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배웁니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제모름 Sep 08. 2019

두 얼굴의 아담 (2)

Adam with Noah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 with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

-영화:
<프란시스 (Frances Ha)>(2012)
<  (While We Are Young)>(2014)

*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  >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리지 스토리>(2019) 포스터.


아담 드라이버가 꾸준히 함께 작업하는 감독이 짐 자무쉬 만은 아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드는, 재치 넘치는 스토리텔러 노아 바움백, 그의 작품 둘에서 아담 드라이버는 짐 자무쉬 월드에서처럼, 비슷한 듯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먼저 <프란시스 하>(2012)의 레브는, 주인공 프란시스와는 상황과 성격이 아주 다른 인물이다. 프란시스는 말한다, “He lives so easily.” 그가 쉽게 쉽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부모의 돈 때문이다. 자기 자신, 취향이나 스타일, 멋져 보이는 데에만 집중해도 삶에 지장이 없기에, 느긋하고 여유로우며, 자기중심적이다. 상대를 신경 쓰는 듯 보이지만, 대화 주제를 모두 자신, 혹은 자신의 관심사로 이끈다. 그렇다고 또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건 아니다. 소위 ‘선수’의 방식을 취하지만, 레브의 것이기에 알면서도 빠져들게 된다. 과장되고 느끼한 대신 담백하고 쿨하다.


<프란시스 하>(2012)


[그는 영화 속에 적지 않은 횟수로 등장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은 상당히 뜬금없고 짧았다. 레브는 자신의 집에서 열린 술자리가 끝난 후, 몇 시간 전만 해도 유혹의 대상이었던 프란시스에게, ‘더 있다 가라’거나 ‘데려다주겠다’는 말을 하는 대신 너무도 당연하고 단호하게 나가는 길을 알려준다. 아 그 무심함이라니. 무심한데 또 가끔 보여주는 당연한 로맨틱. 몸에 밴 당연한 잘난척. 모든 말과 행동을 당연하게 해서, 상대방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너 방에서 담배 펴?” 라는 프란시스의 물음에, 사과하는 대신 “너도 필래?” 하고 묻는다. 그 당연하고 무심한 태도가 바로 재수 없는 레브에게 빠져드는 포인트다.


대놓고 재수 없으라고 만든 캐릭터인데 맡은 배우가 너무 잘 소화해서 어쩔 수 없이 멋있어 보이는 경우, 라고 해야 할까. 진중한 눈빛 때문이었을까,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 때문이었을까. 그의 얼굴은 레브 같이 빤히 보이는 캐릭터를 맡아도 뭔가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레브는 그냥 바람둥이 힙스터가 아니라 아담 드라이버만의 바람둥이 힙스터다.] (본인의 글에서 인용) 결과적으로 레브의 ‘작업’은, 프란시스 대신 나와 같은 몇 관객에게 먹혔다.



<위 아 영>(2014)


노아 바움백의 다음 작품에서 아담 드라이버는, 레브에서 좀 더 확장된 듯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위 아 영>(2014)의 제이미는 레브와 달리 주인공의 상황 뿐 아니라 심리와 행동에, 전체 스토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비중도 크다. 굳이 대입하자면 빌런이겠으나, 이 이야기 속 세계에는 애초에 착한 놈과 나쁜 놈이 없다. 현실적이고 평범한, 운 나쁜 놈과 운 좋은 놈, 찌질한 놈과 치사한 놈이 있을 뿐이다. 레브가 그냥 아무 생각 없는 부잣집 힙스터 나르시스트라면, 제이미는 보다 의뭉스러운, 옷을 한 겹 더 입고 있는 존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자기 입맛대로 사람들을 이용해 먹는다. 교묘한 계획보다 앞서는 것은, 성공에 대한 타고난 감이다. 레브에게 돈이 있다면, 제이미에겐 감이 있다.


<위 아 영>(2014)


제이미는 힙스터 중에서도 눈에 띈다. 빈티지 패션과 LP판 콜렉션은 기본이다. 일부러 삐딱하게 앉거나, 이상하게 몸을 꼬거나, 손목을 꺾은 채 맥주 캔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우아하게 든다. 허그도 그냥 하지 않는다. 한바퀴 회전 후 대각선으로 껴안는다. 조쉬를 요쉬, 조‘쉬’로 부르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모든 말과 행동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미세한 농도로 연극적이다. 마치 개성을 연기하는 것 같다.


뭘 해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태도는, 그를 멋진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그 페이스에 말려들도록 한다. 그리하여 조쉬는 식당에서 당연하게 돈을 내고, 딱히 정중한 부탁을 받지 않고도 필름 작업을 도와주는 등, 결국 당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돈과 시간과 마음을 다 바친다.


