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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Jul 21. 2020

"넌 어느 쪽이고 싶어?"

<마티아스와 막심>(2019)



<마티아스와 막심(Matthias et Maxime)>(2019, 감독: 자비에 돌란)
Feat.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 <하트비트>(2010), <단지 세상의 끝>(2016)

* <마티아스와 막심>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 나머지 세 작품의 전개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프랑수아 오종의 <신의 은총으로>(2019)를 보러 갔을 때였다. 상영관에 조금 일찍 들어갔다. 낯선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친구들이 차 속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이 탄 차가 옆에 멈춰 섰다. 트레일러는 아닌 듯한데, 실수인가, 무슨 작품인가 대충 궁금해하고 있을 때, 얼굴들 사이로 서로를 향하는 두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고, 둘 중 하나가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마티아스와 막심>이다. 곧바로 시선을 내리고 귀에 이어폰을 끼웠다. 얼마 전 드디어, 같은 씬을 맥락 속에서 풀로 봤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 두 공간으로 분리된 그들. 한쪽은 음악으로 가득 차 있고 다른 한쪽은 고요한 와중, 서로를 본다. 이번엔, 그 클로즈업에 담긴 것이 보였다. 마티아스의 어색한 표정 속 두근거림이, 막심의 장난스러운 시선과 손짓 속 진심이.

“Are you ready for the closeup클로즈업당할 준비됐어?” 마티아스가 장난스레 물을 때, 친구들은 물속에서 놀고 있다. 그는 막심과 단 둘이 물가에 앉아 있다. 그의 손 프레임 속엔 막심의 얼굴이, 물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담긴다. 프레임에 들어온 순간, 어떤 현실은 영화가 된다. 자비에 돌란은, 이것은 픽션인 동시에, 솔직한 이야기임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서슴없이 더듬고, 키스를 날리는, 흔한 장난이, 프레임에 담기면 로맨틱을 입는 착각이 든다. 헌데 과연, 그것이 착각이었을까?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 IMDB.


<하트비트>처럼 비비드하지는 않지만, 레드와 블루의 매치가 보인다. 마티아스는 푸른색 옷을 즐겨 입고, 막심은 붉은색이 포함된 옷을 주로 입는다. 허나 키스신을 찍을 때는, 에리카의 요구로 색을 바꾸어 입는다. 그 키스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스스로의 욕망을 클로즈업해 볼 계기가 된다. ‘우정이라고 넘겼던 순간이 로맨스였을지도, 끌림이라고 여겼던 순간이 착각이었을지도.’ 아직, 유효한 주제다. <하트비트>에서 한 인터뷰이를 통해 던졌던 질문 “넌 어느 쪽이야?”를, 자비에 돌란은 좀 더 내밀하고 깊숙한 형태로, 다시 꺼내놓는다.

사실, 연출도 <하트비트>스럽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었다. 빨갛고 파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담긴 포스터 때문이었는지, 시놉시스 때문이었는지, 자비에 돌란이 연기했다는 것 때문이었는지, 아무튼. 기대에는 어긋났으나, 프란시스와 마리의 이야기를 처음 봤던 때와는 다른 모양으로, 마음이 요동쳤다. 그때는 아마 지글거렸던가- 이번엔 무너져 내렸다. 배경인 퀘벡 주 몬트리올 특유의 분위기나 언어 사용 특징 때문에 초기작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스타일은 최근작 <단지 세상의 끝>이 겹쳐 보인다. 더 잔잔하다.

<단지 세상의 끝>은, 루이가 가족들이 사는 집을 방문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 <마티아스와 막심>은, 막심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기 전 몇 주 동안의 이야기다. 한정된 시간이라는 설정이, 긴장감을 더한다. ‘기간 내에 결론을 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관객의 무의식에 덧붙는다. <단지 세상의 끝>에서 그 조바심이 갑자기 터져 뚝 끊어져 버린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끝까지 늘어졌다가 애매하게 사그라든다. ‘자비에 돌란이 잘하는 건 감정으로 휘몰아치기인데, 고요해서 아쉬웠다’는 감상이 몇 보였다. 나는 오히려, 이런 식으로도 ‘잘’ 할 수 있다는 데에, 자잘한 감정들을 포착하는 능력에 감탄했다. 그에겐, 때론 캐릭터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심리를 대사 없이 드러내는 감각이 있다. 배우들의 얼굴을 관찰하듯 집요하게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은 기본. 빛의 사용, 또 나는 잘 알지 못하는 모든 장치들로.  

