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집을 떠나는 창업가의 소회와 회고
2023년 6월 30일로 남의집 서비스는 종료되었다. 서비스 종료 공지를 받은 유저들과 지인들은 한결같이 갑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에서 봤을 땐 순항 중인 서비스로 보였을 것이다. 코로나가 끝났고, 당근마켓과 서비스 연동까지 했으니 말이다.
서비스 종료의 원인은 내 경영 역량의 부족이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유의미한 비즈니스 성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를 위한 전략, 인사, 재무면에서 경영자로서 잘못된 판단을 했고 그것을 만회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실패를 마주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였다. 무언가에 홀려 미친듯이 달려온 지난 시간들을 송두리째 잘라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고, 그 시간이 없었다는 듯이 나 자신과 세상을 속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그 사고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요가와 명상으로 생각을 잘라내는 연습을 했다. 덕분에 지금은 현재의 나를 마주하며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서비스 종료를 통해 유저분들과 헤어짐을 고했으니 이제는 내 삶에서 남의집을 보내줄 시간이다.
서비스 종료 후 채무 변제를 위해 법인파산을 신청했고, 파산선고가 난 후 법원이 지정한 파산관제인의 주도하에 남의집 자산은 공개매물로 나왔다. 매수자가 나타났고, 매각 대금은 파산 관제인을 통해 채권자들의 배당금으로 전액 지급된다. 그리고 얼마전 폐업신고를 했고, 인수인계를 마친 인수자는 남의집 재오픈을 공지했다.
나, 김성용이 문지기라는 이름으로 일궈온 남의집 창업기는 여기까지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남의집 유저들은 계속 거실여행을 이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서비스 종료를 결정하며 호스트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정말 컸는데 이제 다시 그들이 남의집에 쌓아둔 추억들이 살아나서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호스트분들이 새로운 운영진들과 남의집을 계속 즐겨주시면 좋겠다.
서비스 종료 공지가 나간 후 많은 유저분들로부터 팬레터를 받았다. 남의집을 통한 좋은 분들과의 인연, 커리어의 전환점 등등 다양한 서비스 후일담을 들려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나의 다음 창업 아이템을 기대하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운영 마지막날에 방문한 남의집 호스트분께서는 감사패를 주셨다. 이런 유저분들의 반응 덕분에 창업가로서 내가 사랑받는 서비스를 만들었구나! 자신감을 얻었다. 더불어 그간 나의 경영적 판단을 복기해 보며 아쉬운 순간들을 추려내니 '다음엔 더 잘하겠네'라며 재창업의 의지가 싹텄다.
아산나눔재단에서 후원하고 피크닉이 기획한 전시 《회사 만들기》의 도록에 나의 창업회고문을 기고했다. 고군분투 중인 창업가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아래에 기고문을 남기며 2017년부터 끄적인 남의집 창업기를 마무리한다. 그동안 첫창업의 여정을 함께 해준 브런치 구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곧 다음 창업 스토리로 인사드리겠다.
지난봄, 5년 동안 이어온 사업을 지난 봄에 접었다. 서비스를 종료한 가장 큰 원인은 창업가이자 대표였던 내가 에고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에고라는 적》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에고'에 대해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에고에 빠져 그릇된 선택을 한 역사의 인물과 사건을 소개하며 에고에 휘둘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세상 모든 문제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 에고라는 주장인데, 다시 말해 지나친 자의식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창업 초기에 “남의집은 너를 닮았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때는 창업가로서 고민한 흔적들이 서비스 곳곳에 잘 묻어났다는 칭찬으로 들렸다. 그런데 서비스를 종료한 시점에 돌이켜 보니 칭찬이 아니었다. 고객 경험을 완성하기 위한 제품 기획, 디자인, 운영 정책 등 일련의 결과물이 나를 닮았다는 말은 내가 원하는 걸 만들었다는 의미다. 내가 원하는 걸 고객도 원할 것이라는 에고가 작동하지 않았나 곱씹게 된다.
