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화

영화는 여전히 살아있다

<141호> 편집위원 동심

by 연세편집위원회

Day 0


취미가 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영화 보는 것이라고 답하고는 한다. ‘씨네필’이냐 묻는 말엔 그 정도는 아니고 ‘가짜씨네필’이라고 말한다. 내 기준 씨네필이란, 매일 어려운 예술 영화를 보고 그보다 더 어려운 감상평을 남기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매년 영화를 보려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떠나곤 했다. 큰 영화제에 가본 적 없던 나는 조금 더 ‘진짜’ 씨네필에 도전해 볼 겸, 30주년을 맞이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짧게나마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씨네필이 되는 길은 어려웠다. 일단 부국제의 예매 시스템은 꽤 복잡하다. 개막식·폐막식, 오픈 시네마, 미드나잇 패션, 액터스 하우스, 커뮤니티비프 상영작은 9월 5일에 예매가 시작되고, 나머지 일반 상영작과 마스터, 씨네 클래스는 4일 뒤 9일에 예매가 시작된다. 또한, 일반 상영작을 예매할 때 사용 가능한 모바일 예매권은 9월 2일부터 한정 판매된다. 부국제의 피 튀기는 티켓팅 경쟁은 이 예매권 구매부터 시작된다. 일반결제도 가능하지만 예매권으로 예매하면 더 빠르게 좌석을 결제할 수 있어 일반 상영작 티켓팅 때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매권 판매 당일 부국제 예매 사이트에는 전국의 모든 씨네필, 씨네필 지망생, 그냥 영화배우 팬까지 모두가 몰렸다. 결국 난 예매권을 한 장밖에 구하지 못한 채로 일반 상영작을 예매하는 본 게임에 들어갔지만, 수십 번의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끝에 성공한 영화는 <부고니아> 하나뿐이었다. 그렇지만 좌절은 아직 이르다! 부국제에 방문하기 직전까지 SNS 혹은 영화 동아리 오픈채팅방에서 양도 표를 구했고, 그렇게 힘들게 구한 영화표 다섯 장을 들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국제에서 본 영화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 전 알아둘 것이 있다. SNS 상에서 ‘영화제 리뷰를 믿지 마세요’라는 말은 유명하다. 영화 하나 보려고 일정을 조정하고 이동과 숙박에 비용을 지출한 이들은 이 비효율적인 투자를 외면하기 위해 조금만 괜찮아도 ‘걸작’을 남발하고, 조금만 좋지 않아도 ‘망작’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출발해 이틀 동안 네 개의 영화를 본 나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진 않다. 그러므로 나의 개인적인 부국제 후기는 아주 편향적이고 과장되었으니 너무 신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모든 영화는 직접 보고 판단하길!


Day 1


9월 19일 새벽 5시 27분,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오로지 부국제에서 아침 9시 영화를 보겠다는 열망 하나로 말이다.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부산 센텀시티에 있는 동서대학교 신한카드홀 소향씨어터로 향했다. 서둘렀지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미 상영 중일 때 지연 입장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3부작 형식으로 각 부는 모두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1부 ‘파더’는 미국 북동부의 아빠와 아들딸, 2부 ‘마더’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엄마와 두 자매, 3부 ‘시스터 브라더’는 프랑스 파리의 쌍둥이 남매의 이야기이다. 영화 속 3개의 부는 모두 별개의 가족을 다루고 있지만, 각 부마다 물, 스케이트보드, 영국식 농담 등 같은 소재들이 다르게 사용되면서 유기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1~2부에서 영화는 오랜만에 만난 부모와 자녀 간의 어색한 관계를 보여준다. 일상적인 장면 속 가족 간의 대사 속에서 그들의 은근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3부는 3부작 중에 가장 좋았는데,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쌍둥이 남매의 이야기이다. 남겨진 이들이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는 방식을 3부에서는 담담하게 풀어낸다.


