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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띄우는 편지
by 요나 Apr 04. 2018

당신의 추억 속에도 목욕탕이 있나요

터키의 전통 목욕탕 하맘(Hamam)에서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친구에게,



안녕하세요? 지금 당신이 있는 그 곳의 날씨는 어떤가요?

이스탄불은 도도한 겨울 아가씨가 막 떠나간 자리에 수다쟁이 봄 새댁이 자리잡으려는 중이에요. 하지만 아가씨가 막 떠나간 자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서인지 거리 곳곳에 햇살은 가득해도 바람은 아직 쌀쌀해요. 저는 한국에서 옮아온 목감기가 거의 다 나아가지만 밭은 기침이 쉽게 멈추질 않아서 며칠 전 터키식 목욕탕 ‘하맘(Hamam)’에 다녀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뜨끈뜨끈, 노곤노곤한 터키의 하맘과 제 추억 이야기를 당신께 띄워 드리려고요.





내 어린 시절 추억 속의 목욕탕



당신의 추억 속에도 목욕탕이 있나요?

저는 한국식 목욕탕을 참 좋아해요. 어렸을 적에는 일요일 오전마다 엄마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가곤 했었는데 말이죠, 목욕을 끝낸 후에 숱이 많아 잘 마르지 않는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하얗고 통통하게 불은 손으로 먹는 햄버거 점심은 그야말로 별미였어요. 하지만 목욕탕에 한 번 다녀오면 소중한 일요일 오전이 전부 다 사라져버리는 탓에 아깝고 원통한(?) 기분이 드는데다 도통 늦잠을 잘 수 없어서 엄마에게 “목욕탕 안 갈래!”하고 떼를 쓰기도 했지만, 엄마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서 때를 빡빡 밀고 사우나에서 몸을 푸는 것이 일종의 종교 의식만큼이나 중요했기에 저는 투덜거리며 반 강제로 목욕탕에 끌려갈 수 밖에 없었어요.  


일요일 늦은 오전이 되면 사람들이 목욕탕에 몰려오기 시작하기에 우리는 최대한 이른 시간에 일어나 새벽같이 목욕탕으로 향하곤 했어요. 그곳까지 향하는 과정은 번거로웠지만(가끔은 엄마 차를 타고 거의 1시간에 걸쳐 특별히 물 좋은 목욕탕을 찾아가기도 했었어요) 아무도 없다시피 한 목욕탕에 들어가면 꽤나 보람찼달까요. '사람 없을 때 빨리 목욕을 끝내고 나가야만 해!' 라는 일념으로 일단 플라스틱 바가지들과-엄마와 제가 사용할 큰 것 두 개, 작은 것 두 개- 의자를 챙겨 목욕탕 안 적당한 자리를 맡아야만 해요. 그리고 자리에서 혹은 샤워대에서 간단히 몸을 씻고 나면 얼른 뜨끈한 탕에 들어가고 싶어서 마음이 두근거렸죠.  


물에 젖어 매끈한 타일들을 밟으며 뛰다시피 걸어가면 그 끝에는 냉탕, 열탕, 미지근한 녹차탕이 있었어요. 뜨끈한 김이 솟아오르는 아침의 텅 빈 열탕이란! 아직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듯 흰 거품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을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표면에 일단 발을 살짝 담그면 온도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순간 찌릿!한 느낌이 들곤 했죠. 순간의 고통을 꾹 참고 하반신부터 천천히 탕에 걸터앉으면 얼마나 따듯하고 시원한 세계가 펼쳐지는지 몰라요. 가만히 앉아서 몸에 힘을 빼고 물살에 이리저리 흐느적거리는 몸을 지켜보는 것도, 아래로부터 보글보글 솟아나는 열탕의 파도에게 세찬 마사지를 받다가 나가떨어지는 것도 좋았고요.  





