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

세계관과 생태계

by Utopian

얼마 전 한 자동차 매장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한 중년 남성이 차를 보러 왔는데, 영업직원은 엔진 성능이나 연비를 설명하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주말엔 주로 뭘 하세요?" 처음엔 의아했지만,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고객은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는 사진작가였고, 영업직원은 차량의 스펙보다 "이 차로 새벽안개 낀 산속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었다. 그 기다림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도구는 어떤 것이 있을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온풍기, 따뜻한 차를 데울 수 있는 전기포트라면 기다리는 시간이 더 따뜻할 것이다.


이 장면이 바로 오늘날 모빌리티 산업이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준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술과 제품을 통해 편리함을 추구해 왔지만,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전환점을 떠올려보면, 불을 다루게 된 순간, 바퀴를 발명한 날, 증기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한 때마다 우리는 도약했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묻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환경은 파괴되고, 에너지는 고갈되며, 사람들은 오히려 더 외로워졌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경고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기술의 다음 단계는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유토피아를 향해야 한다고. 이건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잠깐 상상을 한다.

도쿄의 한 노인 복지센터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면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 하얀색 차량 하나가 도착하는데, 겉보기엔 평범한 밴이지만 문이 열리면 작은 병원이 나타난다. 의료진이 타고 있고, 기본적인 검진 장비가 갖춰져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더 극적인 일이 있었다. 대규모 정전으로 마을 전체가 암흑에 빠졌을 때, 닛산 리프 전기차들이 마을 회관에 모였다. 차량의 배터리를 연결해 임시 발전소를 만든 것이다. 주민들은 따뜻한 곳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고, 휴대폰도 충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Purpose Built Vehicle, PBV가 보여주는 미래다. 단순히 A에서 B로 이동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혈관처럼 산소를 공급하고 영양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82세 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변화가 더욱 실감 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병원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긴장됐다고 한다. 택시 잡기도 어렵고, 버스는 계단이 높아 오르기 힘들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동네에 자율주행 셔틀이 다니기 시작했다. 예약하면 집 앞까지 와주고, 차량 바닥이 낮아져 휠체어도 쉽게 탈 수 있다. "이게 그냥 차가 아니에요. 내 다리예요, 다리." 할머니에게 이 셔틀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존엄을 지켜주는 서비스인 것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토마토 농장을 운영하는 청년 농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신선도가 생명인 토마토를 서울까지 운송하는 게 늘 고민이었는데, 온도 조절이 가능한 자율주행 PBV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새벽에 수확한 토마토가 그날 오후면 서울 고객의 식탁에 오른다. "제가 파는 건 토마토가 아니라 신선 함이에요. 그리고 이 차가 그걸 가능하게 해 줍니다."


기후위기, 팬데믹, 전쟁 같은 뉴스를 보면 디스토피아가 코앞에 온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우리는 의식적으로 유토피아를 선택해야 한다. 테슬라가 전기차를 만든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일론 머스크는 처음부터 "화성을 가겠다"라고 했다. 한편으로 보면 또 다른 거주지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 테슬라 차량 한 대가 1년간 줄이는 탄소 배출량은 나무 100그루를 심는 것과 같다. 전 세계 테슬라가 지금까지 줄인 탄소 배출량은 수억 그루의 나무를 심은 효과다. 물론 전기차를 만들기 위한 다른 소재나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환경파괴를 보자면 제로섬에 이른다는 반박을 할 수도 있지만 분명 전기기반의 환경은 기존의 화석 연료보다는 개선된 에너지 원이다.

리비안이라는 전기 픽업트럭 회사의 비전도 흥미롭다. "Keep the world adventurous forever", 즉 세상을 영원히 모험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전기차를 파는 게 아니라, 자연을 보호해서 다음 세대도 캠핑과 모험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이런 변화는 판매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파타고니아 매장에 가면 직원들은 "이 재킷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산을 오르실 건가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 산의 날씨, 난이도, 계절을 고려해 필요한 장비를 추천한다. 때로는 "그 정도면 지금 갖고 계신 장비로도 충분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동차 산업도 비슷하게 변하고 있다. BMW의 한 딜러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차의 마력과 토크를 설명했어요. 지금은 고객의 하루 일과를 듣습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서 미팅을 하고, 저녁엔 요가 수업에 가는 분이라면, 그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차량과 서비스를 제안하죠."


