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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Sep 24. 2019

나오토의 리듬

아야노 고 (2)



-영화: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요노스케 이야기>(2013)
<분노>(2016)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내용과 전개 혹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Feat. <아인>(2017)



그가 가게 나가지 마, 라고 하자 그녀는 네가 뭔데? 라고 말했고, 그가 그녀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나눠 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삶은 그 불확실한 결심이 가져다준 희망을 조각냈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고, 안심하면 무너지는 것이 삶이며, 그것은 그 자체로 빛난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는 말하자면, 로맨스 영화다. 허나 간지러운 웃음과 로맨틱한 속삭임보다 그늘지고 날 선 마주침이 더 많다. 상처 잔뜩인 두 사람이 만나 또 서로 상처를 내기도 하는, 수다스럽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그늘의 사랑 이야기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타츠오는 얼굴보다 몸을 먼저 드러낸다. 카메라는 속옷만 입고 누운 남자의 몸을 발부터 천천히 훑는다. 여성의 몸을 성적인 뉘앙스로 훑는 클리셰가 떠오른다. 성적인 느낌이 아니기는 하나, 남성의 무방비한 몸을 찍는 카메라는 확실히 낯설다. 아마도 의도된 연출이다. 이 남성 주인공은 화자, 즉 시선의 주체로서 로맨스 대상인 여성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서 ‘바라봐지기도’ 한다는 암시 같기도 하다. 때문에 관객은 이후의 장면들에서,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도, 바깥의 시선으로 그를 관찰하게 된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피하고 있는가.


그는 잠을 자고 있다. 꿈을 꾼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눈을 뜬다. 충혈되어 있다. 온통 찌든 느낌이 풍긴다. 머리카락도 옷도 전부 대충 걸친 듯하다. 땀에 젖은 얇은 티셔츠, 멋을 위해 일부러 기른 게 아니라 면도하기 귀찮아 그냥 둔 듯한 수염. 제때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눈을 가리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슬리퍼를 신은 발을 직직 끌며 터덜터덜 밖으로 나선다. 찡그린 얼굴은 햇빛 때문이겠으나, 원래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해 보인다. 만사 귀찮은 것 같은 태도인데, 그냥 귀찮은 게 아니라 뭔가 깊고 그늘진 사연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다듬지 않은 외모가 그 느낌과 만나 특유의 스타일과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첫 장면처럼, 카메라는 타츠오의 몸을 자주 클로즈업한다. 파친코에서 화면을 보는 어둡고 멍하게 아름다운 눈, 무기력이 잔뜩 묻어나는 다리, 치나츠의 집에 처음 들어서기 전 망설이는 마른 발,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술잔을 드는 담백한 손동작. 신체 각 부분이 모여 이루는 실루엣에는 상태와 고민이 담겨있다. 일상적인 동작들은, 일상이 된 고통을 드러낸다. 바닥에 누워 무언가를 피하려는 듯 잔뜩 웅크린,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는 :뒷모습. 치나츠를 바라보다 오래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멍하게 허공을 보며 앉아있는 :앞모습. 대사가 적은 만큼 몸 연기를 눈여겨보게 된다.

 

