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집 앞 차도를 건너던 순간이었다. 건너편에 있던 동생에게 달려가다, 달려오던 버스에 치였다. 몇 미터를 날아가 그대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엄마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셨고,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의식을 잃은 채 일주일을 누워 있었다.
의식이 사라진 혼수상태.
의사들은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아 ‘뇌가 부었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중환자실 내내 옆을 지키며 애타게 내 이름을 불렀다.
“00아! 00아!! 엄마 말 들리면 손가락 좀 움직여봐!”
그러다 내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기라도 하면, 그들은 눈물 섞인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살았다!!!”
그 간절한 기도 덕에, 나는 일주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일주일은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온 뒤부터였다.
어느 날 깨어보니,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고의 순간도, 병원에 실려온 기억도, 심지어 동생에게 가기 위해 차도를 건넜던 기억조차 없었다.
“엄마, 내가 왜 병원에 있어?”
“사고가 났었어.”
한 달간 치료를 받고 퇴원하던 날, 동네 사람들은 ‘죽었던 아이가 살아 돌아왔다’며 기뻐했다. 의식이 사라진 그 일주일간, 분명 내 심장은 뛰고 있었고 숨도 쉬고 있었다. 몸은 살아 있었지만 정신은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는 바로 ‘의식의 존재 여부’였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의식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의식의 진동수’란 무엇인가.
정신과 의사이자 영성가인 데이비드 호킨스는 <의식 혁명>에서 인간의 의식을 수치로 표현한 ‘의식 지도’를 제시했다. 그는 의식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존재의 근본적 에너지장’으로 보았다. 모든 존재와 경험이 일어나는 근본적 기반이 곧 의식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말한 ‘의식의 수준’을 ‘의식의 진동수’라고 받아들였다. 나에게 의식은 단지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진동하는 하나의 에너지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의식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더욱 미세하고 투명한 에너지 진동으로 공명한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근육테스트를 통해 측정한 후, 1에서 1000까지 수치화했다. 이 척도에서 의식의 수준을 가르는 반응점이 200이다. 200 아래의 수준에서는 죄책감, 두려움, 분노 등이 주된 특징이며, 그 이상으로 올라갈수록 수용, 사랑, 평화 등의 보다 고차원적 수준으로 향상된다.
나는 스텔라의 발달이 느리다는 사실을 처음 받아들였을 때, 의식의 수준이 20~50 사이를 오갔다.
자책, 절망, 비난, 미움.
그 부정적인 의식 상태 속에서 나는 그러한 진동에 상응하는 부정적인 현실을 경험하고 있었다. 낮은 의식의 상태에 머무른다면 결코 높은 현실을 경험할 수 없다.
그 후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의식의 진동수를 높이겠다는 ‘의도’를 품었다.
낙관의 태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지점이 바로 호킨스가 말한 분기점인 의식 레벨 200, 용기의 진동이었다.
그 이후 나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의식의 진동이 달라지면, 현실의 주파수도 달라진다는 것을.
작년 상반기, 나는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무한한 사랑과 충만한 감사’의 상태를 체험했다. 그때 나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사랑과 평화에 머물렀다. 스텔라의 존재 자체가 선물과도 같았고, 내가 느낀 것은 말 그대로 무한한 사랑과 감사였다. 그리고, 스텔라 역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다.
우리는 그 순간, 그저 존재 자체로 머물렀다.
아무런 말도 필요 없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졌고,
그 어떤 분노와 슬픔도 없었다.
무한한 사랑의 현현으로서, ‘지금 여기’에 그저 존재했다.
그 순간, 스텔라가 변했다. 지금껏 보여주었던 그 어떤 모습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 아이의 눈빛에는 전보다 훨씬 깊은 집중과 생기가 있었다. 나의 의식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듯이.
그때 내 마음속에 떠오른 단어는 하나였다.
“기적”
나는 믿는다.
의식이 높은 진동수에 머물 때, 사랑과 감사, 평화의 파동 속에서 현실은 기적처럼 변화한다는 것을.
호킨스 역시 의식의 수준이 ‘훈련과 실천’을 통해 바뀔 수 있는 스펙트럼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보다 높은 수준의 의식에 머물렀을 때, 삶이 보다 통합되고 기적처럼 느껴지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의식은 어디에 머물러있는가.
나는 어떤 감정의 파동을 내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사랑, 감사, 평화.
그 진동에 머무를 때, 나는 다시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현실은 바깥에서 오지 않는다.
내가 보낸 파동이 거울처럼 되돌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