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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ji Apr 16. 2019

이러다 죽는 걸까?

워킹맘 과로사 걱정

'77 사이즈 아줌마'의 '아줌마'에 해당하는 이야기랄까. 요즘 나도 모르게 남편 K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죽으면 풍장을 시켜주거나, 화장해서 가루를 아프리카 나미비아로 가서 좀 묻어주라. 아, 풍장은 시체를 그냥 두고 새들이 뜯어먹어야 하는데 그건 우리나라에서 불법일 것 같네. 쓰레기 불법 투기 이런 걸로 생각할 것 같아. 나 좋자고 남편을 범법자를 만들 수는 없으니, 그냥 그럼 나미비아 사막으로 하자."


이쯤 진행되면, K가 소리를 빽 지른다.


"죽어서도 나를 귀찮게 할 셈이야!!"


죽음에 대한 생각,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진심이다. 3,40대 워킹맘이 쓰러졌다는 얘기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덜컹한다. 최근 벌어진 일들만 얼핏 떠올려도 적지 않다. 지난해 42살밖에 안된 워킹맘 고등법원 판사가 일요일에도 출근해 다음 날 새벽까지 판결문을 쓰고 퇴근해서 안방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하던 외교부 국장도 현지에서 쓰러져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녀 셋의 엄마인 30대 복지부 사무관은 복지부 건물 계단에서 심정지로 발견됐었고... 이들의 고통의 나의 것인 양, 이들이 겪은 일이 나의 미래 인양 가슴이 먹먹해진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취재하던 날

방광염 걸리는 정치부 기자 생활 


처음 정치부에 왔을 때 한 후배가 '방광염을 조심하라'라고 말했다. 소변을 참으며 일을 하다 보면, 방광염에 걸린다는 거였다. 처음엔 도대체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소변을 참으며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정치부에 오기 전에는 정치 기사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불나거나 비 오는 현장에 가는 일도 없고, 정치인들이 하는 말 그냥 인터뷰 몇 개 넣어서 제작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간과한 것이 있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수많은 장소에서 입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말들을 쏟아낸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을 다 듣고 파악하고 분석해야 그 날의 뉴스가 나오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하루 종일 초집중한 상태로 미친 듯이 바빴다. 그래서 소변도 급하지 않을 때에는 되도록 참았다가, 기회를 틈타 화장실을 후다닥 다녀와서는 다시 일하는 게 일상이 됐다. 그리고 말 그대로 이건 그저 일상일 뿐, 훌륭한 정치부 기자가 되기 위해선 이런 일상과는 별도로 밤낮으로 최대한 많은 정치권 인사를 만나 돌아가는 속사정을 별도로 취재해야 한다.


노동법과 가족친화적인 문화를 강조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로 기자들의 근무 여건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늘 아침 8시 전에 집에 나가고, 저녁 8시 전에 집에 돌아오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물론 일주일에 몇 번씩 있는 저녁 자리는 논외로 하고서도 말이다.


방송을 진행하는 주조, 그리고 대대적인 변장 이후 나의 모습


정치부 기자 + 앵커


여기에 주말 앵커를 맡는다는 것은 고정적으로 토요일 새벽 출근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뉴스를 진행하는 토요일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4시 전에 회사에 도착한다.  일찍 잠드는데 실패하기라도 한 날에는 꼬박 야근한 것처럼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앵커를 맡았다고 갑자기 정치 팀원들의 주말 근무를 나 때문에 모두 바꿀 순 없었다. 한동안 정치부 주말 근무를 같이 하면서 토요일에 앵커를 하고 그 날 제작까지 마치고 저녁때 집에 들어가거나, 토요일에 앵커를 하고 일요일에도 근무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제 정치팀에서 금요일은 되도록 제작에서 빼주고 주말 근무에서도 제외시켜 주면서 한결 살만해졌지만, 이질적인 두 업무를 함께 한다는 점에서 힘에 부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업무와 별도로, 모든 보도국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야근 업무, 밤을 새워서 다음 날 아침 뉴스를 준비하는 일도 2주에 한 번씩 돌아온다.   

 

요즘 툭하면 온갖 바닥에 앉거나 누우시는 아드님


정치부 기자 + 앵커 + 엄마 


헌신적으로 아기를 돌봐주시는 든든한 부모님에 나의 더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혼 이후 온갖 집안일은 그냥 당연히 자기 일로 생각하는 남편도 있지만, 그래서 나의 여건은 대한민국 상위 1%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육아는  어렵다.  