허나 적은 수의 대사를 뱉는 나직한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역시 본래보다 약간 낮은 편인가 싶지만, 모로보시의 것처럼 인위적으로 아예 다르게 힘줘 만든 것은 아니다. 평소의 부드러운 말씨에 높낮이를 줄이고 톤을 낮춰, 힘이 없고 가라앉은 느낌이 들게 한다. 덤으로 일본의 지방 억양은, 아야노 고의 세련되고 날카로운 외모와 만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타츠오는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분출하기보단, 말 없이 응시하고 안으로 눅힌다. 특정 상황에 대처하고 폭발시키는 연기 위주였던 모로보시와는 반대다. 가만히 있거나 무표정을 하고서도,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연기를 보여준다. 계속 잔잔하게 감정을 누르다가, 가끔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막히는 것 같은 얼굴을 하며 땀을 흘리기도 한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타쿠지의 집에서 뜻밖의 존재 치나츠를 엉겁결에 만난 그는, 어색해하며 깍듯하게 인사한다. 슬쩍슬쩍 훔쳐보다가 이내 시선을 내리깐다. 잔뜩 취해서 잘못 찾은 술집에서 치나츠를 다시 마주친 타츠오는 몸도 말도 잘 가누지 못하는 상태다. 놀라지도 못하고, 본인이 뭘 하는지도 잘 모른다. 묻는 말에 겨우 반사적으로 대답할 뿐이다. “이런 가게에 다녀?” “아니.” “할거야?” “얼만데?” 치나츠가 답하자, 트라우마로부터 올라온 괴로움과 술에 취한 타츠오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푸후후 하고 웃음을 뱉는다. 표면적으로는 치나츠에 대한 비웃음이지만, 사실은 자신에 대한 혐오다. 그는 뺨을 때리는 치나츠를 멍하니 바라본다. 정신 차리라는 듯 치나츠가 자꾸 뺨을 때리자, 자기 뺨을 때리고는 비틀비틀 나간다. 평소보다 둔해지고 더 무기력해져 땅으로 꺼질 것처럼 걷는다.


두 번째 예상치 못한 만남 후 술이 깬 타츠오는, 이번에는 제 발로 치나츠를 만나러 간다. 자기가 함께 가자고 해 놓고는, 묻는 말에도 짧게 대답하고 옷을 툭툭 던져놓고 혼자 바다로 들어가 버린다. 짧다고 해서 대충 한 답은 아니고, 치나츠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스타일이 그럴 뿐이란 것이, 상대를 살피는 섬세한 눈빛에서 드러난다. 타츠오가 처음 웃는 것은 바다에서 치나츠와 키스하고 나서다. 숨차게 헤엄쳐 다가간 후, 숨차게 키스하고 숨차게 웃는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새삼 깨달은 사람 같다. 생기가 생겼다. 처음 만남의 관심은 미안함으로, 미안함은 세 번째 만남과 함께 사랑으로 모습을 휙 바꿔버렸다.  



창문에 대고 에에에 하고 소리지르는 치나츠를 보고 놀란 타츠오는 멍하게 어 허허 하고 웃는다. 그러다 스스럼없고 허물없이,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소리 내 웃는다. 아야노 고는 소리 내서 웃을 때, 소리 내서 웃는다고는 썼지만, 소리를 먹으면서 웃는 편이다. 때문에 가끔, 연기가 티날 정도는 아니지만 어색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허나 이 장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최고로 자연스러웠다. 아야노 고와 타츠오가 한 사람이 되어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웃는 것 같았다. 웃다가 옆으로 엎어지며 서서히 잦아든다. 시선이 멎은 곳에 치나츠의 손이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을 살며시 그러나 힘주어 잡고, 바라보다 키스한다.


이후 여러 일들이 있고 나서, 함께하기로 결정한 두 사람이, 역시 어둡지만 축제 불빛 때문에 보랏빛에 물든 채 같은 구도로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앉아 수박을 먹다, 고맙다며 치나츠를 삼킬 듯 꽉 끌어안고 울다가, 그대로 얼굴을 올려 키스한다. 같은 방에서 찍은 이 두 장면의 모든 과정, 연출과 연기 모두 너무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자연스럽다는 말도 무색할 정도였다. 어두워 거의 실루엣만 보이는데도, 감정이 만져졌다.


