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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Apr 12. 2020

이케멘이 아니라니까

스다 마사키



-영화:
<피스 오브 케이크>(2015, 감독: 타구치 토모로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감독: 오미보)

-드라마:
<민왕>(2015, TV Asahi)
<3학년 A반 -여러분은 지금부터 인질입니다->(2019, channel W)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2016, channel J)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핵심적인 전개,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를 철없거나 찌질한, 혹은 둘 다인 이미지로 기억했다- 아니 사실은, 딱히 ‘기억하지 못했다’. 스다 마사키를 처음 본 건, <피스 오브 케이크>(2015)에서 였다. 한창 아야노 고의 온갖 작품을 훑고 있을 무렵 본 영화였다. 아야노 고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멋지게 수염을 기른 점장. 스다 마사키는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대충 얼굴을 비췄다. 왜 ‘대충’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정말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자신감으로 그냥 ‘귀여운 여자애 한 번 꼬셔 보려고’ 속 보이는 작업 멘트를 날리고 징그럽게 웃는, 등장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딱히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거나 존재를 어필하지 않고 지나가는 전형적 비호감 단역. 캐릭터의 매력이 의도적으로 너무 없었기 때문인지, 배우에게서도 딱히 눈길을 끌 만한 점을 찾지 못해 그냥 존재를 잊고 있었다. 헌데 이름도 몰랐던 이 배우는, 다른 까닭으로 본 작품들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더니, 마침내 작품을 고르는 까닭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속 스다 마사키의 타쿠지는, <피스 오브 케이크>와 더불어, ‘어른스럽고’ 멋진 아야노 고의 캐릭터와 대조되어 더욱 철없고 못나 보였었다.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기는 타츠오나 타쿠지나 마찬가지인데, 그 ‘방법’도, 분위기도 다르다. 타츠오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더벅머리로 눈을 덮은 채,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다닌다. 멍한 무표정, 전체적으로 축 처져서 의욕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기본적으로 잡힌 폼이 있다-굽히고 있어도 가지런한 어깨 같은 것-. 가라앉은 목소리와 간결한 말투까지, 사연 있어 보이는, ‘있어 보이는’ 아무렇게나다.