영화는 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으나, 그 정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영화 내내 영화관의 다른 ‘씨네필’들이 유머러스한 장면들을 보고 웃을 때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 못 한 건가? 라는 의문이 들 만큼 말이다. 영화가 끝난 후 나오는 길, 한 여자가 친구를 향해 말한 ‘이게 웃겨?’ 한 마디는 2시간의 영화보다 날 더 웃게 했다… 이처럼 내가 영화관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끝난 후 우르르 관을 나올 때 사람들의 날 것의 감상이 좋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직후에 든 생각을 바로 내뱉기에 그 어느 유명한 영화 평론가들의 평론보다 더 직관적이고, 가차 없기까지 하다. 아주 재미있는 평론을 들었다는 점에서,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관람은 꽤 괜찮은 경험으로 남았다.

*이미지 설명: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포스터. 상단엔 아버지와 아들과 딸, 중간엔 어머니와 두명의 딸, 하단엔 남매의 사진이 있다.


다음 영화까지 시간이 있어, 부국제 굿즈를 사러 갔다. 엽서, 라이터, 키링, 핀 버튼 등 작은 기념용 굿즈부터 모자, 가방, 의류까지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굿즈들이 갖춰져 있었다. 또한 이번 부국제는 30주년을 맞아 의류 브랜드 아이앱 스튜디오와 콜라보하여 후드, 에코백, 티셔츠 등 다양한 종류의 굿즈를 판매하였다. 여러가지 굿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버려지는 폐스크린을 활용하여 만든 메신저백이었다. 업사이클링 제품 특성상 극장의 흔적이 있을 수 있다는 안내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부국제에서 가장 인기 많은 굿즈는 배지인데, 내가 도착했을 땐 많은 종류의 배지가 이미 품절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I♥BIFF’, ‘Unlock your cinema(이번 부국제 굿즈의 대표 슬로건이다.)’ 핀 버튼을 구매했다.

*이미지 설명: 모자, 포스터, 자석, 패치, 배지 등 다양한 굿즈들이 전시되어 있다. 'Back to cinema', 'Unlock your cinema', 'BIFF'가 굿즈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하얀색 메신저백 아래에는 '업사이클링 제품 특성상 극장의 흔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폐스크린에서 재탄생된 메신저백으로 극장의 현장감을 느껴보세요!'라는 안내문이 있다.


KakaoTalk_20250923_112215379_03.jpg
KakaoTalk_20250923_112215379_01.jpg
KakaoTalk_20250923_112215379.jpg
KakaoTalk_20250923_112215379_04.jpg


저녁에는 CGV 센텀시티에서 <부고니아>를 보았다. 영화 <부고니아>는 두 남성이 여성 CEO를 외계인이라 확신하고 납치하는 내용이다. 장준환 감독의 2003년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더 페이버릿>, <가여운 것들>의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감독을 맡았다. 원작 영화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들을 인상 깊게 보아 개인적으로 이번 부국제에서 가장 기대한 영화였다. 개인적인 감상부터 이야기하자면, 원작과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 영화였다. (혹시 원작을 아직 보지 않았다면, 어떤 스포일러도 보지 않고 영화관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지구를 지켜라!>의 핵심 스토리와 명장면은 그대로 리메이크하면서 중후반 이후로는 흥미롭게 각색되었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만의 독특한 영상미가 영화에 기괴함을 더해주었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남성 기업인과 여성 납치 공범이 <부고니아>에선 여성 기업인과 남성 납치 공범으로 성별이 바뀌며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계급의 교차성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인식되었다.

또한 원작이 주인공 ‘병구’를 통해서 지구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었다면, 20년 뒤의 <부고니아>는 기후 위기, 신자유주의 등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짚어가면서 이미 병들어버린 지구를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지구를 지켜라!>의 독특한 B급 감성 블랙코미디를 기대한 원작의 팬은 실망할 수도 있을 듯하다. (참고로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에 극장 개봉을 했는데,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 나 역시도 원작에서 보여주는 지구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들이 사라져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나 원작을 볼 땐 병구에게 이입하면서 보았지만, <부고니아>의 주인공 ‘테디’는 딱히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화 마지막 10분의 독특한 시퀀스만으로도 내겐 새벽 4시부터 부산으로 달려온 힘든 일정을 달래줄 기괴하고, 또 이상한 영화였다.