타츠오는 치나츠와 있으면 달라진다. 트라우마로 가득했던 타츠오에게 다시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드러낼 수 있게 해 준 무언가가 생겼다고 할까. 치나츠와 함께하기로 한 이후 그는 더 자주 웃는다. 멍하던 시선은 한 곳을 향하고, 여전히 잔잔하지만 가라앉아 있다기 보단 아마도 원래의 모습일 차분하고 믿음직스럽고 수줍은 분위기를 풍긴다. 거리를 두고 보면,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가족을 이룬다니 하는 두 사람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허나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적으로 납득하게 된다. 이런 사랑도 있겠구나 싶다. 생각보다 관계와 감정은, 우연한 만남과 예상치 못한 상황, 그에 대한 스스로의 반응에 기반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치나츠와의 관계에 집중해서 썼으나, 타쿠지와의 케미도 흥미로웠다. 스다 마사키와 아야노 고는 가장 좋아하는 일본 남성 배우 둘이다. 둘 다 연기를 되게 잘 하는데, 몸을 던져 열심히 한 결과임이 느껴지는 편이다. 헌데 이 작품에선 그 느낌이 없었다. 뭐 항상 그렇듯 열심히 했겠지만, 노력이 보일 틈도 없이 엄청시리 자연스러웠다.


타쿠지와 타츠오의 성격은 아주 다르나, 둘 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인 태도가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겹칠 일 없었던 이들의 인생이 라이터 하나로 얽혀들었다. 상대의 무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며, 걸어가도 될 것을 굳이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비틀거리며 속도 맞춰 가는 타쿠지, 굳이 또 뒤에 안 타고 대답도 안 하면서 오라니까 따라가는 타츠오. 스다 마사키의 어리버리하고 속없는 연기와, 아야노 고의 무기력하고 귀찮아 하는 연기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장면으로 각자의 캐릭터를 설명해내는 동시에 서로의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보면 웃음만 나오던 두 사람의 케미는, 마지막 만남에서 기어이 눈물샘을 터트린다. 일을 저지르고 집 문 앞에 널브러져 앉아있는 타쿠지를, 타츠오는 때린다. 작정하고 패는 게 아니다. 속상함을 못 이겨 마구 손바닥을 갖다댄다. 그러다 타쿠지 위로 쓰러지며 보듬어 안는다. 치나츠를 안을 때가 떠오른다. 평소에 주로 가만히 있던 타츠오는 그렇게 갑자기, 무너지듯 안거나 안기며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차가워 보이지만 속은 엄청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줄거리만 보면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해 있는 식상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허나 그 속의 삶들, 치나츠와 타츠오와 타쿠지의 생활은 식상하지 않다. 그늘의 사람들인 그들은 서로에게 타는 햇빛을 가리는 그늘이 된다. 그것을 느끼게 해 준 것은 연기다. 자잘하고 복잡하고 잔잔하고 어둡고 처절한 감정을, 세 배우가 너무 잘 숨기고, 은근히 드러내줘서, 그게 또 가만히 관찰하는 것 같은 연출과 완벽하게 어울려서, 자꾸 찾게 되는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타츠오와 타쿠지의 초반 케미에서, 카토와 요노스케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격과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면이 있어서다. <요노스케 이야기>(2013)는 제목 그대로 요노스케에 대한 이야기다. 아야노 고의 카토는 딱히 시선을 끄는 인물은 아니다. 요노스케가 돋보여야만 하는 작품이라서, 그렇게 연기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중심이 쏠리도록 어색하지도 튀지도 않게 연기하는 건, 연기를 잘 하는 배우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몇 장면 나오지도 않는 카토의 매력을 드러내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게 만든다.


<요노스케 이야기>(2013)


카토는 모든 걸 귀찮아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적당히 능숙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며, 거리를 둔다. 미팅에 나가 상대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편한 자세로 밥만 먹는다. 허나 요노스케를 대할 때는 다르다. 건조한 예의를 벗고 솔직하게 막 대한다. 첫 만남부터 그렇다. 뜬금없이 고민을 늘어놓는 요노스케에게 귀찮은 듯 대충 답하지만, 흥미로워하는 시선을 숨기고 있다. 왠지 결벽증이라도 있을 것 같았던 첫인상과 달리, 카토는 사실 그렇게 차갑거나 까다로운 인간은 아니다. 요노스케가 자기 집에서 계속 지내도 신경 쓰지 않고, 수박도 엄청 크게 잘라 먹는다. 요노스케가 틀어 놓은 비디오 때문에, 전혀 신나 하지 않으면서 삼바 리듬을 타며 수박을 자르는 카토의 뒷모습에선 묘한 매력이 흐른다.