타쿠지는 맨날 늘어진 러닝 셔츠에 빨간 추리닝 반바지를 걸치고 자전거를 탄다. 탈색한지 좀 되어 뿌리가 검은 단발을, 아무렇게나 올려 묶는다. 찍 올라간 진한 눈썹이 두드러진다. 폼은 없다. 그러니까, 폼을 잡기는 하는데, 결국 딱히 폼을 신경 쓰지 않는다. 파친코 의자에 앉아 등을 뒤로 쭉 기대고 담배를 피우거나,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눈에 왕창 힘을 주고 상대를 보거나 하는, 그런 자세들. 그냥 끌고 가도 될 자전거에 굳이 올라 페달을 천천히 굴리며, 타츠오의 느린 걸음과 속도를 맞춘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휘저으면서, 옆을 보다 앞을 보다 하며 끊임없이 이 말 저 말을 늘어놓는다. 스스럼없는 말투로 소리 지르듯 단어를 뱉는다. 입에 착 붙은 사투리에, 콧소리를 아무렇게나 섞고, 아, 에, 우와 같은 효과음을, 목을 걸걸하게 해서 낸다. 아마도 대사가 가장 긴 인물일 텐데, 말을 할 때는 말만 하는 법이 거의 없다. 긴긴 스토리텔링을 늘어놓는 와중 이리저리 방향을 일러주고, 길가의 낮은 나무들을 발로 차기도 한다. 무지막지하게 산만하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타쿠지는 매사에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없어 보이며’,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썩은 이가 드러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하고 웃는다. 눈에 힘을 아주 빼거나, 익살맞게 커다랗게 뜬다. 몰기도 하고, 밉살스럽게 옆으로 보기도 한다. 의자에 앉으면 삐딱하게 기대고, 바닥에 앉을 땐 꼭 몸을 웅크리고 한쪽 다리를 세운다. 다리를 벌린 채 슬리퍼를 찍찍 끌며 걷고, 앞으로 몸을 굽히고 휘청거리며 뛴다. 뭘 마실 때는 꼭 크어 같은 소리를 낸다. 숟가락으로 밥을 입에 넣고 넣고 또 넣으며 양 볼에 가득 넣고 씹는다. 와중에 방정맞게 들고 있는 발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일부러 신체를 어디에 어떻게 둘지 의식 한 것은 아닐 게다. 너무 타쿠지가 된 채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디테일까지 나왔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단편적으로 설명하면 타쿠지는, 타츠오와 치나츠를 만나게 해 준 계기다. 치나츠가 등장하고부터, 자연스레 일종의 배경이 된다. 매우 흥미로운 배경이다. 선풍기 앞에 세로로 누워 만화책을 보다가, 어깨부터 휙 사선으로 돌려 타츠오와 나가는 치나츠를 식 웃으며 볼 때, 벗다 만 러닝셔츠를 한쪽 어깨에 걸친 채 말하는 데에 집중할 때, 타츠오 집 창문을 열고, 자고 있는 집주인을 훌쩍 뛰어넘어 개구리처럼 방바닥에 착지할 때, 선풍기 앞에서 입을 아 벌리고 있을 때, 타쿠지는 몹시도 타쿠지다. 인위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려고 넣은 모습들은 아니다. 그냥 일상이다. 그에 주목해 폭소 하기보단, 타츠오와 치나츠에 집중하는 사이사이 목격하고 피식 웃음을 흘리게 된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였던 타쿠지는, 나카지마에게만은 속없이 굽실거린다. 그의 입에서 치나츠의 이름이 나오면 굳지만, 별 말을 얹지는 못한다. 가족들과 화목하게 떠나는 나카지마를, 불안정하고 그늘진 눈으로 좇는다. 입으로만 인사를 외치고, 끝에 미세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린다. 거의 처음으로, 타쿠지의 ‘다른’ 종류의 얼굴이 화면에 들어온 순간이다. 그 얼굴은 상처를 입고 들어온 치나츠를 본 후, 그녀가 ‘(타츠오에게) 말하지 말라’며 닫고 나간 문을 몇 초간 그대로 응시할 때 다시 나온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타쿠지의 기분은, 항상 함께인 자전거를 다루는 모습에서도 묻어난다. 일터에서 잘리고는 시무룩하게, 발을 질질 끌어 바퀴를 굴리며 고개를 숙이고 투덜댄다. 타츠오가 산에 데려가 준다고 하자, 굳어서 잠깐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멈춰 있다가, 금방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내던졌다가, 줍고, 한쪽 페달만 밟고 발을 휙 굴려 활기차게 출발시킨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굳은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자전거를 끈다. 세우고, 천천히 터벅터벅 계단을 오른다. 평소의 산만함은 없다. 별로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나카지마를 찾는다. 늘 그렇듯 머쓱하게 머리를 만지며 식 이를 드러내 인사하지만, 눈에 웃음기가 없다. 머뭇거리면서도 또박또박, ‘오늘 누나를 만났냐’고 묻는다. 모욕을 그대로 참고 들으며 답지 않게 차분하게 응대하고 돌아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몇 디뎠다가 멈춘다. 굽은 등에서, 누르고 있는 분노가 읽힌다. 계속해서 다스리지만 다스려지지 않는 듯, 숨을 몰아쉬다, 몸을 돌린다. 서두르지 않고 똑바로 다가가, 엄청난 집중력으로 목표물을 응시한다. 속에 원래 그의 것이 아닌 에너지가 들어간 것 같다. 붙잡히면서도 필사적으로 기어서 나카지마를 어묵 꼬치로 찌르다, 갑자기 정신이 팟 돌아온다. 분노로 부릅뜨고 있던 눈은 놀람과 공포로 확장되어 떨린다. 겁먹은 듯 얼어 주위를 둘러보다, 냅다 몸을 돌려 내달린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타츠오가 집에 도작하자, 그가 찾아 헤매던 타쿠지가 문 앞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있다. 사선으로 이쪽을 응시하다가 피식 웃는다. 평소의 ‘세상 아무렇지 않음’은, ‘짐짓 아무렇지 않음’으로 바뀌어 있다. 타츠오가 마구 자신을 때리자, 몸을 웅크리고 팔로 막기는 하는데 힘과 의지가 없다. 그대로 한동안 엎어져 있다가, 부스스 일어나 기댄다. 몰아쉬는 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뿜고, 실없는 웃음을 픽 뱉는 듯 하더니, 마치 킥킥 웃듯이, 울음을 터트린다. 턱을 내밀고 이를 악문 채 눈을 꽉 감고, 얼굴을 마구 구기며 엉망으로 운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그리고 다시, 자전거. 술에 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타츠오 뒤에 타고 있지만, 등에 고개를 박고 푹 널브러져 있는 대신, 의자를 잡고, 뒤로 기대 조용히 어두운 허공을 응시한다. 자전거에서 내려, 잠깐 서 있다가, ‘미안해’와 함께 팔을 휙 올리며 씩 웃고는, 파출소로 쉭 달려간다. 마지막 모습도 그답다.