*이미지 설명: 영화 <부고니아>의 포스터. 머리카락이 없는 여성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고 꿀이 머리 위로 흐르고 있다.


첫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친애하는 x>를 보러 갔다. <친애하는 x>는 영화는 아니고 드라마인데, 11월에 TVING에서 공개될 12부작 드라마의 1~2화를 부국제에서 선공개하는 방식으로 상영되었다. 드라마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소시오패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멜로 스릴러’ 장르로 소개되곤 한다. 김유정 배우가 주연을 맡았으며, <도깨비>와 <태양의 후예> 등 히트작을 만들어낸 이응복 감독이 박소현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하였다.


이기적이고 못된 여성 캐릭터는 주인공의 ‘퇴치 대상’일 뿐이었던 예전의 한국 드라마 흐름을 생각한다면, 이른바 ‘악녀’(심지어 소시오패스다!)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드라마의 등장은 반갑다. 그러나 드라마는 결국 ‘걸크러쉬’,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선공개된 1~2화에서는 주인공 ‘백아진’이 자신을 괴롭히는 같은 반 학생 ‘심성희’에게 응징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새로운 여성 캐릭터였던 백아진과 달리, 심성희란 여성 캐릭터는 그동안 많이 봤던 평면적인 ‘악녀’ 캐릭터에 그칠 뿐이다. 시청자가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주인공보다 더 못됐으며, 주인공보다 더 멍청하다. 오로지 주인공에게 응징당하는 사이다 서사만을 위해 쓰인 전형적인 소모용 여성 캐릭터였다는 점이 아쉽다.


부국제에서 상영될 때 드라마의 시청 등급은 청소년 관람 불가였다. 아무래도 적나라한 가정폭력 장면 때문인 듯했다. 아역 배우들이 안전하게 촬영했을지 걱정될 정도로 폭력적인 수위였다. 과연 이 장면들이 정말 필요했을까? 내겐 불필요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친애하는 x>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자극적이고, 빠르고, 또 충격적인 전개로 시청자가 몰입하도록 한다. 그러나 자극적인 ‘도파민’만을 요구하는 오늘날 한국 드라마의 유행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만 재생산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되기도 하였다.

*이미지 설명: 드라마 <친애하는 x> 포스터. 창백한 여성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옆에 '지옥에서 시작된 삶이라면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게 낫지 않겠어요?'라고 적혀있다.


Day 2


원래는 둘째 날 아침 9시 30분에 <제이 켈리>를 보러 가야 했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전날 밤 취소하고 말았다. 그래서 둘째 날에는 영화 <하나코리아>만 보러 가게 되었다. 영화는 북한을 떠나 남한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여성 ‘혜선’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이한 점은 덴마크 출신의 남성 프레드릭 쇨베르가 감독을 맡았다는 것인데, <하나코리아>는 다큐멘터리나 단편 영화만을 연출하던 쇨베르의 첫 픽션 장편 영화 연출작이다. 또한 한국인에겐 봉준호 감독의 전담 영어 통역사로 익숙한 샤론 최(최성재)가 쇨베르와 함께 공동 각본을 맡기도 했다. 영화 속 ‘혜선’은 드라마 <파친코>의 주연이었던 김민하 배우가 연기했다. 평소 김민하 배우의 연기를 좋아해 꼭 보고 싶던 영화 중 하나였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걸까, 영화는 예상보다 실망스러웠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던 감독의 영화라서인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혜선’의 삶을 다큐처럼 따라간다. (혜선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 있기도 하다.) 영화를 보기 전엔 외국인 감독의 시선에서 본 탈북민 여성은 어떨지 흥미가 있었으나, 영화를 보고 나니 영화의 시선이 납작하다고 느껴졌다. 영화 속 한 명뿐인 남한의 젊은 여성 캐릭터는 대학에 가지 않아도 부모님의 돈으로 유학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수많은 남한 여성의 삶을 탈북민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혜선과 대조하기 위한 일회성 캐릭터 하나만으로 단순하게 일반화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혜선에게 친절했던 남한 사람은 중년의 남성 캐릭터만 등장하는 등 평면적인 캐릭터와 서사가 아쉬웠다.