카토는 차갑다기보단 세상 쿨한 인간이다. 커밍아웃도 쿨하게 한다. ‘산책’을 따라 나온 요노스케를 떼어 놓기 힘들겠다는 판단을 한 그는 ‘나는 남자가 더 좋고, 여기는 그런 공원’ 이라고 털어놓는다. 별로 주저하지 않고,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한다. 나한테 고백하는 거냐고 묻는 어리버리한 요노스케와, 너 내 타입 아니라고 질색하는 카토의 모습은, 잠시도 웃음을 놓고 긴장할 수 없게 만든다. 허나 덧붙이는 문장들이 좀 아프다. “불편하면 이제 안 와도 돼.” “넌 아무렇지도 않아?” 익숙하고 담담하다. 상처가 쌓여 무뎌진 결과 같다. 다녀오라는 눈치 없는 요노스케의 말에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스윽 옆에 와 앉는다. ‘아무렇지 않아’하는 요노스케에게 딱히 감동 받지도 않고(전혀 감동 받을 건 없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좀 가라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냥 평소처럼 툭툭 뱉는 말투로 대화하고, 요노스케를 한심해하면서도 재밌어한다. 쿨한 카토는 어설픈 요노스케와 무지무지한 케미를 이룬다. 요노스케에 대한 기억들 중 카토의 에피소드가 유독 짧게 느껴져 아쉬운 까닭이다.


<요노스케 이야기>(2013)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특히, 감독의 요구인지 배우의 연기 탓인지 모르게, 게이 캐릭터 클리셰가 굉장히 강할 때가 많다. 심지어 <분노>(2016)의 유마조차 초반에 그런 뉘앙스가 살짝 있었다. 그 클리셰를 피해야 한다는 게 또 다른 편견일 수도 있지만 -카토도, 이제 설명할 나오토도, 연출과 연기 면에서 모두 클리셰 없이 그냥 한 개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츠마부키 사토시의 유마는, 나오토와 있을 때 클리세가 싹 사라지고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이 드러난다.


<분노>는 거의 내내 감정이 꽉 차 있는 영화다. 허나 세 용의자들은 예외다. 이들 중 누가 범인 인지를 밝히는 것이 작품의 주제는 아니지만, 자칫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감정의 도가니 속에서 관객의 긴장감을 끝까지 붙들어 주는 것 중 하나가, ‘누가 범인일까’ 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 사이에 녹아든 이들을 연기하는 세 배우의 연기와 분위기가 중요한 까닭이다. 관객이 매력을 느껴 정들게 만드는 동시에, 카메라와 거리를 두어 다른 인물들과 이질감이 들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야노 고의 역할은, 유마의 삶에 갑자기 들어온 나오토다. 나오토는 항상 천천히 움직인다. 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느리고 느긋하고 힘없고 피곤한 동작, 나직하고 때론 아이 같으면서도 인생에 통달한 듯 한 말투, 멍하다 가끔 날카로워지는 눈은, 낯설고 독특한 나오토만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누구든 꼭 직접 봐줬으면 해서, 자세히는 묘사하지 않겠다.)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야노 고가 <분노> 홍보차 한 토크쇼에 나갔을 때, 진행자들은 두 사람이 촬영 당시 동거했던 사실을 웃음요소로 써먹으려고 했다. ‘다 큰 남자 둘이 동거라니 으으’ 하는 뉘앙스로. 하지만 두 배우는 말려들지 않고, 같이 살았던 까닭과 경험을 진지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나오토가 사라지던 장면을 찍기 전날 밤, 아야노 고가 정말 편의점 간다고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영화 장면이 떠오르며 다시 속이 이상해졌다. 두 배우가 민감한 감수성을 유지하며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작품에 참여했음을 새삼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였다. 그 결과물은 굉장했다. 극장에서만 세 번인가 봤는데, 다소 과잉된 감정이 점점 부담스럽게 다가왔으나, 나오토와 유마 부분 만큼은 처음 느낌 그대로 좋았다. ‘도시락 균형 잡기’, ‘묘지에 들어올래’를 비롯한 모든 장면을 사랑한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유마와 함께 운다.


