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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Jun 29. 2019

매튜 구드, The Handsome.

매튜 구드(Matthew Goode)  (1)



-영화:
<매치 포인트(Match Point)>(2005, 감독: 우디 앨런)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2014, 감독: 모튼 틸덤)
<싱글 맨(A Single Man)>(2009, 감독: 톰 포드)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테이션 게임>(2014)


매튜 구드라는 배우에 대해 쓰면서, 외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잘생겼다. 그것도 정석적, 구체적으로 잘생겼다. 어느 시대에 던져 놓아도 당시 사회적 미의 기준에 부합할 것 같은 얼굴이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내 스타일’은 대개 가장 잘 어울리는 패션과 연결되는데, 짧고 단정한 머리와 수트가 최적인, 큰 키와 작은 얼굴, 푸르게 번쩍거리는 눈을 지닌 이 배우는, 그저 잘생겼다, 는 감탄 만을 자아냈을 뿐이었다. 왜 갑자기 글쓴이의 배우 스타일 얘기를 하느냐면, 그 ‘지나친 잘생김’이 현대에 활동하는 배우들에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연결되어서다. 주연을 쉽게 따낼 것 같은 얼굴인데, 의외로 완전히 중심에 있는 역할을 맡은 작품이 많이 없다. 소개할 작품들에서 매튜 구드는 주로 추억, 동경, 비교의 대상으로 등장해 최대한 잘생김을 뿜어내고 지나가,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섬세한 연기를 돋보이게 했다.  


사실 그 ‘잘생김’은 얼굴과 몸의 생김새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몸에 밴 절제와 신사적 태도가 외모의 ‘엘리트’적 분위기를 완성한다. 어쩌면 매튜 구드는 자라면서 어떤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분위기를 활용한 대표적인 캐릭터가 <매치 포인트>(2005)의 톰이다. 톰은 ‘엘리트’ 그 자체다. 부유하고 자상한 부모님 손에서 그늘 없이 자랐다. 알기 쉽고, 그래야만 하는 인물이다. 가난하고 고민 가득한 삶을 살아온 크리스나 노라의 그늘이 관객의 눈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 “Well, I think he’s very handsome, don’t you think? 음, 그가 매우 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안그래요?” “Yes, very. 맞아요. 정말로.” 크리스와 노라의 대화에 등장하는, 톰에 대한 감상은 이 정도다. 별 생각 없이 잘생기기만 해도 되는 사람인 것이다.


<매치 포인트>(2005)


그래서 재미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톰은 스스로의 매력을 잘 알고 있는 이의 자신 넘치는 태도로, 예의를 넘지 않는 선에서 쉽게 다가가고, 호감을 산다. 첫 만남에서 크리스가 ‘내가 계산한다’고 하자, 담배를 물고 그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피식 웃으며 ‘그 손 치우라’고 말한다. 상대가 기분 나쁘거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공격성이 담긴 장난스러움이다. 하지만 톰을 보는 크리스의 표정에선 갖가지 감정이 묻어난다. 크리스의 속에 쌓인 고민과 예민함이 톰의 삶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쉬워 보이지만, 그 적절함은 쉬운 게 아니다. 톰처럼 돈 걱정 없이 예의와 태도를 자연스레 터득하며 자라 온 사람만이 지닌, 스스로 인식하지 않을 정도로 몸에 밴 적절함이다. 이어지는 대화에 톰은 ‘이상한 소리 같지만 오페라를 보러 가자’, 고 말한다. 제안하는 눈은 반짝거린다. 상대의 의중을 짐작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순수한 관계의 즐거움을 추구해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설렘이다. 크리스가 배우지 못한 적절함이고,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설렘이다.
 

톰은 곧은 자세로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본다. 대화에 집중할 때는 미간을 주름지게 만들고 가끔 한쪽 입을 올려 엷은 미소를 띄운 채 입을 연다. 크리스와 톰 모두 ‘연기’를 하고 있지만 그 종류는 다르다.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사실 최선을 다해 ‘척’하고 있는 크리스와 달리, 톰은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그게 ‘태도’가 된다. 사무실에서 통화하며 물을 따르는 모습에서도 묻어날 정도다. 매튜 구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 태도를 정말로 몸에 익힌 사람이거나, 그러한 연기를 매우 자연스럽게 할 줄 아는 배우 둘 중 하나임은 확실하다.



