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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Aug 24. 2019

끝없이 ‘하찮고’ 끝내주게 멋진

스티브 부세미(Steve Buscemi)




<데드 돈 다이(The Dead Don’t Die)>(2019, 감독: 짐 자무쉬)
<커피와 담배(Coffee and Cigarettes)>(2003, 감독: 짐 자무쉬) 속 <TWINS>(1989)
<펄프 픽션(Pulp Fiction)>(1994,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1992,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스탈린이 죽었다(The Death of Stalin)>(2017, 감독: 아르만도 이안누치)
<Ghost World>(2001, 감독: 테리 즈위고프)
<파고(Fargo)>(1996, 감독: 조엘 코엔)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내용과 <저수지의 개들>, <스탈린이 죽었다>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고>(1996)는 코미디다. 피와 시체가 난무하지만 웃을 수밖에 없다. 웃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한 캐릭터의 ‘얼굴(과 그에 대한 묘사)’이다. 용의자를 수소문하며 인상착의를 묻는 마지(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 목격자들은 하나같이 답한다. ‘funny lookin’ guy’가 있었다고. 그 ‘웃기게 생긴 놈’을 맡은 배우가 바로 스티브 부세미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말이 이해가 되며, 그냥 웃음이 샌다. 특정 외모를 비하해서 불편한 표현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스티브 부세미의 묘한 분위기와 연기 덕이다.


<파고>(1996)


스티브 부세미를 보고 있으면 웃기다.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웃기고, 본인은 진지해도 웃기다. 헌데 까닭은 알 수가 없다. 툭 튀어나온 눈과 고르지 않은 이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포함한 요소들이 모여 이루는 전체적 외모는 일종의 약한(약해 보이는 / '약'을 한 것 같아 보이는) 미모를 뿜어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웃기기 위해 전형적으로 익살맞은 표정을 하지 않는다. 매우 우울하고 진지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얼굴이 날카로운 목소리와 만나, 독특한 방향의 웃음을 유발한다. 항상 비슷한 방식이어도 절대 질리지 않고, 그렇게 자꾸 웃다가 빠져들게 된다.

<파고>와 <위대한 레보스키>(1998)의 코엔 브라더스에, 짐 자무쉬와 쿠엔틴 타란티노까지. 독특하고 확고한 작품 스타일로 마니아층을 확보한 감독들의 작품에, 스티브 부세미는 다른 듯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다크'인 경우가 많은) 코미디적 요소를 품고 있다. (두 작품을 다시 보는 것에 실패해 아쉽게도 언급만 한 코엔 브라더스는 제외하고)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방식을 보이기는 하지만, 짐 자무쉬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디테일이다. 흐름의 정 중앙에 있지는 않으나, 그 디테일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배우가 바로 스티브 부세미다. 예민하고 날카롭거나 쓸데없이 붙임성이 좋거나 어느 쪽이건, 연기 톤은 조금씩 달라도, 특유의 표정으로 이야기에 맛을 더한다.


<저수지의 개들>(1992)



먼저 짐 자무쉬의 신작 <데드 돈 다이>(2019)프랭크다. 전형적인 ‘미국 작은 마을의 레이시스트 백인 남성 노인’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유물이다. 갖고 있는 것을 누리기보다는, 잃을까 걱정하느라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한다. 증거도 없이 닭을 밥이 훔쳤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내 땅을 침입했기 때문에’ 좀비들을 쏜다. 프랭크는 밥도 싫어하고 블랙커피도 싫어하고 스터질 심슨도 싫어하고 이것저것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프랭크를 모두가 싫어한다. 하지만 이 밉상 노인의 얼굴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보다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커피에 대해, “Too damn black for me.”라고 했다가 바로 행크의 눈치를 보며, ‘그런 뜻이 아니었다(흑인이 싫다는 말이 아니었다)’고 소심하게 해명하며 문을 나선다.