이렇게 장난치며 몸을 불린 다음에는 한증막으로 달려가요. 잔뜩 김이 서려 안이 보이지도 않는 무거운 유리문을 ‘낑’하고 열면 훅, 하고 얼굴에 닿는 후끈하고 습습한 무거운 공기에 도망가고 싶어지곤 했지만 어른들처럼 오래오래 참아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자리에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고, 수건을 얼굴에 대 보아도 뜨거운 열기는 어린 제가 참아내기에는 고역이었기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핑 도는 듯 느껴질 때쯤엔 밖으로 뛰어나가 찬 물을 정신없이 몸에 끼얹곤 했어요. 그러면 어찌나 몸이 노곤해지던지… 이렇게 놀면서 씻다가 목이 탈 때면 엄마가 전날 밤 준비해서 가져온 얼린 보리차를 목욕 바구니에서 꺼내 벌컥벌컥 들이키곤 했어요. 플라스틱 통 안에서 살짝 녹은 채 빙글빙글 돌아가던, 마치 하나의 작은 빙하 조각 같던 얼음의 차가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바쁘게 일하던 엄마는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고집스레 매주 목욕을 가곤 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삼십 대에 접어든 지금에서야 몸이 피곤할 때마다 뜨끈한 목욕탕, 수증기 가득한 공기, 그리고 미끌미끌한 젖은 바닥이 생각나는 걸 보면 저도 영락없는 엄마의 딸인가 봐요. 어쩌면 엄마가 그리도 기를 쓰고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가던 이유는 일주일 내내 이어진 직장과 삶의 고단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어요. 그래서 지난 수요일에는 멀리 한국에 있는 엄마 대신 친구와 함께 간단히 목욕 가방을 꾸려(너무 오랜만에 목욕탕에 가다 보니 가방에 뭘 넣어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당황한 것은 비밀이예요)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터키식 목욕탕 ‘하맘(Hamam)’으로 향했어요. 가이드로서 투어를 할 때 손님들께는 하맘에 대해 입이 닳도록 설명드리지만 정작 나 자신은 영 발길이 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하맘 투어를 시작해 볼까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고 있는 터키는 과거 수많은 문명이 자리잡았던 곳이며 그 생생한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하맘이에요. 옛 터키의 주인이었던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의 오스만 제국의 목욕 문화가 한 데 합쳐져 탄생한 하맘은 방 안을 뜨겁게 데운 후 그 열기로 땀을 빼며 목욕하는 곳이랍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목욕탕과는 다르게 하맘 안에는 물로 채워진 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니 이 점을 유념하세요(단,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곳들은 예외!). 터키인들은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들의 후손이기에 ‘깨끗한 물을 찾아 사용하는 것’에 매우 민감했어요. 그 당시의 풍습이 지금까지 영향을 끼쳐 터키인들은 한 곳에 고여 있는 물은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예요. 따라서 전통적으로 탕이나 욕조 문화보다는 흐르는 물을 바가지 등에 받아내어 바로바로 씻는 방식이 발달했답니다.   


그럼 대체 탕이 없는 하맘 안에는 무엇이 있냐구요? 알려 드릴게요! 하맘은 크게 차가운 방(Soğukluk), 따스한 방(Ilıklık), 뜨거운 방(Sıcaklık)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요. 차가운 방은 일종의 탈의실이자 휴게실으로 하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볼 수 있는 부분이에요. 중앙에는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위치하고, 그 가장자리로는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공간들이 칸막이 혹은 작은 방들로 분리되어 있어요. 그 안에 들어가 남들의 시선을 피해 옷을 갈아입은 후 소지품을 보관하고 다시 나오도록 되어 있죠.



터키 자알오을루 하맘의 '차가운 방' - 탈의실과 휴게실을 겸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cagalogluhamami.com.tr/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 한국과는 다르게 터키인들은 절대로 완전한 나신으로 목욕하지 않아요. 특히 하반신의 민감한 부분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그 부분은 꼭 꼭 가리고 들어가야만 해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터키인들의 이글이글한 수백 개의 시선이 당신에게 내리 꽂히거나, 주인장의 손에 붙잡혀 강제로 다시 탈의실로 되돌려 보내질지도 몰라요… 하맘에서는 이처럼 서로의 나신을 힐끔힐끔 볼 수 있기에 옛 터키 아주머니들은 마을의 젊은 처자들 중 어느 여인이 며느릿감으로 괜찮을지 바로 이 곳에서 관찰하며 점찍어(?) 두거나 남몰래 평가하기도 했다고 해요. 하하… 재미있는 풍습이죠?


어쨌든, 당신이 하맘에 방문한다면 주인장이 제일 먼저 체크무늬가 들어간 얇은 타월을 건네줄 텐데 이는 페쉬테말(Peştemal)이라는 터키 전통의 목욕용 수건이에요. 차가운 방에서 탈의 시 이 수건을 이용해 하반신을 꼭 가리고 나오도록 하세요(당신이 여성 분이라면 이 수건으로 몸 전체를 둘러줘도 좋아요. 혹은 비키니 수영복을 가져가도 유용하고요. 어쨌든 여성 분은 속옷 혹은 비키니 하의를 입은 후 수건을 두르세요). 그리고 탕 안의 미끄러운 바닥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목욕 신발도 제공되니 꼭 챙겨서 신도록 하고요. 이렇게 주의사항을 하나하나 알려드리니 마치 제가 당신의 엄마가 된 듯한 기분인데요?




