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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Sep 16. 2023

(책꼬리단상) 먹으니까 먹어지는 삶

거봐, 힘이 나지?

[먹으니까 먹어지는 삶]

한참이나 고개 처박고 밥을 먹는 나를 본 수녀님께서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시며 “거 봐. 먹으니까 또 먹어지지?” 하셨다.

  이내 밥상을 무르자 수녀님께서는 다과를 내오셨다. 차를 마시며 그간 속 썩은 일들을 수녀님께 막 쏟아놓았다. 수녀님께서는 손수건을 건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 말 신경 쓰지 마. 누구는 사람 볼 줄 아나. 우리 다 마찬가지야. 자기 자신도 못 보는 게 인간인데…. 근데 잘 가고 있는 나 등 떠밀어 넘어트리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런 나 일어나라고 손잡아주는 것도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 산만언니 저




강아지풀 좁쌀들이 익어가는 가을 입구입니다.
강아지풀 씨앗이 갈색으로 익어가면
참새들이 달려듭니다.
참새가 먹을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크기를 갖고 있습니다.

덩치가 큰 수크렁 씨앗은 아마도 참새들은 먹기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저마다 자기 분수에 맞는 그릇이 있는  거지요.



강아지풀 낱알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흉년이 들면
곡식대용으로도 먹었답니다.

쌀도 보리도 없으면
좁쌀이라도
강아지풀이라도 먹어야 했지요.

저 낱알로 밥을 지어 먹었을 가난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집니다.



예전 배 곯던 시절에 비하면
많은  것이 풍족해진 세상입니다.

저는 배 그러니까 위장 크기가 작아
밥을 많이 먹지도 못할 뿐더러
식사를 하고 난 직후에는
과일이며 커피며 뭐든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습니다.

결혼 초,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신혼부부 보금자리에 찾아왔었습니다.

정성껏 차린 식사를 하고
과일을 깎아 내놓았는데
저는 사과 한 조각도 먹질 못했습니다.

장모님이 그렇게 권했는데도
손사래를 쳤어요.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요.


오늘 책 주인공은
먹으니까 먹어지더라,고 말합니다.
생각이 없었는데
먹으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트라우마와 상처가 있어
밥 생각이 나질 않는 때가 있습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너무 힘들어서
너무 괴로워서

손을 내젓습니다.
밥 생각이 없어.

그래도 주변에서는
그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숟갈을 권합니다.

그때 못 이기는 척 숟가락을 들면
신기하게 밥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신기하게
발목에 힘이 생기고
눈에 생기가 돕니다.

밥의 힘이죠.
아니,
사랑의 힘.
사람의 힘.

나눔의 능력이지요.

일주일간 고생 많으셨어요.
힘들어 밥  생각 없어도
가족 생각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생각해서
억지로라도 숟가락을 잡으시길요.

맛있게 먹는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
9월 15일간 살아내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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