현대자동차가 '아이오닉 라운지'를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차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전기차 시승은 물론, 비건 요리 클래스, 업사이클링 워크숍도 열린다. 차를 파는 게 아니라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다.

애플스토어 강남

애플 스토어와 삼성 스토어의 분위기가 다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애플 스토어는 미술관 같다. 제품이 예술 작품처럼 전시되고, 직원들은 '지니어스'라 불리며, 구매 과정도 하나의 의식처럼 진행된다. 반면 삼성 스토어는 체험 공간에 가깝다. 다양한 제품을 만져보고, 조합해 보고, 자신만의 세팅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인테리어 차이가 아니다. 애플은 '완성된 경험'을, 삼성은 '무한한 가능성'을 파는 것이다.

고객들도 이를 안다. 그래서 "나는 애플 사람이야" 또는 "나는 안드로이드파야"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브랜드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이다.

삼성스토어 홍대

볼보와 테슬라의 차이도 명확하다. 볼보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안전'과 '가족'이라는 가치를 중시한다. 스웨덴의 한 볼보 오너는 "이 차를 탈 때마다 가족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반면 테슬라 오너들은 '혁신'과 '미래'를 산다. "나는 단순히 차를 산 게 아니라 미래에 투자한 거예요"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최근 회사를 지구에 기부한 일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30억 달러 가치의 회사 지분 전체를 환경 보호에 쓰겠다고 한 것이다.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는 그의 말은 기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물건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물건은 그 과정에서 필요한 수단일 뿐이죠."

미래학자 토니 세바는 2030년이면 소유 기반 경제에서 접근 기반 경제로 완전히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람들은 차를 소유하지 않고 모빌리티 서비스를 구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볼보는 이미 '케어 바이 볼보'라는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월 정액으로 차량, 보험, 정비, 타이어 교체까지 모든 걸 제공한다. 고객은 차를 소유하는 부담 없이 필요할 때 원하는 차를 탈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한 동네에서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전기차 10대를 구입해 공유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앱으로 예약하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 한 주민은 "차를 소유했을 때는 주차 걱정, 보험료, 정비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필요할 때 쓰고, 나머지 시간엔 다른 이웃이 쓰니까 효율적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일본의 한 노인 복지 시설에서 도입한 자율주행 휠체어도 인상적이다. 실내에서 목적지를 말하면 알아서 이동한다. 한 91세 할아버지는 "다시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니 20년은 젊어진 기분"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스타트업은 전기자전거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자전거를 충전소에 반납하면 포인트를 주고, 이 포인트로 지역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했다. 모빌리티가 지역 경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고르게 분포되지 않았을 뿐이다."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이 말처럼, 우리가 꿈꾸는 모빌리티의 미래는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중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다. 그 기술이 사람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 가다. 자율주행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노인의 존엄을 지켜주는 게 중요하다. 전기차의 성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는 게 중요하다.

한 테슬라 엔지니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자동차 회사가 아닙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회사죠. 자동차는 그 수단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모빌리티가 가야 할 방향이다. 결국 우리가 파는 건 제품이 아니라 세계관이다. 우리가 공유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삶에 대한 공감이다. 그리고 그 공감이 모여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만들어갈 것이다.

제품을 넘어 가치를, 기능을 넘어 의미를, 판매를 넘어 공감을 추구할 때, 비로소 기술은 따뜻해지고, 비즈니스는 지속가능해지며, 우리의 미래는 유토피아에 가까워질 것이다. 모빌리티의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그것은 속도의 혁명이 아니라 가치의 혁명이며, 기술의 혁명이 아니라 삶의 혁명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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