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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y 16. 2020

주샨과 데이

<패왕별희>(1993)



<패왕별희>(1993, 감독:  카이거)
 
*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분명한 스탠스가, 소재인 경극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두지/데이는 ‘나는 본디 계집이고, 사내도 아닌데’라는 대사를, 자꾸 사내와 계집을 바꾸어 읊는다. 데이는 사내이며, 우희다. 세상은 무대 위 패왕을 향한 우희의 사랑에는 환호했으면서, 샬루를 향한 데이의 사랑은 지워버렸다. 작품은 이 사랑이 무슨 과몰입한 배우의 착각이나 특수한 케이스, 영화적 허용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데이에 대한 장 내관이나 원 대인의 욕망이 ‘추하게’ 표현되는 까닭은 그 대상이 남성이기 때문은 아니다. 권력을 이용하여 사람을 소유하려는 자들은 ‘추하다’. 비교할 예가 작품 속에  있다. 주샨이 물건인 양 괴롭히며 ‘비싼 돈을 냈으니 시키는 걸 하라’던 ‘높으신 양반’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따지면 원 대인이, 교묘하기는 하나 ‘점잖다’.


<패왕별희>(1993) 스틸컷.


데이는 잊고 싶으나 잊어지지 않는 것은 불에 태운다. 극단에 자신을 버린 엄마가 둘러 준 옷도 태웠고, 엄마에게 쓴 편지도 태웠고, 나중엔 경극 복장들에도 불을 붙인다. 탕후루 파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데이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사선으로 돌리던 모습, 기억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장 내관과의 조우 등, 섬세한 장치들과 세련된 화면. 현대사와 그 시기의 감성이 녹아 있었는데, 연출과 서사에 묻어난 감수성은 이십년이 넘은 현재에도 유효했다. 강하게 고조된 감정들로 화면을 메우기보다, 멍한 공백을 두어 더 꽉꽉 채운 느낌이 들었다.

이미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어떤 것을 꼽을지 고르고 있었다. 떠오르는 컷들이 무수했는데, 대부분이 데이 홀로 잡힌 컷이거나, 주샨과 데이의 투샷이었다. 장국영과 공리가 각자 너무 아름답기 때문, 만은 아니었다. 카메라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듯 무언가 담겨 있는, 주로 데이를, 가끔 주샨을 응시하곤 했다. 그 얼굴이 대사보다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패왕별희>(1993) 스틸컷.


주샨이 공리를 만나 너무 장난 아닌 캐릭터가 되었기 때문에, 살짝 전형적이었던 초반조차 독자적인 매력을 뿜어내기는 하였으나, 데이에 대한 태도가 변하며 입체적인, 더 매력적인 인물이 됐다. 주샨에겐 홀로 먹고 살 방도가 많지 않았다. 주샨과 샬루 사이에는 분명 로맨스가 있었으나, 그게 진심 어린 사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사랑의 정의는 모호하고, 없었대도 별 상관은 없다. 주샨이 샬루를 일종의 기회로 삼아 술집을 나가는 모습은 멋졌고, 대충 연기하는 주샨과 대충 속아 주는 샬루를 보는 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놀이를, 데이는 할 수 없었다.

서로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라이벌 구도로 시작했으나, 관계는 변한다. 데이의 시선이 내내 샬루를 향한다면, 카메라에 잡힌 주샨의 시선은 갈수록 샬루가 아닌 데이를 향한다. 그 시선이 데이의 외로움을 아주 약간 덜어내는 느낌을 받았다. 샬루와 주샨의 집 앞에서, 경극 물건을 불태우고 술을 나누는 둘을 대놓고 멍하니 훔쳐보던 데이가 가장 외로워 보였던 건, 그 때문도 있었던 것 같다. 주샨은 관찰하고 연민하고 이해한다. 평생 함께 살아온 샬루보다 어떤 면에서는 데이를 더 잘 알았을 테다. 그의 감정이 사랑임을 인지하고, 아무런 편견이나 수식 없이 받아들인 유일한 사람이다. 끝까지 벽을 치기는 했으나 데이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패왕별희>(1993) 스틸컷.


그 엇갈린 눈길들을 자꾸 떠올렸다. 자신을 구해 준 데이의 얼굴에 ‘일본놈들 앞에서 경극을 추었냐’며 침을 뱉은 샬루, 데이의 얼굴을 슥 닦아 주는 주샨. 해방 후 ‘매국’으로 잡혀간 그를 살리기 위해 원 대인과 샬루가 거짓을 말함에도, 끝내 진실을 고수하는 데이의 얼굴에 침을 뱉는 주샨. 금단 현상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데이가 ‘엄마 추워, 강물이 너무 차가워’ 라고 하자, 주샨이 담요로 그를 감싸고 꼭 안아 주는 장면. 아이를 잃은 여성과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남성의, 아니 그냥 주샨과 데이의 씬. 우희가 교체됐을 때, 손에서 손으로, 끝내 주샨에게로 건너온 패왕의 투구를, 부드럽게 빼앗아 샬루에게 씌워 주는 데이. 홀로 남은 그의 어깨에 가운을 걸쳐 주는 주샨. 고맙다고 정중하게 말한 후 가운을 툭 떨어트리고 자리를 뜨는 데이.