*이미지 설명: 영화 <하나코리아> 포스터. 한 여성이 거울을 보며 립글로스를 바르고 있다.


<하나코리아>를 보면서 같은 달 보았던 영화 <3670>이 생각나기도 했다. <3670>은 탈북민 게이 남성 ‘철준’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또한 게이 커뮤니티에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나코리아>와 <3670>은 모두 사회적 소수자(여성 혹은 게이)인 탈북민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3670>은 <하나코리아>의 평면적 연출과 달리, 더욱 입체적으로 철준과 그 주변 캐릭터들을 구성해 내고 있다. 철준은 여자를 소개해 주려는 탈북민 친구들 사이에서도 쉽게 어울릴 수 없고, 남한의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형성된 무리 내에서 탈북민이란 이유로 겉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영준’은 처음 철준을 게이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었지만 정작 본인의 사랑과 일 모두에 서툴다. 영화는 철준과 영준의 미묘한 우정과 사랑을 주제로 하며, 철준을 통해 소수자의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준을 통해 서울이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교차하는 소수자성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하나코리아> 대신 <3670>을 추천하고 싶다.

*이미지 설명: 영화 <3670> 포스터. 남성 다섯명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고, 하단에 '우리 다 행복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겠니?'라고 적혀있다.


<하나코리아>를 마지막으로 나의 짧은 부국제 여행이 끝났다. 날씨와 상관없이 센텀의 분위기는 차갑고, 30주년을 맞이해 사람이 너무 많았으며, 시간에 맞춰 영화를 보러 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티켓팅해서 구한 영화가 재미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하나의 영화를 찾아가는 것이 영화제의 묘미란 생각이 든다. 뉴스에서 영화 산업은 망해간다고 하지만 영화제에 방문하니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여전히 영화관에 있었다. 결국 난 영화와 영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Day ?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부국제를 어떻게 보냈을까? 이번 부국제가 좋았던 점과, 또 고쳐야 할 점엔 무엇이 있을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는 영화는 또 어떨까? 부국제가 끝난 뒤에, 나보다 훨씬 부국제에 많이 방문했던 ‘씨네필’들을 서면으로 만났다. A는 부산에 거주하는 영화과 졸업생이고, B는 이번 부국제 봉사자이다. 먼저 A에게 관객으로서 본 이번 부국제 운영에 관해 물어보았다.



동심 이번이 몇 번째 부국제 방문인가?

A 학생 때 한 번 가고 20살부터 계속 갔으니 이번이 9번째다.


동심 부국제 굿즈를 구매하는 편?

A 마음에 드는 게 보이면 구매한다. 초반엔 마음에 드는 게 안 보이는데 영화제 기간 내내 구경하다 보면 맘에 드는 게 생겨서 결국 돈을 쓰게 된다. 올해는 시네마 와펜과 반다나를 구매했다.


동심 관객의 관점에서, 부국제가 개선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예매 사이트가 구멍가게다. 고친 것 같긴 한데 아직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리고 영화의 전당 야외 광장에 영화 관련 체험 코너를 더 늘리면 좋을 것 같다. 영화가 비는 시간에 센텀 백화점 구경하는 것은 이제 질린다. 또한, 일부 굿즈도 너무 비싸다. 있어 보이는 브랜드와 콜라보할 시간에 저럼하고 트렌디한 굿즈를 기획하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부국제와 더 친해질 수 있게!