운 좋게도 남의집은 초반부터 관심 갖는 고객들이 많았다. 마케터, 미디어 업계 종사자 등 트렌드를 주도하고 주변에 추천하길 즐겨하는 초기 고객들 덕분에 짧은 시간 내에 주목받았다. 나는 이런 반응에 고무되어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 남겼고 그 관심에 취해 있었다. 사업의 수익성이나 성장성보다는 주변에서 얼마나 관심을 주는지가 더 중요했다. 시나브로 서비스보다 그 서비스를 만드는 나를 알리는 일이 사업 목적이 되어 에고로 자랐다. 결국 일의 성과보다 내가 더 중요했던 거다.
에고가 커지니,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을 잘못 내리는 위험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사업과 나를 분리해야 하는데 사업적으로 유리한 판단이 아닌, 내 에고가 부정되지 않고 이것이 더 인정받는 방향으로만 사고 흐름이 트이는 위험한 경영자가 된 것이다. 두 가지 사례를 복기해 본다.
먼저 고관여 ‘모임’을 고집했던 사례다. ‘모임’은 우리가 판매하던 상품 단위인데, 호스트나 참가자 입장에서 진입 장벽이 높았다. 일단 호스트를 하려면 집이든, 가게든, 혹은 작업실이든, 본인 공간이 있어야 했다. 대화 주제도 명확해야 했다. ‘퇴근 후 시간되는 사람끼리 모여요’ 식의 모임은 진행이 불가했다. 가령 N잡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거나, 비혼으로 사는 희로애락을 나누는 식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모임 오픈을 승인했다. 이런 빡빡한 규칙이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었다.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업 확장을 앞둔 시점에 사내 워크숍을 진행했다. ‘모임’을 어떻게 정의하고, 그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고관여 정책을 재고하는 게 목적이었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운영상 변수가 많아질 터라 운영 기조도 다시 정비해야 했다. 모든 팀원이 본업을 뒤로하고, 종일 이 주제로만 의견을 나눴다. 마침 코로나로 잠잠했던 다양한 오프라인 모임들이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었고, 남의집과 대척점에 있는 저관여 모임은 빠르게 성장 중이었다.
지금의 포지셔닝을 계속 유지할지 팀원끼리 의견이 갈렸다. 결국 내가 고관여 모임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때 팀 메신저에 남긴 글에서 나의 에고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보겠다.
“모임은 남의집이 판매하는 상품이고, 이 상품은 우리 팀의 문제 해결 수단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를 통해 모임을 정의하는 판단 기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 작년에 결정한 문제 정의가 현재도 동일한가, 스스로에게 물었고 여전히 동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팀이 풀고자 하는 문제는 창업가의 창업동기와 연관된 아젠다이고, 그 문제는 아직도 저에게 유효한 소명의식과 맞닿아 있고 변경해야 할 외부 변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2022년 5월 팀 슬랙에 올린 글)
이 글을 발췌하면서 스스로 놀란 표현들이 있다. “창업가의 창업동기” 그리고 “창업가의 소명의식”이다. 바쁜 팀원들이 정리해 준 각종 서비스 지표와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 대한 정보를 등지고 마음 속 메아리에만 귀를 기울이며 에고를 지키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에고를 따랐던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서비스 말미에 거래액의 대다수는 소개팅 성격의 모임에서 발생했다. 책을 매개로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콘셉트의 모임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비슷한 모임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처음에는 ‘소개팅을 여러 명이 같이 한다고? 누가 이런 모임에 돈을 내겠어?’라고 생각했다. 역시 에고의 목소리이었다. 많은 고객이 이런 모임에 흔쾌히 지갑을 열었고, 같은 모임을 다시 찾는 지표도 월등히 높았다. 어떤 고객은 10번 이상 같은 모임에 꾸준히 돈을 내고 참석하기도 했다.