술을 먹지 않은 날,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혈기 왕성한 두 돌 반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동안 불자동차나 경찰차를 출동시키는 빠빵 놀이를 하고, 그다음엔 내가 도둑이 되어 온 집안을 뛰어다녀야 하는 '도둑잡기' 놀이 차례이다. 간신히 잘 시간이라고 설득해  방 안으로 데리고 가도 기본 동화책을 5,6권은 읽어야 아기는 잠이 든다.


책을 읽어주다 같이 쓰러져서 잠드는 경우가 많은데, 잠들지 않고 깨어있다면 부족한 기본 식재료와 물품이 없는지 확인해서 인터넷 쇼핑을 해야 한다. 노동력을 갈아서 만든 서비스라는 비판도 있지만 워킹맘으로선 밤 11시까지만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얼마나 감사한지. 빵과, 쨈, 우유, 기저귀 등 생활에 필요한 주요 물품들을  쇼핑할 유일한 시간이 아이가 잠든 이후에 찾아온다.   


그리고 아기가 있는 집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주중보다 주말이 더욱 힘들다는 점을. 휴일 없는 이런 생활이 얼마나 계속되고 있는 건지, 토요일 앵커를 하고 주말에 아이를 보고, 월요일에 출근할 때에는 몸이 천근만근,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때는 무엇보다 야근한 다음 날이다. 밤을 새우고 아침 9시 넘어 집에 들어와 오후 1,2시쯤 일어나서는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간다.  야근한 다음 날이라도 내가 아이를 보지 않는다면, 매일 아침 7시까지 우리 집으로 출근하셔서 우리 부부 중 한 명은 돌아와야 집에 돌아가시는 시부모님은 금세 골병이 드실 것이다. 버텨야 한다는 마음으로, 몸에 남은 에너지 한 톨까지 모아 악으로 깡으로 그 날을 견딘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일상을 아슬아슬 아등바등 유지하는데 나의 모든 에너지가 들어간다.  다른 것들은 매우 중요한데도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한 때 애절했던 나의 사랑하는 남편 K? 잘 보지는 못하겠지만 알아서 잘 살고 있겠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싶어 했더라? 그런 자의식은 지금 사치지. 정신 차려. 건강? 운동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더라. 단명은 당연하지만 아프지나 말고 금방 죽어야 할 텐데. 이런 식이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뭐 하나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들 때, 마음이 결국 무너진다. 기자를 잘하고 싶지만, 부모님을 퇴근시켜드리려면 집에 가야 하고, 앵커도 잘해야 하는데 따로 모니터링을 하거나 준비할 시간은 없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기가 엄마를 잘 못보다 보니 밤에 깨서도 할머니를 찾고. 이럴 때 힘든 마음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숨 가쁜 일상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와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뉴스를 모니터링하다가 다른 회사에 '물먹은', 그러니까 내가 몰랐던 단독 기사가 나간 걸 알게 됐을 때,  왜 난 이렇게 힘겨운데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것일까,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 터진 눈물은 몇 시간 동안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져, 물먹었다는 보고도 통화가 아닌 문자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워킹맘은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하는데, 잘 내려놓지 못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다 보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가혹한 여건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환경에 처해보지도 않은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비수를 찌른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 전투력이 약해진다는 둥, 그저 편하게 생활하려고 내근직을 택했다는 둥 하면서.




지금 그 자리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모든 워킹맘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정도면 됐다. 우리 죽지 말고 잘 살아남자. 세상이 조금씩은 계속 바뀌겠지. 육아맘들에게는 더더욱 경의를 표한다. 1년 남짓한 육아휴직 기간은 정말 돌이키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내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이었다. 단언컨대 아기를 보는 것보다는 일하는 게 쉽다. '맘충'이라고 폄하하는 것들은 갇혀서 애를 좀 보아봐야 한다. 싱글들도 고생이 많다. 내가 비혼주의로 살 거라 생각하다 처음 아줌마가 됐을 때 '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류 혼인 여성들이 뭐 이렇게 사회를 바꾼 게 없어!'라고 분노했었는데, 아줌마가 되고 보니 그냥 숨 붙이고 있을 힘도 부족하다. 나 같은 마누라를 만나 들들 볶이고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을 우리 시대 남성들에게도 애도를 표한다. 그래도 우리 모두 파이팅.

yoji 소속 직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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