<분노>(2016) 예고편.





아야노 고는 모델로 커리어를 시작해, 독립영화 주연이나 상업영화/드라마 조연으로 꾸준히 연기를 하다, 서른이 넘어 비로소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 삶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스크린에서 만큼은 자기 이미지나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 감독의 요구에 맞추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은, 되게 성실한 배우랄까. 그래서 감독과 캐릭터에 따라 연기 스타일이 갈린다는 생각이다. 털어놓자면 그가 출연한 작품 중에 보다 끈 것이 꽤 된다. 작품 자체가 맞지 않아 끈 경우도 있는데, <아인>(2017)의 경우는 아야노 고의 연기를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물론 이 문장도 이후의 문장들도 개인적인 감상이다.) 일부러 엄청 내리깐 목소리로 작위적인 대사를 작위적인 톤으로 치는데, 견딜 수가 없어 십분 만에 포기 했고, 영화가 괜찮은가 여부도 알 수 없어졌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연기가 이 톤이라면 내 취향은 절대 아니겠다는 것 정도. 아야노 고 연기에 감탄하는 반응들도 꽤 있던데,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반대로 혹시 아야노 고가 연기를 못 하는 것 아니냐거나, ‘전형적 남성성’을 강조한 캐릭터가 안 어울리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던져진다면, 그에도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전에 그가 어떤 작품에서 어떤 멋진 연기를 보여줬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타고난 연기 천재는 아니지만 노력으로 다 해내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더 대단한 배우라고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팬 입장에서는(나는 또 팬심으로 참고 보는 인간은 못 돼서), 감독이 어떻게 시켰으면 이 훌륭한 배우가 연기를 이렇게 하냐, 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서의 아담 드라이버와 비슷한 경우 같다.)


<프랑켄슈타인의 사랑>(2017, CH W)


사족을 달자면,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기는 하나, 아야노 고의 연기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최근까지도 하지 않았었다. 처음 좋아하게 됐던 시기에, 연기에 감탄하기보다는 매력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연기도 열심히 하면서 방송에도 많이 나가는 편이다. 어느 정도는 이미지 메이킹이겠지만, 스크린에서의 모습과 달리 정이 많고 허물없고 사차원적으로 웃기는데 능숙하기보단 순수하고 겸손하고 수줍은 느낌을 줘서  빠져들게 됐었다. 안도 사쿠라가, ‘아야노 고는, (무게 잡고)아야노  입니다. 하는 사람일  알았는데 사실 꺄하하한 사람이라고 반쯤 농담으로 말한 인터뷰가 있는데,  표현이  맞는  같다. (안타깝게도  영상과 <분노> 토크쇼 영상을 해석해 올려 주신 분의 유튜브 계정이 없어져 출처를 밝힐  없게 되었다.)

아야노 고의 다음 작품을, 기대  불안 반으로 기다린다. 개인적으로는 <그곳에서만 빛난다> 미보 감독이나 <분노> 이상일 감독과 작업을 이어가 줬으면 싶지만, 내가 보지 않을 작품에 자꾸 출연한다 해도, 배우 아야노 고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을  같다.    


<립반윙클의 신부>(2016) 아야노 고한테 빠지는 데 한시간이나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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