터키 전통 목욕수건을 걸친 여인  *이미지 출처 https://www.vigotour.com/



자! 몸을 잘 가렸다면 이제 목욕에 필요한 물품들을 간단히 챙겨 따스한 방과 뜨거운 방 쪽으로 이동해야 해요. 참, 그리고 목욕탕 측에서 제공하는 목욕 바가지를 한 개 챙겨 가야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 않게 목욕을 좋아하는 터키 사람들은 본인 취향에 꼭 맞는 바가지를 집에서 직접 챙겨 오기도 한답니다. 이번에 하맘에 갔을 때는 제 앞에 앉은 터키 아주머니께서 사람 머리만큼 커다란 요구르트 통을 바가지 대용으로 사용하고 계셔서 웃음이 났어요. 요구르트 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 온 몸에 철벅철벅 끼얹는 모습이라니요! 친구와 함께 앉아서 몰래 킬킬 웃었는데, 우리 바가지보다 밑이 훨씬 깊고 커서 정말 유용해 보이더라고요.  


본격적인 목욕이 시작되는 따스한 방과 뜨거운 방은 그 전체가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있는데(터키는 대리석이 풍부해요), 내부가 적당한 열기로 달구어져 있어 들어가자마자 기분 좋게 몸을 감싸는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두 개의 방 모두 가장자리에 길다란 통 대리석 벤치가 이어져 있고, 그 벤치 사이사이마다 물을 받아 쓸 수 있는 수도꼭지가 있으니 적당한 자리를 골라서 앉으면 엉덩이가 따끈해져요. 보통 따스한 방의 중앙은 텅 비어있지만, 뜨거운 방의 중앙에는 사람 허리 높이까지 오는 거대한 대리석 판이 놓여져 있어요. 그 판의 크기는 목욕탕마다 다른데 작은 목욕탕의 경우 성인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정도, 큰 목욕탕에서는 성인 여덟 사람 이상이 너끈히 누울 수 있는 정도예요. 와우!



 터키 자알오울루 하맘의 뜨거운 방과 교벡타쉬  *이미지 출처: http://cagalogluhamami.com.tr/


이 대리석 판은 교벡타쉬(Göbek taşı)라고 불리는데, 매우 따끈하게 달구어져 있어서 그 위에 누우면 온 몸의 긴장과 피로가 스르륵 풀리는 마법이 펼쳐져요. 제일 먼저 몸을 간단히 닦고 교벡타쉬 위에 누워서 땀을 빼 보면, 물 속에서 몸을 불리는 것과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답니다. 그렇게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 어둑한 돔 사이로 하얀 빛이 듬성듬성 보여요. 터키의 대부분의 하맘은 오스만 제국 시절에(1299~1923) 지어진 것을 대이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에 사실 목욕탕이 아니라 역사 박물관에 가까워요. 그 역사는 보통은 길면 오백 년, 짧으면 백 년이니 혀가 절로 내둘러지지요? 누워서 하맘의 구조를 가만히 보면 몇 백 년 전의 전통적인 구조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모습은 꽤 단순하지만 제법 신비로와요.  


하맘의 천장은 동그란 돔형인데 그 정점에 작은 원형의 창문들이 뽕뽕뽕 뚫려 있어요. 계란 윗부분에 이쑤시개로 구멍을 여러 개 뚫었다고 비유하면 이해가 가실까요? 일반 창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 하맘의 창을 ‘코끼리의 눈’이라고 부르곤 해요. 어두침침한 회색 천장이 코끼리의 피부, 환한 빛이 들어오는 동글동글한 창문을 눈이라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적절한 비유라 할 수 있죠. 하맘의 돔을 겉에서 바라보면 창문에 밋밋한 평유리 대신 밥공기처럼 볼록한 컵 모양의 유리가 씌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종의 볼록렌즈 역할을 하여 낮 동안 태양열을 하맘 안에 잔뜩 모아준답니다. 그래서 그 내부가 쉽게 식지 않고 지속적으로 따끈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하니, 참 지혜롭죠?  