‘스다 마사키’라는 이름을 딱히 사용하지 않고 타쿠지를 묘사했다.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그 탓에 배우의 연기에 대한 내용이, 단순히 인물의 특징을 나열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게 되었지만, 굳이 고치고 싶지 않았다. 타쿠지는, 몹시 타쿠지였으니까.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찌질함, 멍청함, 맹함, 아무 생각 없음 따위의, 부정적인 묘사를 붙이게 되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적절했던, 특유의 힘 빠진 눈과 애매하게 벌어진 입, 어색한 듯 이를 드러내고 헤헤거리는 미소 같은 요소들이, 뉘앙스와 분장의 미묘한 차이로 얼마나 귀엽게 보일 수 있는지는, 그땐 몰랐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민왕>(TV Asahi)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또, 다른 배우 때문에.

좀 억지스럽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는 각본을, 특유의 만화 같은 코미디 코드로 넘길 수 있었다. 핵심은 캐릭터의 매력과 그것을 탁월하게 살리는 능청스러운 연기였다. 영혼이 바뀌는 설정의 인물을 맡은 네 배우는, 아마 세 종류의 연기를 해야 했을 게다. 스다 마사키의 경우, 진짜 쇼, 타이잔이 들어간 쇼, 그리고 진짜 쇼를 따라하는, 타이잔이 들어간 쇼다. 무토 부자의 영혼이 바뀌는 순간마다 감탄했다. 같은 배우가 같은 분장을 하고 있는데,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 곧바로 보였다. 쇼였던 스다 마사키는 정말 타이잔이 됐고, 타이잔이었던 엔도 켄이치는 정말로 쇼가 됐다. 구분을 위해 만든 특징적 제스처들은 거들 뿐이었다.


<민왕>(TV Asahi), 쇼.
<민왕>(TV Asahi), 타이잔.


타이잔이 들어갔을 때는 목소리는 낮게 깔고 입을 크고 정확하게 벌려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뱃심으로 발음한다. 고개는 말과 함께 리듬을 타며 과장되게 주억거린다. 손짓도 커다랗다. 어깨는 당당하게 펴고, 팔다리를 벌려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는다. 눈은 부담스럽게 부릅뜨고, 미간은 잔뜩 찌푸린 채로다. 진짜 쇼일 때는 목으로만 내는 모깃소리로 입을 오므린 채 조심조심 속삭이듯 말한다. 때문에 ‘하이’가 거의 ‘호이’로 들리는 등 완성되지 않은 발음이 나온다. 약간 어눌하게 끊어지는 말투로 또박또박 말하기도 한다, ‘국어책을 읽듯이’. 이 어구가 주로 쓰이는 ‘어색한 대사 치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때로 말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어색한 인물들에 대한, 섬세하고 설득력 있는 표현법이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눈을 동그랗게 떠 눈치를 자주 보며 고개는 자잘하게 흔들흔들 끄덕인다. 면접과 같은 상황에서는 뺨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긴장하고, 신이 나면 머리가 찰랑거리도록 방방 뛴다.