아담 드라이버는, 콩깍지 쓴 조쉬는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관객은 쌔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미묘한 포인트에 표정을 조절한다. 레슬리의 단골 카페에서 허그 하는 순간, 펀드 메니저와 미팅하러 가는 조쉬를 격려해 주고 돌아서는 순간, 약에 취해 고백하는 조쉬를 내려다보며 카메라로 찍는 순간, 시사회에 도착한 조쉬를 슬쩍 보고 몸을 숨기는 순간 -눈에 힘을 빼고 세상 다 가소롭다는 듯한 분위기가 알 듯 말 듯 하게 묻어나는, 혹은 긴장한 눈으로 눈치를 보며 본심을 숨기는 무표정.


<위 아 영>(2014)


마침내 코넬리아에게 ‘정체를 드러낼’ 때도 ‘정체를 드러내는’ 것 같지 않다. 그냥 굳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제사 드러내듯 자연스럽다. 눈웃음과 한쪽 입을 올려 짓는 미소를 걷어내자 본모습이 보인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무것도 아닌 듯 협박한다.


이후 조쉬와 대면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큰 키를 이용해 몸을 반의 반 정도 틀어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며, 순수한! 표정을 짓는다. 슬슬 뒷걸음질 치면서도 여유로움을 유지하고, 고개와 입을 약간 갸웃거리며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상대를 응시한다. 조쉬의 강요에 진실을 에둘러 고백할 때도, 죄책감이라곤 한 개도 없이 천연덕스러워, 뻔뻔한 것인지조차 헷갈린다. 정말로 본인이 죄가 없다고 믿는 사람의 얼굴로, 차분하게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눈치를 보며 끼어들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해, 조쉬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신기하게도 그 와중 조쉬에 대한 진심 어린 우정이 느껴진다.


<위 아 영>(2014)


그 기빨리는 당당함 때문에 제이미는 타인을 이용해 자신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문제되지 않을 정도의’ 조작을 하고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주목 받는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재능이나 노력이나 운 같은 것들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아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는구나, 하고 납득하게 된다. 조쉬는 ‘그냥 젊은 거’, 라고 하고, 제이미 같은 인간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의 ‘재능’은 흔하지 않다. 다비는 말한다, “Jamie’s love with Jamie. 제이미가 사랑하는 건 제이미에요.” 본투비 나르시스트,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면서 그걸 자연스레 쿨한 개성으로 포장할 수 있는 인간. 타고난 배우이며, 어찌 보면 다큐멘터리를 찍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다.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더 소름 돋기도 하고, 김이 빠지기도 한다.



아담 드라이버의 큰 키와 길쭉한 얼굴, 굵은 목소리는, 섬세하고 어색한 패터슨이나 여유롭고 차가운 로니의 것이었다가, 표정이나 제스처, 말투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능숙하고 능글맞은 레브, 거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제이미의 것이 된다. 아주 다른 종류의 인간형이다. 두 감독이 그의 얼굴에서 서로 다른 모습의 캐릭터를 찾아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순서를 따지면 레브나 제이미가 먼저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연기 경력이 쌓이면서 생긴 분위기의 변화 라기 보다는, 이 배우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블랙클랜스맨>(2018)


그리고 아주 다르지만, 패터슨이나 로니, 레브나 제이미, 그리고 <블랙클랜스맨>(2018)의 플립까지, 이들에게는 얼굴에 큰 감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틱한 표정은 없는, 그렇기 때문에 더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캐릭터를, 아담 드라이버는 자신만의 얼굴로 소화해낸다.

그리하여 그는 내 기준 가장 ‘믿고 보는’, 배우 중 하나가 됐다. 연기도 믿을 수 있지만, 이 사람의 전작들로 보아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배우. ‘괜찮은 작품’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나, 적어도 ‘감정이 과잉되거나 클리셰로 가득 찬’, 이야기는 그와 거리가 멀다.


노아 바움백의 신작이 기대되는 가장 큰 까닭은, 아담 드라이버가 드디어 (왕재수 힙스터에서 탈출해) 아예 중심 화자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짐 자무쉬,는 작업했던 배우들과 인연을 이어나가는 감독이니, 아마 차기작에도 아담 드라이버를 캐스팅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는 어떤 얼굴로 짐 자무쉬의 꾸준한 속마음을 대변할지, 아직 제작 발표도 하지 않은 신작이 궁금하다. 내가 보는 영화에 자주 보이던 아담 드라이버는, 어느새 내가 볼 영화를 선택하는 까닭 중 하나가 됐다.


<메리지 스토리>(2019) 스틸컷.




매거진의 이전글 두 얼굴의 아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