터키 자알오울루 하맘의 천장과 코끼리의 눈들  *이미지 출처: http://cagalogluhamami.com.tr/



교벡타쉬 위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마치 수많은 눈이 저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은 부끄러웠어요. 세월을 뛰어넘은 듯한 오래된 돔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 내가 정말 터키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그렇게 땀을 빼며 쉬고 있으면 목욕 관리사가 타이밍을 맞추어 찾아오는데, 원한다면 ‘케세(Kese, 때밀기)’ 혹은 ‘쿄퓩 마사지(köpük masajı, 거품 마사지)’ 서비스를 부탁할 수도 있죠.  


만약 케세를 신청한다면 대리석 벤치 위에 앉은 채로 서비스를 받게 돼요. 터키인들의 피부가 서양인들처럼 연약해서일까요? 우리나라에 비해서 때를 미는 강도는 약한 편이고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마무리 되지만 묵은 각질이 제거되어 피부가 매끈매끈해지니 어찌됐건 기분이 좋아요. 여기에 쿄퓩 마사지를 추가로 신청한다면 다시 교벡타쉬 위에 누워야 하는데, 그 위에 축 늘어져 따끈한 온기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으면 목욕 관리사가 커다란 자루에 비눗물을 넣어 조물조물하기 시작해요. 그러면 자루 안의 내용물이 보글보글 부풀어올라 깃털처럼 가볍고 풍성한 거품이 금새 만들어져요! 이를 온 몸 구석구석에 바르며 가벼운 마사지가 시작되는데, 그러면 일주일 내내 긴장했던 마음이 비누 거품처럼 사르르 녹으면서 머릿속 나쁜 생각들이 빠져나가는 대신 행복이 여유롭게 채워져요.



우리 동네의 작은 하맘



이 낯선 목욕은 이제 모두의 추억이 되어



이렇게 목욕을 마치고 나면 얼마나 시원하고 가벼운 기분이 드는지 몰라요. 다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차가운 방으로 나오니 하맘 주인장과 터키 여인들이 삼삼오오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다를 꽃피우고 있었어요. 터키의 하맘은 옛부터 여인들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 중 하나였기에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맡아 왔죠. 중간중간 외부의 출입문이 열리며 새로운 여인들이 등장할 때면 워낙 작은 동네의 하맘인지라 서로가 이미 다 아는 사이인 듯 반가운 인사와 안부가 흘러갔어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인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이면 참 재미있어요.



“아이고 뭐야, 오늘은 벌써 오는거야?”

“응, 지금 일 끝나고 왔지. 그나저나 치과는 어떻게 됐어?”

“다녀 왔는데 이 하나에 600리라씩 줘야 되더라.”

“그래? 그 정도면 가격 괜찮네. 그런데 파트마네 아들도 지금 의사 하잖아.”

“그래, 그 집도 자식들 참 잘 키웠지. 그러고 보니 그 집 딸이 요새…”



이런 정겨운 대화를 등 뒤로 하고, 채 마르지 않은 단발 머리를 휘날리며 집까지 휘적휘적 걸었어요. 봄 향기가 살짝 묻은 차가운 바람이 두 뺨을 스쳐 지나갈 때면 몸이 바르르 떨렸지만 어쨌든 즐거웠어요. 장소와 시간은 다르지만 어릴 적 목욕을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엄마와 걸어가던 일요일 아침 그 거리와 길들이 문득 생각났어요.


추억이란 참 신비해요. 내 안 어딘가에 쪼글쪼글한 애벌레처럼 곤히 잠들어 있다가, 따스한 봄 같은 하나의 계기가 생기면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라 사람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니까요. 사실 엄마랑 함께 목욕을 다녀오던 그 한가로운 아침들이나 목욕 후에 한 입 베어 문 햄버거의 꿀맛 같은 건 평소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럴 때 툭, 하고 튀어나와 나를 조금 슬프게 하다니.  






그래도 이렇게 먼 곳에서나마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고, 그 추억에 조금이나만 연결된 장소가 있다는 건 행운이예요. 제가 다녀온 이 하맘도 우리 동네의 별처럼 많은 터키인 가족들의 소중한 기억 안에 추억으로써 머물고 있겠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요. 이런 많은 이야기가 수백 년 동안 켜켜이 쌓인 곳에 저의 발자국을 살포시, 점처럼 찍고 와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 하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몇 십 년 동안이나 어떤 동양인 여자애들 얘기를 할지도 몰라요.   



“글쎄, 이전에는 동양에서 온 여자애 둘이 목욕탕에 왔었는데 말이야, 자기들끼리 탕 안에서 엄청 킬킬거리더라고. 그리고 어찌나 건물 안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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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회사원
2012~ 영혼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들려드리고 싶은 터키 이야기들이 많답니다. juibi@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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