A는 부국제의 개선점으로 예매 사이트 문제를 이야기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부국제는 약 세 번의 티켓팅(예매권/개막식 및 폐막식 등/일반예매)을 거쳐서 표를 얻어야 한다. 처음 부국제에 방문한 나도 예매 방법을 잘 몰라 여러 번 홈페이지를 읽기도 했다. 이렇게 복잡한 온라인 예매 시스템 때문에 중장년층에겐 더욱 접근이 힘들다. 당일 현장 예매도 가능하지만, 이미 온라인 예매가 진행된 뒤에 남은 표를 판매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오프라인에서 표를 사긴 어렵다. 실제로 부국제를 방문했을 때 대부분 청년층의 관객이었던 것은 단순히 청년층이 시간적인 여유가 나서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부국제의 티켓팅은 접속자 수에 비해 그만큼 사이트 서버가 버텨주지 못해서 화면이 하얘지길 부지기수다. 이렇듯 표를 구하기 힘들어 인기 많은 영화 혹은 유명 연예인들의 GV표는 온라인 상에서 원래 가격의 2배, 많게는 30배까지 비싼 값에 다시 암표로 재판매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국제 측에서는 공식 사이트에서만 티켓 구매와 환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만 내놓을 뿐 제대로 된 단속과 제지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부국제에서 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공식 트레일러에서도 난 문제의식을 느꼈다. AI 기술을 활용하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30주년 기념 공식 트레일러는 한국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 감독으로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한 전승일 감독이 연출을 맡아 제작했다. 최근 AI 기술은 점점 영화에 많이 사용되는 중이지만, 비판받기도 한다. 영화 역시 하나의 창작물이기에 AI를 사용할 때 윤리성과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25년 상반기 개봉한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아카데미 10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지만 편집 과정에서 배우들의 발음과 배경에 생성형 AI 기술이 사용된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불거졌다. AI 기술을 영화에 사용하면 시간도 단축되고 무엇보다 제작비를 아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훌륭한 영화가 사실 비용 절감을 위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우리는 똑같이 그 영화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는 단순히 2시간짜리 영상이 아니다. 그 2시간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다. 그저 쉽고 값싸다고 이를 대체해 버릴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특히나 부국제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은 원래 모형을 만들고 모형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1프레임 단위로 촬영하며 이루어진다. 전적으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기법을 AI로 대체해버리면 그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진정으로 영화와 영화인을 위한 영화제라면 AI 영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


A와 문답을 하면서 관객의 관점에서 본 부국제의 운영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직접 발로 뛰며 일했던 봉사자의 관점에서 본 부국제는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관련해서 부국제 봉사자 B가 부국제에서의 자원봉사 경험에 대해 말해 주었다.



동심 이번이 몇 번째 부국제 방문이고, 또 몇 번째 봉사인가?

B 8번째 정도 되는 것 같다. 내 인생의 1/3을 함께해왔다. 본가가 부산이고 운이 좋게도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와 아주 가까이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영화제를 즐긴 건 5년 정도 된 것 같다. 봉사는 두 번째 봉사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자원봉사자로서 활동했고 그 때의 기억이 뜻깊게 남아서 이번에도 함께하게 됐다.


동심 이번에 봉사자로 일하며 무슨 일을 했는가?

B 작년에도, 올해도 영화제 프로그램 - GV 운영팀에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원봉사 활동 분야에는 아주 많은 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영화제의 핵심이자 꽃이라 불리는 프로그램팀에 지원하게 되었다. 프로그램팀은 다양한 영화 프로그램 지원(부국제의 경우 오픈토크, 액터스 하우스 등) 혹은 GV 운영으로 나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GV 운영팀에서 활동했다. 평소에도 예술극장에서 진행하는 씨네토크, GV 같은 행사를 즐기기도 해서 흥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GV팀은 영화와 관객과 게스트, 모두와 가장 가까이 함께하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GV는 Guest Visit의 줄임말인데, 영화가 끝나고 약 30분 정도 감독 배우 등의 게스트들이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관객과 질의응답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난 전반적인 GV 운영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게스트를 응대하고, GV 타임 체킹을 하고, 모더레이터와 통역 선생님을 돕는 일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번 부국제에 처음으로 경쟁 섹션이 생겨서 레드카펫을 깔고 크게 행사를 했는데, 운이 좋게 그곳에 배치받아서 멋진 레드카펫 포토콜도 도울 수 있었다.