이러한 ‘진짜 쇼를 따라하는, 타이잔이 들어간 쇼’를 살필 때 대표적으로 비교할 만한 것이, 쑥스럽거나 어색할 때 머리에 댄 손과 함께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 하는 동작이다. 스다 마사키는, 쇼인 순간에는 자잘한 움직임과 미소를 곁들여, 꼭 자동 반사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타이잔일 때는 ‘아 맞다’가 묻어나는 굳은 표정으로 약간 인상을 쓰고 딱딱하게, 마임처럼 한다. 팔을 올리고, 머리에 대고, 고개를 기울이는 동작들이 다 하나하나 따로 놀고, 얼굴과도 따로 논다. 타이잔에겐, 완벽히 쇼를 연기할 생각이 딱히 없다. 미간에 주름을 펴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상냥하게 말하다가도, 금방 흥분해서 삿대질을 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민왕>(TV Asahi), 쇼.
<민왕>(TV Asahi), 타이잔


흥미로운 ‘예외’는, 마지막에 적을 속이기 위해 등장했던- ‘타이잔이 들어간 쇼,를 연기하는 진짜 쇼’다. 얼핏 타이잔 같은데, 한 번 알아채면 아주 쇼다. 어깨에 힘을 주고 팔짱을 낀 폼이 적당히 어설프다. 인상을 쓰려고 노력은 하는데, 자꾸 힘이 풀어지고, 아빠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이 고이고, 입이 울멍울멍 우물우물 거린다. 몇 분 되지 않는 순간이었으나, 스다 마사키의 표정은 절묘했고, 연출 의도를 효과적으로 반영했다. 관객마저 속였다가, 천천히 실마리를 풀어놓았다.


<민왕>(TV Asahi)


연기도 연기지만, 쇼의 모습인 그에게선 ‘이 배우의 매력은 여기에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온다. 티 없이 해맑은 얼굴은 물론, 드물게 화를 내는 모습에서도. 모두 마이를 의심하자, 쇼는 심통난 아이 같은 상태가 된다. 팔다리를 벌려 균형을 잡고 가만히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눈썹은 씩 올라가고 입술이 부루퉁하게 나온 채다. 쇼는 항상 몸이 먼저다. 말보다는 표정, 고갯짓, 손짓 발짓으로 상황과 감정을 설명한다. 아직 말을 배우는 중인 아이 같다. 나이를 얼마나 먹든 그대로일 듯한 -그것이 쇼의 매력이다. 데데거리고 헤헤거리고 방방거리고 징징거리고 뭐 그렇게 대놓고 ‘애’처럼 귀여운 척 하는 것이 그대로 귀엽다. 쇼라서 그렇고, 스다 마사키라서 그렇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channel J)


쇼의 매력은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channel J)유키토와 통하는 데가 있다. 일단 모델을 찾는 모리오의 시선으로 담긴 첫인상만 보면, 앞 문장이 설득력 없게 느껴질 것이다. 빈티지풍 셔츠를 대충 걸치고, 노트북 앞에서 마른 등과 덥수룩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실루엣. 찍 올라간 눈썹, 날카로운 눈, 무표정과 방어적인 눈빛 때문에 차갑고 내성적으로 보인다. 학생 식당에 앉아 있기는 한데, 약간 히키코모리스럽기다. 하고 싶은 것이 확실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예술가 느낌이다. 코노 에츠코의 말처럼 ‘초절정 이케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애매한 각도로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을 보면, 왜 에츠코가 반했는지 알 것도 같다. 오버핏 체크 셔츠에 새빨간 추리닝 바지가 이렇게 어울릴 수가 있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channel J)

 
모리오의 집에서 고장난 로봇처럼 워킹하는 부분에서부터, 유키토의 진짜 매력이 드러난다. 에츠코가 연 문에 치여 땅바닥에 구르고, 비겼다면서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하고, 해맑게 웃고, 코레유키의(그러니까 자기의) 소설을 이해할 수 없다며 투덜대는 에츠코를 보며 혼자 재미있어하는 모습들. 이후에 나오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인사하거나, 본인이 나온 잡지를 보고 퍽 덮으며 부끄러워하는 등의 장면들. 쇼와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정도가 완화되어 있고 방향이 살짝 달라 바보 같지는 않다. 옷을 갈아입던 와중 상의를 탈의한 채로 에츠코에게 달려와 말을 건네고, 약간 머뭇거리지만 곧바로 연락처를 묻고, 이를 드러내며 히 하고 수줍게 웃는다. 에츠코를 보는 유키토의 눈은 일관된 감정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단순한 로맨스적 끌림 이상의, 절대적인 믿음과 존경과 흥미와 친근한 애정과 로맨스가 모두 담긴, 복합적이나 정확하고, 완전히 긍정적인.