잘은 모르지만, ‘효과’는 최소화한 듯하다. 슬로모션이나 패스트모션은 손에 꼽을 정도고, 조명은 햇빛, 가로등, 전구가 거의 전부. 실재하는 요소를 활용해, 기술로 편집한 듯한 화면을 만들기도 한다. 자동차 씬이 차로 공간을 분리했다면, 캄캄한 야외에서 창문을 찍는 연출은, 화면 속에 작은 프레임을 콜라주해 넣은 듯한, 혹은 영화 속에서 영상이나 사진이 전시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방 안에서는 에리카가 말하고 있지만, 그 ‘프레임’ 안에는 마티아스와 막심 둘만이, 대칭적으로 위치한다. 마티아스가 내내 막심을 의식하며 피하던 시기, 파티에서 앉아 멍하게 있는 장면에도 비슷한 구도가 쓰였다. 불이 꺼진 방에서 문을 통해, 불이 켜진 방에 앉아 있는 마티아스를 찍으며, 천천히 줌 아웃한다.  불이 꺼져 거의 실루엣만 보이는 사물들 때문에, 마치 그림 같다. 그렇게 멀리서같은 공간에서 여럿이 대화 중이지만, ‘프레임’ 안에 잡힌 것은 마티아스와 사라 뿐이다. 친구들에게 집중해 있는 사라는 포커스가 아웃 된 채 잡혀, 불이 켜진 방에 완전히 속해 있으나,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함께 그러나 홀로 앉아 있는 마티아스는, 이 방과 저 방의 경계에 위치한다. 정적으로 담아 인물과 관객을 ‘홀로’ 내버려 두기도 하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움직여 이야기 속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초반 별장에서, 정신없이 이 친구 저 친구의 얼굴을 오가는 카메라는, 막심의 시선이다.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 다음영화.


뒤죽박죽으로 일기를 늘어놓은 듯한 전개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자연스럽고 동떨어진 사건들은, 두 사람 각자의 캐릭터를 쌓고, 서로를 향한 심리와 그 사이의 관계 변화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 과정에 쓸데없어 보이는 말과 행동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적이다. 현실의 사람들은 중심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일만 하지 않는다. 본심을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는다. 기분을 드라마틱하고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생활에 치여 가슴속에 사랑을 키울 공간이 모자랄 때도 있다. 어떤 감정을 느끼고도 깨닫지 못하거나, 자꾸 부정하기도 한다. 인정하더라도, 곧바로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픽션의 경우, 만든 이의 선택과 능력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진다.

즐겨하는 비비드한 색 배치, 스타일리시하고 드라마틱한 편집 때문에 자비에 돌란의 작품이 ‘영화적’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허나 현실의 곧지 않은 감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재현한다. 메시지는 대사가 아닌 배우의 표정에 담겨 있다. <단지 세상의 끝>에서 핵심은, 가족들의 대사 내용 전부가 아니라, 말하는 이의 감정과 상태, 그리고 그것을 듣거나 듣지 않는, 루이의 감정과 상태였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쏟아지는 대사를 듣거나 듣지 않는, 마티아스와 막심의 표정이다. 별장 씬을 예로 들면, 끊임없는 대화의 흐름이 나름 흥미롭고, ‘막심은 약을 하지 않는다’처럼 캐릭터 해석에 도움이 되는 언급도 있지만, 굳이 다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기억할 것은, 말을 거의 않고 친구들의 입을 열심히 좇는 막심의 얼굴, 어떤 것을 부정하는 순간 보이는 마티아스의 얼굴이다.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 IMDB.


마티아스의 얼굴에는, 초반부터 심리가 드러난다. 막심이 키스를 언급하자 강하게 부정할 때부터 대충 보인다, 그 사건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가. 키스신을 찍은 날, 잠을 이루지 못하다 한참 헤엄쳐 돌아온 그는,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며 겨우 뱉는다. “길을 잃었어, 길을 잃었어.” 중의적인 대사로 인물의 심리를 비유하는 장치, 클리셰다. 그럼에도 차갑게 푸른 물과 새벽의 공기를 담은 꾸밈없는 화면, 모두 멈추어 있는데 마티아스 혼자 요동치는 것 같은 연출과 연기가,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그 날 이후, 마티아스의 머릿속은 막심으로 꽉 찬다. 자꾸 해야 할 일을 잊고, 산만해지고. 이성애자 남성들의 흔한 ‘놀이’들이 낯설어지고 약간 불편해진다. 막심이 어색해지고, 전에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흔들리니까, 부정하고, 피한다. 그러다 결국 찾게 된다. 홀로 식사를 하다 막심을 닮은 뒷모습을 발견하고 설레 하며 기웃거리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아닌 것을 깨닫고 실망한다. 가든파티가 끝난 후,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막심이, 창문을 통해 그때 그 낯선 이와 비슷한 각도로 보이자,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웃는다. 아마,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깨닫는 순간이었으리라.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 IMDB.