동심 봉사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경험은 무엇인가?

B 다양한 영화인들을 만났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영화인이란 감독, 배우와 같은 가시적인 인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영화와 영화제 이면에 얼마나 다양한 영화인들이 있는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생생하게 느끼고 온다. ‘봉사’를 하면서 뜻깊었던 경험은 GV 행사에 함께하는 모더레이터, 통역사 같은 게스트 외의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때이다. 작디작은 나의 업무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실제로 영화제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연을 이어간 경우도 있는데 정말 뜻깊고 소중한 인연이라 유독 기억에 남는다.



다음으로, A와 B 모두에게 이번 30주년 부국제에 대한 솔직한 후기를 물었다. 부국제를 8번 혹은 9번씩 방문한 이들의 가장 좋았던 영화는 무엇이고, 또 지난 부국제와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동심 가장 좋았던 영화와 가장 실망했던 영화는 어떤 것인가?

A 좋았던 영화는 <프랑켄슈타인>. 오스카 아이작의 메소드 연기가 긴 시간 동안 날 매료시킨다. 실망했던 영화는 <미아>.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영화라고 느꼈다. 극을 잡아줄 만큼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도 없어서 보는 내내 ‘뭐지…’ 싶었다.

B 자원봉사자 활동을 하느라 많은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사심을 가득 담아서 가장 좋았던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이었다. 내가 기예르모 감독의 팬이기 때문. 운 좋게 IMAX 관에서 보게 되었다. 러닝타임이 살짝 길긴 했지만 역시나 너무 재밌었고, 너무 슬펐다. 넷플릭스에 뜨면 다시 볼 것 같다. 그리고 감독님이 관객 전원에게 싸인을 해주신 덕분에 집안 가보로 남을 싸인도 받아왔다. 정말 기쁘다! 이번에 본 영화들이 다 꽤 괜찮아서 실망했던 영화는 크게 없는 것 같다. 그나마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라 기대를 너무 했던 것인지, 그렇게 인상 깊게 보진 않았다.


동심 작년에 비해 올해 부국제의 좋은 점?

A 작년에 비해 훨씬 다채로워졌다. 영화제 시작 전부터 올해만 하고 영화제 그만두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풍부한 게스트 라인업, 새로운 굿즈 등.

B 30주년을 맞이해서 어마어마한 게스트들이 부산에 왔다. ‘부국제 올해까지만 하고 망하나’라는 농담이 들릴 정도. 부국제를 경험하며 이렇게 유명 게스트들이 한번에 온 건 처음 본 것 같다. 코로나 이후로 침체된 영화제가 다시 한 번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사람들의 관심이 굉장히 뜨거워서 놀랐다.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 친구들도 이번엔 방문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상영작들도 많아졌고, GV도 많아지고 관객들도 많아졌다. 부산국제영화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엔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 영화제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지 않고 순항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또 영화제에 쏠리는 이런 관심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부국제는 이전보다 훨씬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부국제 공식 자료에 의하면 올해 상영작은 총 328편이었으며, 커뮤니티 비프와 동네방네 비프(야외 행사)를 제외한 영화제에 약 16만 2천 명의 관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2024년과 2023년의 부국제 상영작 수가 약 270편, 영화제 관객 수가 약 14만 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부국제는 전체적으로 규모가 상당히 커진 것이다.