프랭크의 역할은 웃기는 게 다다. 악당까지도 못 되고, 온갖 걱정과 혐오를 안고 소심하게 툴툴거리며 모두에게 하찮은 밉상이 된다. 결국 좀비들에게 먹히는 그를 보고, 밥은 ‘잘됐다’고 하지만, 관객에겐 그 정도의 통쾌함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끝없이 이어지는 새된 비명에 웃을 뿐이다. 약간의 연민을 품을지도 모르지만, 금방 잊게 된다.



<커피와 담배>(2003)


스티브 부세미와 짐 자무쉬의 ‘하찮고 귀한’ 인연의 끈은 십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커피와 담배>(2003)와 만난다.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다. 커피나 담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5분에서 10분 사이의 길이로 묶여 있다. 인물들은 주로 짝을 지어 대화를 주고받는다. 관계는, 일방적이거나 애매하기도 하고, 어딘가 뒤틀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쨌건 ‘상대방’이 있다. 헌데 ‘TWINS’(1989) 에피소드의 웨이터 대니는 조금 다르다. 말은 많지만 중심은 아니며, ‘짝이 없다’. 제목은 ‘TWINS’이지, ‘TWINS AND WAITER’가 아니다.


대니는 카페에 앉아 같은 셔츠를 입고 티격태격하는 쌍둥이에게 커피를 리필해 주며 등장한다. 어설프게 커피를 따르다 왕창 흘리고, 어설프게 사과하며 닦다가, 어설프게 말을 걸고,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모든 것이 어설프지만 쌍둥이는 밀어내지 않는다. 너무 어설퍼서 딱히 부담조차 되지 않는, 거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하찮은, 이상한 방향으로 성공적인 붙임성이다. 대니는 쌍둥이의 무관심한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엘비스 프레슬리 쌍둥이 형 음모론’을 늘어놓는다. 얼굴에 힘을 주고 눈썹을 올리며 열심히 눈을 맞추고, 손짓을 섞어가며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정신도 중심도 없다. 두 청중이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이면 세상을 잃은 듯 낙심한 표정을 짓지만, 곧 회복해 자신의 이론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춘다.


대니가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원맨쇼, 논리도 의미도 재미도 없는 실패한 조크다. 쇼의 끝도 그렇다. 결국 사장의 핀잔에 ‘곧 오겠다’며 자리를 뜬다. 전혀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to be continued….’쯤 되겠다. 하지만 바로 그 어정쩡하게 끼어든 실패한 쇼가, 이야기 전체를 흥미롭게 만들고,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스티브 부세미는 그 점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화면 사이에 녹아들었다가, 사라진다.

 

<펄프픽션>(1994)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으로 넘어가면, 웨이터 스티브 부세미를 다시 발견할  있다. <펄프픽션>(1994)에서 미아와 빈센트의 식사 주문을 받는 ‘버디 홀리. 이번에는 불필요하게 말을 걸거나 붙임성 있게 굴지 않는다.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죽이고 표정도 가라앉혔다. 오히려 너무, 필요한 서비스만 제공해서 눈에 띈다. 과장된 제스처와 미소를 입고 돌아다니는 ‘마릴린 먼로등의 다른 웨이터들과 비교된다. 분장은 버디 홀리처럼 했으나, 기본적으로 우울한 스티브 부세미의 표정이 굳은  그대로 드러난다. 구부정한 자세에  정장은 어울리지 않고, 뿔테 안경 너머로 치켜뜬 눈은 퀭하다. 그가 자리를   빈센트는 말한다. ‘ 웨이터는 프로가 아닌  같아요, 마릴린 먼로 석에 앉을  그랬어요.’  이런.  웨이터도, 의도치 않게 고객의 심기를 거스른다. 대사도 행동도 오로지 서비스와 관련된 것뿐인  ‘우울하고 프로답지 못한웨이터 단역을,  스티브 부세미가 했어야만 했는지, 납득해버렸다.


