한다. 남편이 팔굽혀펴기나 스쿼트 등의 근력운동을 할 때면 본인도 옆에서 따라 한다. 어설프게 따라 하는 동작이 너무 귀엽다.


손가락 분화 및 가위질, 풀칠, 블록 조립 등 소근육 협응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빨래 개기를 즐겨 하며 심지어 잘 한다. 2층에 혼자 올라가 한참 있다가 내려오는데, 보면 내가 건조기에서 꺼내 바닥에 펼쳐놓은 빨래들을 스스로 개 놓는다.


색칠하는 실력도 많이 좋아져서 선 밖으로 많이 안 나가고 빠진 부분 없이 꼼꼼하게 칠한다. 그리고 그동안 글씨 쓰기를 할 때 점선 따라 쓰기(tracing)은 잘 했는데 빈칸에 스스로 글자를 형성해서 쓰는 formation은 힘들어했는데 이제 드디어 formation이 가능해졌다. 이건 운동 계획력(motor planning)과 공간지각력의 협응이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직 네모칸 안 가운데에 적절하게 배치하거나 알파벳의 경우 4선에 딱 맞춰서 글자를 쓰는 것은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건 차차 연습하면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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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스텔라가 패션에 관심이 많다. 아침마다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고르는 건 물론이고, 주말에 집에 있을 때면 혼자 2층에 올라가 여러 번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한번은 스스로 고른 옷을 입고 내려왔는데 보라색 티셔츠에 보라색 바지, 보라색 양말로 깔 맞춤을 한걸 보고 빵 터졌다.


본인 옷만 고르는 게 아니라 심지어 내가 입을 옷도 골라준다. 아침에 내가 옷을 갈아입을 타이밍에 늘 드레스룸으로 들어와서 뭐 입을지 골라준다. 또 내가 한번 입었던 상의와 하의의 옷 조합을 기억해서 내가 상의를 고르면 그에 맞는 하의를 귀신같이 골라낸다. 얼마 전에 내가 흰색 끈나시와 그 위에 흰 셔츠를 매치해 입었던 걸 기억하고는, 내가 흰 나시를 고르니 옷걸이에서 흰 셔츠를 가리키는 걸 보고 스텔라의 센스를 칭찬해 주었다.


또 모방이 엄청 늘어서 내가 하는 거의 모든 말과 행동을 다 따라 한다. 그냥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그대로 흡수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한 문장을 말해도 그대로 흡수하니까 혹시 틀린 문장을 말하지 않도록 더욱 공부해야 한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예를 들어 흐트러진 카드를 쓸어 모아 책상 위에 탁탁 쳐서 정리해서 케이스에 넣는 행동을 고대로 따라 해서 이제 카드 착착 정리하기도 잘한다. 긍정적인 것뿐 아니라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 혹은 혀를 쯧 차는 무의식적인 행동 역시 그대로 따라 해서 좀 무섭다.


자고로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데, 스텔라에게 긍정적이고 올바른 모습만을 보여주기 위해 나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지금까지 스텔라의 지난 두 달간 폭풍 성장 모습을 영역별로 정리해 보았다. 글을 쓰며 기억을 더듬고 사진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그냥 막연하게 아이가 '요즘 좀 좋아졌네'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다. 감사한 일이다.


지난 7년간 모든 발달이 느려 '발달 장애' 혹은 '자폐 스펙트럼'의 진단 틀 안에 갇혀 있던 아이였다. 물론 여전히 또래에 비해 느린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겉으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만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스텔라의 보이지 않는 내면에는 꿈틀거리며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거대한 생명의 리듬이 있다.


지금처럼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물,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주면 자신의 때가 되었을 때 자연스레 자라날 울창한 나무의 에너지 말이다. 지금은 땅 위로 잘 보이지 않지만 아래로 엄청나게 무성하고 단단한 뿌리를 사방으로 내리고 있는 중이다.



설사 조금 느리면 또 어떠한가.


제 나이 또래보다 1, 2년 좀 느리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나는 3살 연하의 남편과 살고 있는데, 내가 그보다 3살이 많다고 해서 내가 훨씬 더 똑똑하고 또 현명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회에 나가면 한두 살 정도는 그냥 친구 먹지 않나. 여기 미국 사회는 더더욱 나이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고.


아이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120년 살 건데 이제 겨우 7년 살았다. 앞으로 살아갈 무한한 가능성의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조급해할 필요도, 좌절할 이유도 없다. 때가 되면 아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온전함의 에너지가 스스로를 펼쳐낼 것임을 안다.



스텔라는 현재 '외부 개입으로 끌어올리는 단계'를 지나

'스스로 뇌가 연결을 만들어가는 시기'에 진입했다.



스텔라는 잘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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