반면 모리오 앞에서는 편안한 무표정이 된다. 샤워하러 가다가 얼굴을 쏙 내밀고 기운이 없냐고 묻거나, 뭐 만들어줄까? 라는 등, 일상적으로 배려하는데,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눈빛에 ‘사심 없음’ 이라고 써 있다. 모리오가 홧김에 입을 맞춘 직후에도 어색해하지 않고, 그녀의 신세한탄에 ‘나도’ 라며 한쪽 다리를 의자에 턱 올리고는 바보 같은 얼굴로 하이파이브를 강요하는 유키토와, 바보라며 웃는 모리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편한 케미가 매우 좋았다. 그냥 대충 멍한 것 같다가, 갑자기 훅 깊어졌다가, 다음 순간 장난기가 가득해지는 스다 마사키의 표정은, 숨을 죽였다가 웃음을 터트리며 화면에 몰입하게 해 줬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channel J)


그런가 하면, 누가 글쟁이 아니랄까봐. ‘흰 오라가 느껴져요.’ 와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뱉기도 한다. 참신한 정도와는 상관 없이, 이런 강도의 문학적 표현을 일상 대화에서 사용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극강의 오그라듦을 선사하며 상대방이 시선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유키토는 그렇지 않다. 전혀 꾸밈이 없어서다. 담백하게 진지한 표정을 하고는 평소처럼 툭 말을 던져서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렇게 뭐 흰색 노란색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하다가, 에츠코가 화제를 돌려 사과하자, 해맑게 웃으면서 팔을 휙 가로지르는 모습, 이어서 모리오와 통화하며 눈을 내리깔고 별 생각 없는 표정으로 섬세하게 화장지와 칫솔 종류를 하나하나 묻고, 타코타코 거리는 에츠코의 통화가 끝나자 타코타코 해서 타코가 먹고 싶어졌다면서 타코 꼬치를 열심히 물어뜯는 부분까지. 유키토에게 빠져드는 비공식적 코스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channel J)


속세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오히려 만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던 유키토의 얼굴빛은 자주, 어두워진다. 주로 본인 글에 대해 말하거나 고민할 때다. 다시 첫인상의 날카로움으로 돌아가, 자기혐오적 뉘앙스의 우울함이 추가된다. 차갑게 가라앉은 말투로 또박또박 중얼거리거나, 눈을 질끈 감고 창백한 얼굴을 괴로운 듯 흔들며 한숨을 내쉰다. ‘절 포기하셔도 돼요’ 라고 하는 유키토는, 정말 모든 것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 말대로 포기하면 절대 안되고, 옆에서 지켜줘야만 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완전히 맡겨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자동으로 지켜주게 되는, 그러면서도 완전히 이해하기는 영원히 불가능하리란 예감이 드는 사람. 4차원적으로 독특한 퇴폐미다. 자신 다운 채로 있지만 자신에게서 분리된 상태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알까(나도 잘 모르겠다). 덩달아 가라앉거나 불안해지며, 이 배우의 이런 표정이 더 궁금해진다.



<3학년 A반 -여러분은 지금부터 인질입니다->(channel W)


아쉽게도(?) 유키토의 그늘은 에츠코와 함께하며 점점 사라지지만, 스다 마사키가 거의 내내 '그늘' 가득한 얼굴로 등장하는 작품도 있다. <3학년 A반 -여러분은 지금부터 인질입니다->(channel W)다. 히이라기 이부키는 ‘또라이’다. 부러 딱딱하게 말하거나, 억지로 입꼬리를 씩 올리거나, 미친 듯 소리 내 웃거나, 정색하고 연설을 늘어놓는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치밀한 계획대로 행동하며 때로는 ‘연기’하는 인물이라서, 화면에 찝찝하고 팽팽한 긴장을 가득 불어넣는다. 안경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귀여운 이미지로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은 상황, 안경은 귀여움을 돋보이게 하는데, 속을 알 수 없는 초반에는 그 상태로 날카롭게 굳은 표정을 자주 해, 색다르게 소름끼쳤다. 물총을 쏘는 등 코미디스러운 연출과 만나면 다시 귀여워졌다가도, 갑자기 ‘폼을 잡고 소리를 지르면’ 무섭다. 여러 상태를 오락가락한다.


