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12일 (금)
[공황장애 일기] 금요일에게 미안해
2024년 1월12일 (금)
집에만 있다보니 날짜 가는 걸 잊었다. 집에만 있다 보니 금요일의 소중함을 잊었다.
아내가 출근하기 전 "오늘 금요일이네. 이틀동안 당신하고만 있어서 좋다."라고 말한다.
일주일만에 금요일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어서 다가오기를 바라는 그 금요일. 이제 첫 금요일인데 어느새 그 소중함, 그 설레임, 그 기쁨의 기대감을 다 잊고 있었다. 아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실감이 난다.
맞아. 나도 금요일이 오기를 간절히 원했었지. 갑자기 금요일에게 미안해졌다.
그러고보니 오늘까지 나는 연차였고, 오늘이 진짜 내 퇴사일이다. 월급의 3분의 1 정도는 나오겠구나. 그러면 2월달 생활은 어찌어찌 할 수 있겠지.
다 떠나고 남은 집에서 혼자 아침을 먹고 약을 먹는다. 이제 혼자 아침을 먹는 일이 익숙하다. 사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면서 간단하게 고구마랑 쥬스를 먹을 때 같이 먹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냥 일어나기가 싫었다. 일어날 힘도 생기지 않고 밥 먹을 의욕도 생기지 않고 그래서 계속 누워만 있었다. 아내가 출근하기 위해 옷을 다 입고났을 때야 겨우 부시시한 얼굴로 일어나 쥬스 한 잔을 마셨다.
혼자 창을 보며 먹는 밥상은 경건하다.
단백질 보충이 문제이긴 한데, 일단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었다.
사진에 보이는 풀들을 한 끼에 다 먹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작게 먹는 소식도 중요한 식사 전략이다.
이제 먹는 것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아침 햇살이 떠올라 내가 앉은 쇼파부터 비추기 시작한다.
햇살은 이제 쇼파를 조금씩 야금야금 땅을 넓히듯 주변을 넓히다가 곧 쇼파 끝까지 자신의 햇살을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면 쇼파에 온 몸을 맡겨도 된다. 나는 햇살에 풍덩 빠지는 것이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그 온기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온기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
눈을 뜨고 햇살을 쬐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감사.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인간도 햇살을 먹고 자라는 것 같다.
호흡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어떤 생각이 불쑥 나를 파고들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인다.
하지만 아직 과호흡은 아니다.
오늘은 호흡이 꽤 고르지 않다.
책을 펴서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성경책만 시편 앞부분 겨우 읽고 덮는다.
눈을 감고 햇살을 쬐면서 신께 기도를 한다.
오늘은 일을 좀 해야 한다.
퇴사하기 전 외주 일을 의뢰받았는데, 생활고에 시달릴 걱정에 그러마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내 몸 챙기기도 버거운 상태에서 일정에 맞추어 일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가볍게 생각한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알고 있던 후배에게 일을 분담하고, 요청한 일을 많이 줄이긴 했지만 그래도 파워포인트를 보고 엑셀 데이터를 보고 특허 청구항을 분석하는 일 등은 책도 겨우 읽는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에너지를 최대한 쏟지 않도록 나를 잘 관리하며 일머리를 늘여야겠다. 솔직하게 말하면, 마냥 쉬기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매달 나가야 할 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고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빨리 길러야 한다.
아침에 보니 목련나무에 봉우리가 벌써 봉긋 올라와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 몰려왔다. 아, 벌써 저렇게 준비하고 있구나. 너는 지금부터,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도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구나.
오늘 진짜 퇴사하는 날.
목련나무를 보며 다시 시작하는 날로 힘을 내본다.
다시 걷기도 시도해보고,
책읽기도 시도해보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 봐야겠다.
오늘은 백수로서 맞이하는 첫 금요일이며, 진짜 퇴사하는 날이며, 아내는 힘든 남편 걱정에 한 주를 보내고 맞이하는 첫 금요일이다. 금토일, 아내와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