서로 분리되어 있는 시기, 마티아스가 그렇게 막심을 피하며 잊지 못하는 동안, 막심의 얼굴에서 마티아스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일하고, 엄마의 집과 자신의 집을 오가고, 엄마를 ‘돌볼’ 고모를 만나고, 형에게 전화를 걸고, 엄마와 싸우고, 울고, 다시 일을 나간다. 현재 그의 일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엄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격과 선택에 영향을 잔뜩 주는 존재. 자비에 돌란은 농도와 방식은 조금씩 다르나, 항상 가족에 대한 애증을 작품에 드러내 왔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안느 도발이 이번에도 엄마 역할을 맡았다. 이루는 케미는, 보다 어둡고 꼬인 종류다.

막심의 표정은 이미 생활과 엄마와 다른 것들로 가득해,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마티아스의 표정은, 깔끔하다. 감정과 상태가 거의 바로 드러난다. 거짓말을 잘 못해서, 또 막심 말고는 현재 마음을 건드리는 일이 딱히 없어서다. 막심의 시선에 있을 때, 카메라는 자주 잔뜩 흔들리고, 마티아스의 시선에 있을 때, 카메라는 천천히 집중한다.

피했던 것은, 만나게 되면 바라보기를 멈추지 못할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었을까. 술에 취해 게임을 하는 내내 마티아스는, 마치 의도적으로 이쪽을 보지 않는 듯한 막심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가 리베트에게 귓속말을 하자, 정색하고 따진다.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이, 말도 안되는 순간 이상한 형태로 터져 나온 거다. 끝내는 막심을 ‘점박이’라고 불러버리곤, 친구들 밑에 깔려 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후회로 괴로워한다.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 다음영화.


막심을 찾아 헤매던 마티아스는, 깜박이는 전구를 홀린 듯 한동안 올려다보다, 불이 새어 나오는 창고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제야 선반에 약간 우스운 모양새로 걸터앉은 막심이 프레임 속에 들어온다. 관객은 그때까지도, 마티아스의 마음은 확실히 알지만, 막심의 마음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마티아스가 막심의 손을 잡고, 상처 하나하나에 키스했을 때, 막심이 마티아스의 손을 피하지 않고, 키스를 받아들였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엉엉 울고 말았다. 두 사람이 나누는 세 번째 키스다. 관객에게 보여 주는 첫 번째 키스, 마침내 온전히 진심을 드러내는 첫 번째 키스다. 욕망을 삭제해 예쁘게 포장하지 않은, 절절하게 섹슈얼한 키스여서, 더 눈물이 났다. 막심의 찡그린 얼굴에 울음이 섞여 있어서였을까. 한참 서로를 빨아들이던 두 사람을 클로즈업으로 찍던 카메라는, 다음 순간 야외에서 집을 비춘다. 갑자기 비가 내리고, 놀던 친구들은 황급히 빨래를 걷으려 달린다. 초점이 서서히 이동해, 창문을 통해 키스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는다. 한 화면 안에서 두 영화가 재생되는 것 같았다. 아 나는 울 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시 실내, 마티아스는 갑자기 밀어낸다. 막심은 “이해해야 해, 이야기해야 해, 주말을 같이 보내고 싶어”라며 아프게, 분명히 묻는 눈으로 마티아스를 본다. 그때, 알 수 없다고 여겼던 막심의 얼굴들이 다시 아른거렸다. 어쩌면, 막심은 계속, 눈으로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넌 어느 쪽이냐’고, 넌 어느 쪽이고 싶냐, 고. 그러나 마티아스는, 또 도망간다. 다시 밖에서, 홀로 남은 막심이 보인다, 아니 ‘잘 보이지 않는다’. 창문 사이로 점이 두드러진다. 막심의 얼굴에 있는 점은, 딱히 중요한 얘깃거리가 아니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마티아스가 ‘점박이’라는 단어를 뱉고, 이후 키스를 하다 나가버리자, 의미가 생긴다. 잔뜩 취한 막심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자꾸 손바닥으로 점을 가린다. <하트비트>에서 프란시스가 홀로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 씬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 IMDB.


