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드!(The Bride!)>(2026, 매기 질렌할)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브라이드!>, 문자그대로 죽었다 살아난 ‘페넬로피’는 그들이 연인이었다고 주장하는 프랭크와 나란히 클럽에 들어간다. 무대 위에는 다소 도드라지는 형상을 한 공연자가 있다. 창백한 피부, 거뭇하게 번진 입가와 눈가, 뻗친 머리카락, 구겨진 수트, 경악한 듯한 표정, 퍼핏처럼 꺾는 팔다리; The Knife로 활동을 시작한 카린 드레이예르의 현 음악적 자아 Fever Ray다. 1930년대 뉴욕 클럽 무대 위 동시대 북유럽 실험 전자음악 아이콘의 현현은 더없이 어울릴뿐더러 꽤 적절하게 다가온다. 페르소나에 따라 디테일은 다르더라도 피버 레이는 공연장과 뮤직비디오에서 늘 그런 식으로 존재해 왔다. 일부러 기괴함freakishness을 추구하며 경계를 밀어내고 흐리는 놀이와 실험의 수행, 이는 <브라이드!>가 취하는 태도와도 닿는다.
여성 괴물과 여성 괴물
매기 질렌할이 <브라이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그로테스크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때로 영화관 의자 등받이로 등을 최대한 물리거나 고개를 돌리고 싶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다. ‘아버지’의 성을 딴 이름을 사용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외형도 태도도 울퉁불퉁한 “몬스터”다. 접합 부위가 자꾸 덧나 악취를 풍기고 영화관에서 제 흥대로 큰소리를 내다 제지당하는 그는 숨고파 하면서도 이내 돌출되고 만다. 다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 ‘이런 프랑켄슈타인’에 어울리는 신부다. 다시 말해 ‘더 브라이드’에 어울리는 짝이 ‘이런 프랑켄슈타인’이다. ‘아이다’는 부활하기 위해 죽었고,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라는 워딩은 뒤집히기 위해 던져진다.
영화는 제시 버클리가 연기하는 메리 셸리로부터 출발한다. 아직 할 말이 잔뜩 남은 채로 죽은 그는 어두운 보이드에 갇힌 유령이다. 그에 의해, 역시 버클리가 연기하는 ‘아이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메리는 허구의 배경을 설정해 전지적 작가로서 아이다를 서술하지 않는다. 한때 딸, 신부, 부인으로 불렸던 여성이자 작가, 그리고 죽은 자로서 이승의 현실에 틈입해 이야기를 다시 쓰려 한다. 아이다는 메리가 창작한 캐릭터이자 영화 속 현실에 실재하는 여성, 메리는 아이다의 육신에 빙의하되 기존의 ‘영혼’을 없애고 그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한 신체 안 두 목소리의 공존은 빙의 부작용이 아닌 정확히 메리가 원했던 상태다.
‘페넬로피’에게 있어 ‘목소리 낮추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스토리텔러 메리가 그가 숨죽이길 원치 않아서, 그리고 그가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종의 매개여서다. ‘페넬로피’는 숨어 있어야 할 때 소리를 지르고 목청껏 노래한다. 성의없이 위장했다가 그마저 벗어던지고, 적극적으로 들키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때로 충돌하는 두 개의 이너 보이스에 괴리감을 느끼고 자신이 행한 폭력에 괴로워하는, 클럽에서 맨살을 내보이며 춤추고 욕망하다가도 침입하는 남자들의 손길에 공포를 느끼는 그는 <가여운 것들>의 벨라 백스터 같은 수퍼히어로는 아니다. ‘더 브라이드’는 초월한 영웅이 아닌 파괴하고 고뇌하는, 억지로 삼킨 것을 토해내고 곪아 터진 상처를 드러내는 괴물이다. 그렇게 유령 여성은 (그 몸을 빌려서라기보단) 빙의한 몸의 주인-시체였던 여성-과 함께, 자신이 살았던 세상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 속 세상에서 즉흥적인 행위 예술을 촉발시킨다. 따라서 <브라이드!>는 과하고 혼란스럽다. 성범죄자를 때려죽이고 부패한 경찰을 총격하고 고성을 내지르고 유리잔을 씹어먹는, 그 과장된 혼돈의 실천과 전시까지가 메리와 영화가 하려는 바다. 이는 관람자보단 공연자의 즐거움을 위한 위험한 프릭쇼다.