소개팅류 모임이 눈에 띄게 성장하던 시점에 나는 경영 악화로 인해 회사의 서비스를 매각하거나 접는 방향을 고민 중이었다. 몇몇 팀원은 생존을 위해 돈이 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여러 지표를 고려했을 때, 생존 확률을 높이려면 소개팅 모임으로 급선회하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나는 택하지 않았다. ‘내가 소개팅 서비스를 만들려고 창업한 건 아니잖아’라는 에고의 목소리를 따랐고, ‘기존 고객들은 우리 서비스가 데이팅 서비스로 변질되었다며 모두 떠날 것이 분명해’라며 에고가 믿고 싶은 쪽으로 자신을 합리화했다.
두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건 결과보다 과정이다. 당시 의사결정을 번복해서 저관여 모임이 늘고, 소개팅 서비스로 선회했다면 남의집 서비스와 회사는 지금과 다르게 살아남았을까? 결과는 나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결정 자체보다는 의사결정 과정에 내가 에고에 잠식당했다는 점이고 이는 경영자로서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에고는 나의 적》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인가, 중요한 일을 할 것인가.” 나는 중요한 일을 보지 않고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을 택하는 우를 범했다.
에고를 마냥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에고는 일의 시작 단계에 좋은 동력이 된다. 새로운 창작 욕구, 문제를 정의하고, 이걸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 등은 처음에 각종 난관에 봉착한다. 주변에서 말리거나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 에고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이니 내 생각이 맞을 거라는 확신을 증폭하는 기제가 되어, 어떻게든 일이 되게끔 한다.
“상상력에 권력을.” 남의집 초기에 즐겨 사용하던 문구이자, 1968년 프랑스 학생 혁명 때 유명한 구호 중 하나다. 낯선 사람의 집에 놀러 가는 상상력에 최대한 힘을 실어, 내 모든 의식 흐름이 이 상상을 따르도록 했다. 덕분에 주변의 부정적 의견은 개의치 않고 내가 상상한 남의집을 만들어 냈다. 에고는 여기까지만 작동했어야 했다. 이후에 과도하게 에고를 키워 휘둘린 것이 화근이었다.
어떻게 에고를 다뤄야 할까? 내 생각을 모두 에고라고 치부하고 차단하면 사고 흐름이 막힌다. 생각은 흐르되 에고를 통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헤지펀드 대부로 불리는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서 단서를 찾았다. 그는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은 자아라고 말하며, 자아가 자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다른 관점과 가능성을 효율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을 일컬어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라고 표현했다. 이를 위해 자신이 언제나 옳다는 애착을, 무엇이 진실인지를 배우는 기쁨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실제로 레이 달리오는 무언가 결정할 일이 생길 때, 혼자 고민에 빠지기보다는 그 문제에 대해 의견을 줄 수 있는 사람 3명을 찾는 일부터 한다. 아는 사람이거나, 관련 분야의 권위자일 수도 있다. 그들을 찾아가 본인의 고민거리를 터놓는 일 자체를 ‘극단적인 개방’으로 칭했다. 3명이 전하는 의견을 토대로 본인 생각을 가다듬거나, 아니면 3명을 한데 모아 토론 끝에 나온 합의안을 최종적으로 택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개방하는 배경에는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두려움이 에고에서 자유로워지는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회고를 마친 지금의 나는 재창업을 결심했다. ‘다음엔 더 잘할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런 마음이 들어 곤혹스러웠다. 창업가로 짊어졌던 그 무겁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다시는 마주하기 싫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실책들을 또렷하고 분명히 마주하고 보니, 그것들만 피하면 성공 확률은 높아질 거란 확신이 들었다.
다만, 바로 창업할지는 모르겠다. 창업을 위한 창업이 아니라, 한번 더 내가 풀고 싶은 문제가 가슴을 뛰게 하여 에고로 작동하고, 이 에고를 통제할 장치가 마련되었을 때 기꺼이 재도전하고 싶다. 에고를 통제할 효과적인 장치 중 하나는 공동창업이라 생각한다. 나의 에고가 혼자서 활기칠 수 없는 합리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창업 때문에 발생할 난제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내게는 또 다른 배움이 될 터이니 그 경험을 토대로 그다음 창업의 성공 확률은 더 높아질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