<저수지의 개들>(1992)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는 대개 확실하다. ‘그 캐릭터가 그 상황에서 그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저수지의 개들>(1992)도 마찬가지고, 미스터 핑크는 그중에서도 더 쓸데없다. 첫 등장부터 팁을 주지 않는 까닭에 대해 긴긴 논리를 늘어놓는다. 날카롭고 울림이 적은 목소리(듣는 사람마저 예민한 짜증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스티브 부세미의 ‘FUCK!’이라니-)는 시니컬함을 더한다. 창백한 얼굴, 퀭한 눈, 비죽거리는 입도 마찬가지다. 비호감을 자처하는데, 묘하게 설득력과 매력이 있다. 그 장면 하나로 쿠엔틴 타란티노는, 미스터 핑크의 성격을 드러내고 매력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기본은 재치 있는 각본이지만, 스티브 부세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마 가장 대사가 긴 인물이 핑크일 것 같다. 끝없이 줄줄이 말한다.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함정이라는 얘기(놀랍게도 사실이었다)까지 끊임없이 걱정과 불만을 제기하는데,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포기한다. 본인은 진지한데 보는 사람은 우습다. 말만 엄청나게 늘어놓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전혀 강렬하지 않게 자리를 뜬다.


바로 그게, 핑크의 역할이다. 없어 보이기. 경찰을 때리다가 손목이 나가 계속 아파하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이를 드러내며 말을 계속한다. 카메라는 그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잡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심각하게 얘기할 때 혼자 아파하는 편이 더 우습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의 카메라도 비슷하다. 화이트, 에디, 조가 서로 총을 쏜 후, 구석에 숨어있다 다람쥐처럼 쪼르르 나와 도망가는 핑크를 멀리서 잡는다.


<저수지의 개들>(1992)


타란티노 영화에서 주인공을 한 명 꼽기는 어렵다. 중심인가 하면 죽어버리기를 반복한다. <저수지의 개들>의 주요 등장인물은 죄다 죽는다, 미스터 핑크만 빼고. 끝까지 살아남기는 하는데, ‘최종 주인공’이냐면, 아니다. 오렌지나 화이트, 블론드와 달리, 핑크의 뒷이야기는 없다. 그냥 경찰에 쫓겨 엄청나게 도망가는 장면만 잠깐 나온다. 다른 인물이 아니라 핑크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 준 데에는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 목적이란 게 있다면 아마 웃기는 것. 스티브 부세미의 핑크가 도망가는 모습이 가장 하찮고 우습고 없어 보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스티브 부세미는 끝없이 하찮아질 수 있다. ‘하찮은 연기를 해서 웃기려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성공적이다. 본인은 하염없이 심각하고, 심지어는 그 심리를 매우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게 너무 ‘하찮아’ 결국 웃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스탈린이 죽었다>(2017)


감독의 스타일보다는 뚜렷한 줄거리와 목적이 드러나는 다크 코미디의 경우에도, 스티브 부세미의 ‘코미디’ 연기는 성공적으로 작용한다. 본인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작품의 목적에 부합한다. <스탈린이 죽었다>(2017)가 이에 해당한다. 독재자 스탈린이 죽은 후 소련의 권력 다툼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딱히 이입할 인물이 없고, 긴장감은 있지만 멀찍이 시니컬하게 관찰하는 톤이기 때문에, 권력을 쥐고 살아남으려는 관료들의 비열하고 이기적인 행동들을, 웃으며 관람할 수 있다.

그 핵심 관료 중 우선 돋보이는 것은 베리야다. 스탈린이 쓰러지기 무섭게 상황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소련을 통제하는 무서운 인물이다. 표정을 굳히고 음흉하게 눈을 치켜뜬 채 낮은 목소리와 발걸음으로 무게를 잡는다. 그와 대립하는 스티브 부세미의 흐루쇼프는, 무섭지는 않다. 둘 다 음모를 꾸미고는 있는데,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베리야와 달리, 흐루쇼프는 항상 한 발 늦어 어설프게 겉돌다가 결국 장례식이나 담당하게 된다.