<매치 포인트>(2005)


‘잘생긴’ 연기를 하는 매튜 구드의 매력 포인트는 장난스러움, 개구짐에 있다. 그것은 느끼하게 늘어지지 않고 담백하고 짧아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도 집중을 흐트러뜨리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동생에게 “You have better legs than me, chop chop.” 같은 농담을 해도, 그냥 툭 던지고 사라져서 듣는 사람이 피식 하고 넘기게 된다. 식사 전에 스카치 한 잔 하자고 말하며 찡긋 올리는 눈썹이 또 다른 예다.  


톰이 항상 장난스럽게 웃고 다니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관객이 공감할 정도로 깊은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딱히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최대 고민은 어머니가 약혼자를 싫어 한다는 것이며, 아주 모범생은 아니지만, ‘일탈’ 비슷한 걸 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놓인 탄탄대로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애인을 무례하게 대하는 어머니에게 화내거나, 결국 노라와 헤어지고 혼란스러워 해도 그 때 뿐이다. 절제해서 화내거나 웃으며 찡그리는 모습을 살짝 보여주어, 다음 순간 등장하는 노라나 크리스의 복잡한 표정으로 관객이 주의를 돌릴 수 있게 한다.


<매치 포인트>(2005)



<이미테이션 게임>(2014)의 휴는 약간 더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자라온 환경이 어땠는지 작품에 나오지는 않지만, 톰처럼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큰 ‘가로막힘’은 없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앨런 튜링처럼 천재는 아니나 유능한 학자이고, 항상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Let’s play.” 앨런이 에니그마 해독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 등장한 휴가 눈을 빛내며 한 말이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휴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진지하지만, 빛나는 눈에는 역시 장난기가 묻어난다. 진지함 위에 어린 장난기랄까. 역시 수트에 단정한 머리, 곧은 자세, 지루함을 깨듯 주머니에 넣은 손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테이션 게임>(2014) “Let’s play.”


초반의 장면에서 휴는, 앨런은 모르고 관객은 느끼는 긴장감을 극에 부여한다. 동료들의 화법(‘보통’ 사람들의 화법이기도 하다)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암호 해석에만 집중하며 딱히 겸손하지도 않은 앨런을, 적대감을 갖고 대한다. ‘너’와 ‘우리’를 가르고, 똑바로 보며 비꼰다. 본인의 방식이 흔들리는 순간, 그의 눈은 욕망, 질투, 분노 등으로 번쩍거린다. 오로지 수학에 집중하는 앨런의, 약간 멍하고 흔들림 없는 눈과 비교된다. 허나 전력을 다해 괴롭히지는 않는다. 휴 같은 ‘잘난’ 사람에게 앨런은 그냥 ‘거슬리는 괴짜’ 정도다. 대화 끝에 작업실을 나서며 담배를 물고 짓는 비웃음 정도였던 감정은, 이후 처칠에게 임명된 앨런이 동료 몇을 해고하면서 커진다. 그러한 상태에서 분노를 드러낼 때도, 재치 넘치는 언어 구사 능력과 멋진 표정, 모델 같은 워킹이 드러나도록 한다.


<이미테이션 게임>(2014)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몸에 밴 그 워킹들에서 기시감이 들었다. 톰의 자세가 떠올랐다. 톰이 크리스와 대조되는 요소가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된 삶의 태도라면, 휴가 앨런과 이루는 대조는 성격과 성향에서 온다. 그 지점이 다른 까닭은 매튜 구드의 캐릭터가 아닌, 상대 캐릭터의 특징과 시공간적 배경의 차이다. 톰과 휴는 마치 같은 사람이 다른 상황에 놓인 듯 닮아 있었다. 매튜 구드의 연기가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그랬다. 이런 류의 인물이 이 배우의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너무도 잘 어울리기에 자꾸 캐스팅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 들었다.  


