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로 파크에서 보낸 3년을 마무리하며

by 진용진

약 3년 전에 아내 주재원 파견과 함께 멘로 파크에서 살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 한국에 돌아왔다. 시차 적응이 안되서 뜬 눈으로 캄캄한 방에 뒤척이도 있다가 누워있으면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떠올라서 슬프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Bay Area 전부가 샌프란시스코인줄 알았다. 샌프란시스코 메트폴리탄 같은 것이 있고, 멘로 파크, 팔로 알토, 레드우드 시티, 샌 마테오 같은 도시들이 서울의 이태원, 용산, 반포 같은 단위의 동네 같은 것인 줄 알았다. 아내에겐 미국 팔로 알토 주변에 살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작 그 도시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실리콘 밸리라는 이미지처럼 Bay Area 전체가 내가 20년 전에 가본 뉴욕, 시카고 다운타운처럼 첨단 빌딩들로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첫 인상은 기대와 달리 한적한 자연과 함께 어울러진 마을의 이미지였다.


그렇게 조금씩 어려웠던 미국 생활을 적응하기 시작했다. 추억과 기억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히 다섯가지 감각이다. 내가 다녔던 장소, 음악, 느낌, 음식, 일, 함께 했던 사람 중심으로 기억을 남긴다.


장소

먼저 장소이다. 여행은 천천히 기록을 남기고, 우리 가족이 살았던 멘로 파크는 스탠포드 대학, 유니버시티 에비뉴, 멘로 파크 다운타운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많은 시간을 첫째 아이 액티비티 라이딩에 시간을 보냈다. 멘로 파크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연극, 수영, 체조 같은 프로그램 라이딩을 하고, 첫째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두살 둘째 아이와 도서관 곳곳, 근처 다운타운을 여기저기 다니며 따뜻한 날씨를 즐겼다. 물론 둘째와 그 곳에서 말못할 많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아! 생각해보니 Safeway 멘로 피크 지점의 젤리 코너는 둘째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이다. 특히 파란색 상어 젤리를 보면 아이는 shark gummy라 외치며 매우 좋아했다. 이후 점점 첫째 아이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팔로 알토, 쿠퍼티노까지 매주 다니는 일상을 보냈다.


이밖에 장소 중에서 기억 남는 곳은 운전면허를 관리하는 DMV라는 곳이다. 쉽지 않은 곳인데 운전 면허 갱신히는 날에 DMV 시스템 장애가 발생해서 역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세 군데를 돌아다니며 정말 쉽지 않았다.

유니버시티 에비뉴: 첫째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쌀국수집, 인기 있는 카페 Verve 근처 오니기리 음식점, 페이스북 첫번째 오피스



음악

첫째 아이가 IVE를 좋아해서 아이브가 오클랜드 아레나에서 했던 콘서트에 같이 참여해 나도 팬이 되었다. 아이돌 비즈니스에 있어 콘서트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영향력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첫째가 점점 또래와 어울리면서 친구들과 취향을 공유하게 되고, 운전을 하면서 나도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테일러 스위프트, 올리비아 로드리고, 그레이시 애브람스, 테이트 맥레이, 캣츠아이 그리고 위키드 같은 뮤지컬 음악, 케이팝 디몬 헌터스 OST도 많이 들었다. 예전에 같이 일하시던 시니어들이 최신 노래를 왜 많이 아는지 알게 되었다. 아직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Fate of Ophelia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아련한 무언가 있다.


이밖에 로제의 아파트, 케이팝 디몬 헌터스, 메이비 해피엔딩 뮤지컬 덕분에 한국이란 나라의 인식과 매력도가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클랜드 아레나에서 열린 아이브 콘서트, 이곳은 예전에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홈 경기장이었다


느낌

날씨는 정말 좋다. 조금 북쪽인 샌프란시스코와 조금 남쪽인 산호세와 비교할때 뭔가 느낌이 다르다. 멘로 파크, 팔로 알토 쪽이 도시 전반적으로 나무가 많은 것도 이유인 것 같다. 날씨가 매우 따뜻하고 낮도 길어서 하루하루 시간을 버는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낙천적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미국에서도 커리어를 일부 유지할 수 있었다. 링글에서 1년 반 정도 일하면서 다른 타임존에서 리모트로 일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멘탈헬스 관리앱 Quabble에선 멘탈헬스라는 카테고리, 유료 구독 비즈니스에 대한 의미있는 경험을 했다. 이밖에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은 바램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패스트 캠퍼스를 통해 좋은 기회를 얻었고, 거기서 얻었던 노하우로 개인 유튜브에 많지 않았지만 프로덕트 매니저먼트 주제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탠포드 code in place, 퍼플렉시티 펠로우십 같이 미국에 있어서 정보를 쉽게 얻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함께한 사람

가족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빠르게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내가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많이 고민하기도 했다. 양가 부모님을 한국에서 모셔서 함께 미국 여행한 것도 가장 잘한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부모님들께 미국을 경험해 드리고, 함께 가깝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이웃들도 많이 교류할 수 있었다. 대부분 첫째 아이를 중심으로 맺어진 인연들이다. 직업, 인종 다양해서 새로운 시선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웃에 계신 할아버지께선 많은 응원을 해주셨고, 내가 여기서 보낸 모든 시간이 가치있고 의미가 있다고 해주셔서 많은 힘이 되었다.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잘 적응해서 우리 나라에 돌아온 소중함과 일상의 재미를 느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cross the universe와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