몸을 크게 만들고 코를 둥글게 만드는 분장을 했지만, 두드러진 눈초리와 온 얼굴을 뒤덮은 그늘은 여전히 날카로움을 풍긴다. 스탈린이 죽기 전에 필사적으로 농담을 하던 높은 목소리는, 사건 이후 거짓 웃음기를 거두고 예민하고 바쁘게 움직인다.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고, 높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스티브 부세미의 우울한 얼굴과 불안한 표정은 흐루쇼프의 캐릭터와 상태를 잘 표현하지만, 그에게 이입할 정도로 무겁지는 않아 웃음을 준다.


<스탈린이 죽었다>(2017)


허나 이야기가 끝났을 때 권력을 잡는 인물은, 흐루쇼프다. 열심히 계획하고 사람들을 설득한 결과 베리야를 숙청하는 데에 성공한다. 마지막 순간에도 여전히 가볍고 예민하고 분주하게 돌아다니지만, ‘지켜주겠다’ 던 스탈린의 딸에게 결국 닥치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의 분위기는 다르다. 이제까지의 불안한 가벼움 대신, 권력의 무게가 느껴진다. 캐릭터의 바뀐 위치를 드러내고, 관객의 웃음을 앗아가며, 더 나아가 현실로 끌어내린다.(이것은 실화입니다 사람들아,라고 말하듯-) 스티브 부세미는 꾸준히 비슷하고 익숙한 톤으로 연기를 하다, 마지막 한 번의 미묘한 변화를 주어 효과적인 끝을 맺는다.


<스탈린이 죽었다>(2017)



스티브 부세미가 영화보다 먼저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담은 인터뷰가, 그가 왜 자꾸 웃긴지, 에 대한 답의 일부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티브 부세미가 주는 웃음은 기술이나 익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질문에 답하는 그의 말들에서는, 능숙한 코미디언의 능글맞음 보다는, 마음 한구석에 잔뜩 품은 섬세함이 느껴진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연기를 시작했고, 대학 첫 학기에 그만둔 후, 친구들 모르게 연기할 수 있도록 밴을 사서 L.A.로 떠날 계획이었다. (왜 떠나려고 했냐는 질문에,) 그냥 부끄러워서. 아버지랑 얘기한 후, 맨해튼에서 연기 수업을 들으며 소방관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다. 이사해서 가구 운반 회사에서 일하면서 시내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다. 2년 후 뉴욕에서 소방관으로 일하게 됐다. 동료들이 내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 다른 소방관 배우가 말해버렸다. 동료들은 그에 대해 충격받았다. (왜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냐는 질문에,)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은 시트콤에 출연하는 거였다. 영화에 출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진지한 배우들 serious  actors 을 위한 거니까.”
[interviewmagazine.com]

 
위 인터뷰를 읽으니 어쩐지 <Ghost World>(2001)시모어가 떠오른다. 앞에서 소개한 스티브 부세미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기본적으로 우울한 스티브 부세미의 얼굴이, 다른 작품에서 주로 웃음을 자아내는 데에 쓰인다면, 시모어의 경우 ‘위어드weird’한 매력을 드러내는 데에 쓰인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관객들은 시모어에게 빠져들게 된다. 단순히 주인공 이니드에게 이입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Ghost World>(2001)


목과 어깨는 구부정하고, 바지는 애매하게 올려 입고, 이마에는 항상 초조한 주름을 만들어 놓는다. 툭 튀어나온 커다랗고 퀭한 눈, 고르지 않은 이, 웃지 않으면 더 아프거나 메말라 보이는 얼굴은, 날카로움이 섞인 독특한 목소리와 만나 불안하고 예민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그 분위기가, 웃기지 않고도 얼마든지 매력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 <Ghost World>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그는 여전히 없어 보이고 우습다. 하지만 중간중간 입이 웃음기 없이 벌어지는 포인트가 있다.