그 태도에도 한계는 있지만, 한계를 넘지는 않는다. 자꾸 해독에 실패하자 참을성을 잃은 휴의 화는 앨런에게로 폭발한다. 안 그래도 부리부리한 눈에 더 힘을 주고 성큼성큼 앨런에게로 향한다. 앨런의 기계를 향해 잔을 던진다. 얼굴이 벌겋게 변하고 인상을 쓰며 약간 울먹이기까지 한다. 헌데 자제력을 잃은 상태에서도 어떤 폼,이랄 것이 묻어난다. 잔을 던지는 동작은 스포츠 선수가 공을 던지는 모습 같기도 하다. 매튜 구드의 분위기와 휴의 캐릭터가 지니는 특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인간의 끝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은. 난리 치지 않는 그 모습이 오히려 상대를 겁먹게 한다.  


<이미테이션 게임>(2014)


휴는 잘나서 쿨하다. 클라크의 도움으로 앨런이 노력하자 마음을 열고 결국 앨런을 동료로 인정하고, 후에는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초반에 보이는 휴의 재치는, 앨런이 해고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는 변호의 진지함을 두드러지게 한다. 예의 그 워킹에 속도를 늦춘 걸음으로 다가와 눈을 똑바로 뜨고 상대를 설득한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말투와 표정은 믿음직스럽다. 군인들이 나가자 휴의 장난기는 돌아와, ‘성공 못하기만 해’라는 대사로 앨런의 죄책감과 긴장을 풀어 준다. 이후 본격적으로 앨런을 지지하는 휴의 진지한 얼굴을 보면, 이렇게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앨런과 휴 사이는, 갈등은 없으나 영원히 평면적이고 일방적인 크리스와 톰 사이와 달리, 입체적이다. 어쩌면 갈등을 겪었기에 솔직하고 동등해진,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 간의 케미, 라는 것이 존재한다. 한 화면 속 두 배우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지녔기에 서로를 보완하며 빛난다.


<이미테이션 게임>(2014)



뜬금없지만, 톰과 휴의 공통점은 사랑에 빠진 얼굴이다. 금새 사랑에 빠지고, 관심 있는 상대에게 직진한다. 클래식한 멘트를 날리는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에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일종의 ‘작업’ 이라고 해서 절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진지하게 관계에 집중하고, 상대를 존중한다.  

 

<싱글 맨>(2009)


꼭 대상이 여자일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싱글 맨>(2009)의 짐이 사랑에 빠진 것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성 조지다. 상대에게 빠진/ 상대를 빠뜨리는 눈은, 톰이나 휴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콜린 퍼스와의 케미는 좀 다르다, 독특하다.


<싱글 맨>(2009)


짐은 주인공과 비교의 지점에 있는 사람이 아니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다. 짐이 톰이나 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실 더 매력적인 까닭이다. ‘추억’이기 때문이다. 현재에는 흑백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만지면 흩어지는 연기다. 작품에 등장하는 짐은, 짐 자체가 아니라 조지의 기억 속 짐이다. 이미 죽은 상태이기에 그는 더 아름다워야 한다.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바래 관객과 남겨진 연인을 더 슬프게 만들어야 한다. 겉모습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생활과 관계를 소중히 하고,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며, 스스로를 잘 알고 표현함으로써 상대에게도 확신을 준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만든, 주변마저 환하게 빛내는 짐의 미소는, 그의 곁을 느꼈고, 이제 빈 자리를 느끼는 조지의 회상 안에서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색을 입는다. 그리고 짐의 부재는, 조지가 현재 겪는 일과 감정에 뿌연 필터를 입힌다.


톰 포드의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화면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매튜 구드의 역할은 그냥 그림처럼 그대로 존재하며 사랑과 매력을 말과 행동에 묻히는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연기’였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원작 책을 읽어도, 짐에게서 매튜 구드가 그대로 떠오른다. 정말 탁월한 캐스팅이었다.)  


<싱글 맨>(2009)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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