판타지를 깨기 위한 판타지
매기 질렌할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30년대 뮤지컬은)정말 즐겁고 명랑하지만,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판타지에 근거한다. 이 영화는 그 반대다. 그 판타지를 갈라 열고 온전한 마음을, 온전한 사람을, 괴물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인식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다in order to be able to love.”[Indiewire] 이 ‘갈라 여는’ 작업을 위해 <브라이드!>는 영화 속에 두 종류의 판타지를 구현한다. 로니 리드 주연의 뮤지컬 영화를 보는 프랭크의 상상-환상은 영화 내부 스크린에 나타난다. 이내 주변의 핀잔이나 멸시에 의해 깨지지만, 프랭크는 그 환상으로 자신을 반복해 밀어넣으며 현실을 견디고 (적어도 초반에는)‘페넬로피’도 그 일부로 두고자 한다. 유령의 음성이 울려퍼지고 시체가 되살아나는 영화 자체의 배경 또한 일종의 판타지, 범죄스릴러와 로맨스, 크리처물과 뮤지컬이 뒤섞이는 이곳에는 처음부터 금이 가 있다. 현실과 닮았고 현실이 계속해서 폭력적으로 틈입하는 세계, 그 과함을 스스로 인식하며 전시하는 퍼포먼스의 세계. 이는 기존의 판타지와 그 바탕이 되는 현실의 규범을 깨고 다른 것을 상상하기 위한 판타지 세계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프랭크는 ‘페넬로피’에게 청혼하고, 연인의 모습은 흑백 뮤지컬영화 필터가 적용된 채 자동차극장 스크린에 나타난다. 프랭크 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 장면을 목격한다. ‘페넬로피’가 청혼을 거절함으로써 그를 ‘000의 신부’로 만드는 판타지는 부서지고, 거절당한 자와 거절한 자 모두 기뻐한다. 자신을 배제하는 판타지에 편입되길 꿈꾼 남성과 제 의사와 상관 없이 판타지에 끌려들어간 여성은 그 틈을 열고 빠져나온다. 그 과정의 마무리는 또 한번의 ‘죽음->부활’ 의식이다.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브라이드’였으나 이제는 ‘더 브라이드와 그의 프랑켄슈타인’으로 말할 수도 있는 -프랭크가 기꺼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하지만 누구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귀속되지 않는- 한 쌍의 괴물 연인이 되살아나는 결말은 해피엔딩보단 ‘이야기를 탈출한 이야기’의 오프닝에 가깝다.
“저들이 우릴 무어라 부르는지 들었어?”**
그러나 나는 <브라이드!>를 ‘한 여성이 자아를 찾아 완전히 독립된 개체가 되는’ 여정으로 설명하지는 않으려 한다. 메리가 임의로 붙인 ‘아이다’, 프랭크가 임기응변으로 뱉은 ‘페넬로피’를 거쳐 이 괴물 여자가 택한 이름은 ‘더 브라이드’다. 왜 이름을 새로이 짓는 대신 ‘신부’를 그대로 사용했나; 이는 타인에 의해 불리던 언어(what they call us)를 자신의 것으로 되찾는 행위이며, 단절과 연결의 제스처를 모두 포함한다. 즉 브라이드를 그룸에게서 끊어내어 남성 주체와의 관계로 여성을 정의하는 말을 ‘the’가 붙은 고유명사로 재의미화하는 행위이면서, 그 ‘신부들’과의 이어짐을 유지하려는 행위다. 미르나와 같이 남성들과 ‘동등지위에 오른’, ‘무언가가 된’, 여자들만이 아니라(‘배지를 획득’한 후에도 남자들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이 인물의 여정도 물론 중요하다), 이름을 갖지 못한 여자들, ‘000의 신부’, ‘mrs. 000’, ‘000의 딸’로 불리는 여자들과 함께하겠다는, 혀가 잘린 여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의지를 품은 제스처인 것이다. 그 연결성은 ‘더 브라이드’의 존재 속성이다.
<브라이드!>를 페미니즘 영화 중 하나로 보고 넘기기보단, 이 영화가 향하는 곳에 ‘어떤’ 페미니즘이 있는가를 살피길 바란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이자 “mrs. 셸리”였던 여성 괴물로부터 출발하는 <브라이드!>의 페미니즘은 ‘whore’, ‘bride’, ‘freak’, ‘monster’, ‘ghost’들을 위한 것이다. “조개”로 불리는 얼룩진 여자들, 피부에 남자들의 손때가 묻고 뱃속에는 억지로 삼킨 굴과 “더러운 농담”이 들어 있는, 그 이물을 토해내며 묻은 얼룩이 혀와 얼굴에 고스란히 문신으로 남은 여자들을 선두로 하는 페미니즘이다. 그 여정에 (여자가 ‘남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음을 납득한)“몬스터”로 불리는 남자와 남성중심사회의 유산을 버리려는 남자를 포함하는, 색조화장을 하는 남자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들과 나란히 서는 페미니즘이다. 누군가를 ‘열등’하거나 부차적인 존재로 만드는 표현들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대신, ‘우리는 기꺼이 자랑스럽게 그것이다’라고 선언하며 언어를 고유하게 재의미화하는 과정, 이것이 <브라이드!>가 보여주는 판타지-브레이킹 판타지 퍼포먼스다.
* 참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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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 you hear what they call us? / Did you hear what they said?”
- Fever Ray, ‘What They Call Us’
https://youtu.be/VudTAeQeA9o?si=tFk-yzEFFgwLxtw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