<3학년 A반 -여러분은 지금부터 인질입니다->(channel W)


주로 ‘잘 하고 있음이 티나는’ 연기가 그런 종류의 것이다. 비꼬는 게 아니다. 훌륭한 열연이었다. 스다 마사키는 성대를 쓰는 법을 알고 있는 배우라서, 마냥 열심히 내지르는 게 아니라, 각 인물에 적절한 종류의 소리를 사용했다. <민왕>의 타이잔은 주로 다혈질 정치인답게, 감정적으로 곧고 굵고 강하게 소리를 ‘키운’다. 큼직한 손짓과 강렬한 눈빛이 첨가된다. 이부키는 일부러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며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소리를 ‘높이거’나, 진심으로 설교한다. 후자에서는 눈물도 종종 고인다. 걱정과 농담을 섞어 말하면, 본격 스다 마사키의 성대가 고통 받는 두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3학년 A반~>에서는 그 고통이 약간 불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다의 연기에는 흠이 없었다. 팬들이 걱정할 정도로 캐릭터에 몰입했다. 허나 군더더기와 틈이 확실한 각본과 연출을, 연기로 만회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늘이 가득’하긴 했는데, 바랐던 방향이 아니었다. 딱히 새롭지 않고 필요도 없고 작위적이어서 몰입도만 떨어트리는 길고 긴 대사를, 피를 토하며 몇 분 동안 (심지어 원테이크로) 열심히 외치는 스다 마사키를 보며, 화마저 났다.


<3학년 A반 -여러분은 지금부터 인질입니다->(channel W)


괜히 또 화를 내려다, 뒤집어 보면, 그런 대사들을 그 정도로 집중해 토해낸 스다 마사키가 대단한 것이겠구나 하고 새삼 감탄했다. 아직 그의 작품을 충분히 많이 보지는 못했으나, 그가 연기를 열심히 또 끝내주게 해내는, 항상 새로운 배역에 도전하는 배우임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취향인 배우가 항상 취향인 작품에만 나올 수는 없을 테다. 허나 개인적인 바람을 슬쩍 드러내는 건 상관 없지 않을까. 나는 안면 근육에 온통 힘을 주고 확실한 감정을 분출하는 스다보단, 바보 같이 씩 웃거나, 아무 것도 읽히지 않는 눈을 하고 멍을 때리거나, 짙은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스다를,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타츠오 정도로 깊게 파고드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

 
다시 이 작품을 언급했다. <민왕>이나 <3학년 A반~>에서 얼마나 ‘폼을 잡고 소리를 질렀든’, 스다 마사키의 개인적 최고는, 심지어 처음 볼 땐 관심도 없었던, 타쿠지였다. 그렇다, 몹시도 화면에 착 달라붙어 배경처럼 존재해, 관심을 둘 여지가 없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들어오지 않지만, 거듭해 볼수록, 새로이 놀라게 됐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사실 타쿠지를 처음 봤을 때, 개성 있게 ‘못’생겼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배우가 ‘공식적으로 ’잘‘생긴’ 역할을 할 가능성 같은 건 (보통 그런 건 생각하지 않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코노 에츠코>를 본 이시하라 사토미 팬들의 일관된 반응 중 하나가, ‘쟤가 무슨 이케멘이냐’였던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물론 그 비난은 바람직하지도,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타쿠지나 유키토의 매력은 외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허나 다시, 외모에 있기도 하다. <~코노 에츠코> 각본 설정과는 달리, 흔한 ‘이케멘’이 아니라는, 바로 그 점이다.(물론 내 눈엔 이케멘이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 스토리 초반에 다들 그의 얼굴에 대고 이케멘거리는 통에 진짜 매력이 가려졌다는 것이 스다의 팬이자 유키토의 팬인 내 생각이다. 스다 마사키가 앞으로도 ‘미남’이 아닌 채로, 길이길이 아름답기를.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channel J)



+ 잘/못 생겼다: 궁극적으로는 없어지거나, 전적으로 개인의 고유한 취향의 표현이 되어야 할 말들이다. 이 글에서는 부러 상투적으로 사용한 까닭이 있었고, 읽는 이들에게 그 뉘앙스가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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