시모어는 전혀 보편적으로 ‘멋진’ 남자는 아니다. 허리에 지지대를 차고 있을 정도로 '젊지 않'고, 미디어에서 선호하는 종류의 외모를 갖고 있지도 않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다. 시모어에게는 사무직으로 일하는 ‘생계’와, 레코드판과 옛 포스터들을 모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삶’이 있다. 사실, 대단하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으나, 누군가에겐 로맨틱하게 ‘먹힐’ 가능성이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허나 자신감이라고는 없다. 취향,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프라이드는 있지만, 그것들의 가치를 알고 모으는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는 없다. 말을 걸기도 전에 ‘저 사람은 내게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파티에는 질색하고, 바에서 이니드가 겨우 이어 준 상대에게는 블루스 너드임을 드러내는 말을 지루하게 늘어놓는다. 자존심이 바닥을 치면 가끔 폭발하기도 하지만, 약하고 어설퍼 위협보다는 웃음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시모어의 매력포인트다. 나름 멋진 사람이면서 그 점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상대를 대할 때 더 조심스러워하는. 이니드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한 호의로 대하고, 의도와는 달리 그녀가 자신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시모어의 예민함은 자신이 아끼는 것들과 관련되었을 때 특히 두드러진다. 이니드가 레코드를 떨어트린 척 장난친 순간의 심각하게 놀란 표정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데 실패한 초조한 웃음, 스티브 부세미는 그 미묘한 포인트를 잘 짚어내 표현한다. 이니드가 덩달아 놀라며, 빠져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관객이 끌려드는 포인트도 바로 거기서부터다.


시모어를 연기하는 스티브 부세미는, 멋있어 보이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특이한 멋짐에 도달한다. 최선을 다해- 아니 최선을 다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예민해지고 스스로를 없어 보이도록 만들고 때로는 ‘크리피creepy’해짐으로써, 취향이 맞는 사람에게만 먹히는, 그래서 더 깊은 매력을 드러낸다.




스티브 부세미의 필모그래피에는 주연보다 조연으로 분류된 작품이 두 배 이상 더 많지만, 분량과 상관없이 등장할 때마다 확실한 인상을 남긴다. 그의 이토록 넘치는 개성은 뚜렷하게 깊고도, 범위마저 넓다. 스티브 부세미는 <몬스터 주식회사>(2001)의 어설픈 악당 랜달의 것을 비롯해, <몬스터 호텔> 시리즈, <보스 베이비>(2017) 등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다. 음색 자체도 독특하지만, 그가 목소리를 어떻게 쓰는지 잘 아는 배우라는 뜻도 된다. (나는 ‘이 사람은 목소리를 쓸 줄 안다’는 게 들리는 순간 그 배우가 더 좋아지더라.)


TV로 넘어가면, <보드워크 엠파이어>(미국 HBO) 시리즈에서 에녹 너키 톰슨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여전히 우울하고 예민하게 웃기며 이제까지 없던 종류의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가장 최신작 <미라클 워커>(미국 TBS)에서는 무려 신!을 연기하기도 했다. 짧은 영상 클립만 봐도 벌써 스티브 부세미답게 웃기다.


<미라클 워커>(TBS)


언제까지고 그 모습일 것이라는 기대와, 그럼에도 항상 색달라 질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동시에 주는 배우. 스티브 부세미는, 3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스티브 부세미스럽고, 여전히 전성기에 있다.

 

+
스티브 부세미는 감독이기도 하다. 각본과 감독, 주연을 모두 맡은 <트리스 라운지>(1996)를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왔다. 아쉽게도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감독 스티브 부세미’에 대한 글을 따로 써 볼 수도 있겠다.

“나 자신을 위해 좋은 배역을 썼고, 그걸 연기하는 게 즐거웠다- 이제까지 했던 역할 중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테이크를 더 갈지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이 나여서 좋았다.”
[interviewmagazine.com]


* 참고 인터뷰:


https://www.interviewmagazine.com/film/steve-buscemi-new-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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