‘M과 M의 농장’을 발견하고, 막심은 눈물을 흘린다. 이성애중심주의가 정의한 우정과 사랑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느꼈다. 마티아스가 삼 주 동안이나 추천서를 주지 않았다는 걸 알고 그는 또, 눈물을 쏟는다. 허나 울먹이며 이메일 주소를 말했고, 짐을 챙겨 문을 나섰다. 순간, 막심의 얼굴이 복잡하게 밝아진다. 저 멀리, 마티아스가 서서 수줍게 웃는 것이 보인다. 서로의 마음은 확인했고, 그래서? 막심이 떠날지 남을지, 마티아스가 사라와 헤어지고 막심과 함께할 수 있을지, 앞날은 알 수 없다. 막심은 그냥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친 과거와 관계가 뒤얽힌 공간에서 멀어지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는지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을 이유가 생기면, 떠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적어도, 막심은, 아마 조금 덜 외로울 것이고, 마티아스는 이제, 스스로에게서 도망치지만은 않을 테다.

흐름과 마무리가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서로 좋아하는 거 빤히 보이는데 뭐하냐, 싶고,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하고 답답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허나 어떤 경우,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 답을 고민하는 과정이다. ‘해피엔딩’의 기준, 그에 대한 바람은, 관객의 욕심일 뿐이다. 이것은 정해진 골을 향해 달리는 게임이 아니라, ‘마티아스와 막심의 이야기’다. 피하고 싶었다가, 보고 싶었다가, 갑자기 화가 났다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어지는. 궁금했다가, 갖고 싶어 졌다가, 포기했다가, 벅차게 욕심이 나는, “넌 어느 쪽이고 싶어?”라는 물음에 답하는 과정이다.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 왓챠피디아.




+ 사라와 리베트의 촉
남성 게이 드라마에서 종종, 주인공의 여자친구는 남자친구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음을, 당사자보다 먼저 알아채곤 한다. 마티아스가 영화 상영을 눈에 띄게 불편해할 때부터, 사라는 대강 눈치챈 듯 보인다. 굳이 자꾸 영화를 언급하며 흥분하는 마티아스를 보고, 확신했을 게다. ‘내 남자친구는 그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에리카의 오빠 리베트 또한 가끔, 대강 두 사람의, 적어도 마티아스의 마음을 아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마티아스가 막심과 영화를 찍게 만들었고, 테이블에서 게임 훈수를 두던 마티아스를, 소파에서 홀로 텔레비전을 보던 막심 곁으로 보내기도 했다. 뭐 별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나는 사라와 리베트가, 너 막심 좋아하지? 라는 식으로 묻는 씬이 없다는 것이 또, 좋았다. <하트비트> 감상에서도, 마리와 프란시스가 너 니콜라 좋아하지? 포기해. 라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고 적은 바 있다.

+매카피
마치 초기 스타일을 아주 버리지는 않았다고 안심시키듯, 슬쩍 던져 주는 스타일리시 유머러스. 파티 게임 씬이나, 처음에 언급한 자동차 뮤직 플레이 씬도 있었으나, 매카피의 등장 씬이 아주, 그랬다. 그가 듣는 음악이 가득 울려 퍼지며, 세상 혼자 사는 것처럼 눈을 감고 신나게 몸을 흔드는 얼굴이 부담스럽게 클로즈업된다. 본인의 의도와 달리 마티아스가 무언가를 깨닫게 만드는 기능,을 하는 인물이나, 그 겨우 몇 초의 등장만큼은, 자체로 영화였다.

+자비에 돌란의 연기
자비에 돌란의 연기가 새삼스러웠다. 물론 그는 원래 연기를 잘했다. 항상 자기만의 표정이 있다고 느꼈다. 헌데 이번엔 정말 깊은 종류였다. 글에 울었다는 얘기를 몇 번 적었는데, 사실 그 횟수보다 훨씬 많이 울었다. 그가 연출도 연기도 계속해줬으면 한다.
(Next article AD: Xavier Dolan as and actor, coming soon.)

“Give him a mask, and he’ll tell you the truth
가면을 씌워 주면, 진실을 말할 거야.”
-<벨벳 골드마인>(1998)


“가장 나와 닮은 이야기다.” 팜플렛에 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마티아스와 막심에게 자신의 역사를 나누어 담은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워 봤다. 아니면 아닌 거고, 중요하진 않다. 픽션을 보고 이거 감독 실화야? 하고 묻는 건 별 의미 없는 짓이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있는 그대로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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