<패왕별희>(1993) 스틸컷.


그리고 주샨의 마지막이 있다.
목숨의 위협 앞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했고 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을 배신한 샬루를 쉽게 탓하기는 힘들다. 어쨌든 장면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다. 이어지는 데이와 주샨의 컷들이 아직도 뱃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샬루가 ‘데이가 원 대인과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하려 하자, 주샨은 소리를 질러 막으려고 시도하고, 검을 불에 던지자 뛰어들어 건져낸다. 약간 본능적인 행동들로 보였는데, 왜 하필 그 순간이었는가 -샬루가 단순히 비밀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데이가 품어온 평생의 감정을 ‘더러운’ 것으로 만들고, 행동 뿐 아니라 존재 자체를 깎아내린 것임을, 주샨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천한 술집 여자’라고 말한 이는 데이이나, 주샨이 그를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데이가 할 수 있는 복수는 그런 것 밖에 없었으니까. 그녀가 무너진 순간은, 샬루가 너무도 쉽게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뱉었을 때다. 그 말에 담긴 진심이 몇 퍼센트였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폐허가 된 집 앞에, 버림받은 주샨과 데이는 함께, 또 따로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데이는 앉아 몸을 낮춘 채 주샨을 살짝 올려다본다. 주샨은 그를 등지고 선 채 고개를 돌려 무어라 하려다 말고, 다시 또 하려다 만다. 서로를 보는 눈빛은, 이제까지와 뒤바뀐 것 같다. 데이의 얼굴은 복잡하다. 두꺼운 경극화장이 거르고 남은 감정은, 미세한 미안함과 연민. 주샨의 얼굴엔, 화장기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그 후 주샨은 목을 멘다. 이미 무수한 상처를 입은 데이는, 애초에 샬루에게서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패왕별희>(1993) 스틸컷.


그러고 보면 카메라의 시선이, 샬루의 것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주로 데이와 주샨의 눈으로 바라봐지는, 그의 내면이 딱히 궁금하진 않다. 복잡한 속을 숨기고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스스로의 안위가 중심에 있고, 구성 요소가 조금씩 달라질 뿐. 일제강점기에는 자존심이 좀 중요했다면, 나이가 들고 인민재판을 당할 땐 목숨이 좀 더 중요해지고 그 정도이지 않을까.(미안하지만 단순화했다.) 그의 감정이 비로소 카메라 가득 들어오는 건, 마지막이다. 칼을 뽑은 데이가, 우희처럼 스스로를 찔렀을 것이고(화면에는 잡히지 않는다), 고개를 돌린 샬루는 소리친다. 분장한 얼굴이 놀라 일그러졌다가, ‘데이’라는 외침이 ‘두지’라는 중얼거림으로 바뀌며 표정도 아련하게 잦아든다. 그제서야, 샬루, 시투의 속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 순간 비로소 데이가 자신을 사랑했음을, 자신도 데이를 사랑했음을 깨달은 걸까?


주샨은 더 살아갈 까닭이 없어, 데이는 이제 죽어도 좋을 것 같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나 보다.(물론 이것도 단순화한 설명이다.) 샬루로 이어진 아니 얽힌 그들의, 아주 다르고 비슷한, 사랑과 죽음. 나는 이상하게도 다른 타임라인의 둘을 상상하게 된다. 그 사이에 무슨 로맨스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좀 덜 아픈 삶, 좀 덜 꼬인 관계가, 궁금한 것이다.


<패왕별희>(1993) 스틸컷.



+
초반 두지와 시투의 서사가 필요했다는 점은 알겠고, 감탄했던 부분도 있었으나, 극단 구성원들이 당하는 폭력에 대한 카메라의 판단이 가끔 정확하지 않아 고민이 되었다. 사부를 좀 안 멋있게 그렸다면 달랐을까. 그러나 데이의 입장이라고 해석하고, 납득했다. 폭력을 정당화했다기보단, 그 방식에 가장 고통 받았으면서도 (어설프게) 따랐던 데이를 변호한 것이라고.



<패왕별희>(1993) 스틸컷. 장국영.... 에 대해 쓰지 않은 것은 아니나 올리지 않았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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