또한 B의 말대로 우리나라엔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많다. 영화제들은 주로 정부 예산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데, 예산안이 연말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확정되면 영화 발전 기금을 운영하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국내 개최 영화제를 심사한 뒤 구체적인 지원 액수를 정하게 되는 식이다. 그러나 매년 60억 원이던 영화제 지원 예산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엔 반 토막 수준인 28억 원으로 삭감되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지역 영화제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독립영화제의 경우, 지난해 9월 영화 발전 기금 예산안에서 지원금이 전액 삭감되어 존속 위기에 처해 영화계의 큰 반발이 일기도 했다. 다행히도 지난 7월 추가경정예산에서 예산이 지원되면서 서울독립영화제는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새 정부에서 내년 영화제 예산으로 48억 원을 편성하며 삭감된 영화제 예산이 일부 복구되었지만, 여전히 매년 예산 편성에 따라 수많은 중소 영화제는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제만 위기인 것은 아니다. 영화관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연도별 관객 수 추이를 보면, 2019년 약 2억 3,000만 명이었던 관객 수는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과 2021년에 약 6천만 명대로 대폭 감소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관객 수는 다시 점차 증가했지만, 2024년 기준으로 여전히 1억 2천만 명대에 그친다. 관객 수 감소에 대해선 비싼 영화 값과 OTT 서비스를 이유로 들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감소한 영화 산업과 달리, 넷플릭스 등 여러 OTT 서비스는 그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해 왔다. 오늘날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유료 OTT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필수적인 문화생활 요소이다. 한 달에 만 원 정도면 원하는 만큼 영화와 드라마를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는 OTT 서비스만의 강력한 장점 때문에 더더욱 영화관은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그래서일까, 영화관 티켓 가격은 지난 몇 년간 급속도로 상승해 왔고 이젠 주말 일반관 영화 티켓이 15,000원에 달하는 수준이 되었다. 대표적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한 달 요금이 7,000원~17,000원인 것을 고려하면, 영화관 관객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OTT 서비스의 발달과 관객의 감소, 그리고 영화 값의 상승은 계속되는 악순환이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 7월과 9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정가 대비 6천 원이 할인되는 ‘국민 영화 관람 할인권’을 선착순으로 지급했다. 1차 배포인 7월에는 총 450만 장을 배포하고, 9월에는 1차 배포 때 사용되지 않은 188만 장을 배포했다. 1차 배포 때 전국 일평균 관객 수는 약 43만 명으로 할인권 배포 전 올해 상반기보다 약 1.8배 상승했다. 개봉과 할인권 배포 시기가 겹쳤던 영화 <좀비딸>과 <어쩔수가없다>는 사전 예매량이 30만 장을 넘어서며 올해 한국 영화의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미지 설명: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배포한 홍보 포스터. '2025 새정부 추경예산 정부지원 국민 영화관람 할인권 / 극장아, 여름을 부탁해 / 영화관람료 6천원 할인 / 할인으로 더 시원해지는 한여름의 영화 바캉스, 국민 여러분과 함께합니다'라고 쓰여있다.


여기까지가 형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사실 영화관의 관객 수를 늘리는 법은 간단하다. 재밌는 영화를 만들면 된다. 비싸진 영화 값에도 불구하고 그 돈이 아깝지 않도록 OTT에선 느낄 수 없는 영화관만의 감동을 보여주면 된다. 영화가 있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영화관이 텅텅 비어가는 것은 내게 너무 슬픈 일이다. 어느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의 힘은 영화관에 있다. 영화관의 영화 티켓은 단순히 영화를 사는 것이 아니다. 두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백 명의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보는 그 시간과 공간을 사는 것이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면서는 그 공간 속의 다양한 관객들과 함께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리거나 또 동시에 깔깔 웃는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나서 다 같이 욕하며 관을 나오는 경험까지도 말이다. 나는 여전히 그 시간과 공간이 가치 있다고 믿고, 또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영화가 그 자체로 영화관의 존재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 누가 영화관에 가는 것을 망설일 수 있을까.



동심 마지막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달라.

A 영화가 좋냐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자주 하는데, 아직도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를 싫어하면 5일 연달아 영화제에 가는 짓을 누가 할까… 평소에도 꽂히는 영화가 생기면 내가 개봉 첫날 제일 먼저 봐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 중독이다. 좋은 영화는 약 2시간 동안 현실에서의 걱정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안 좋은 영화는 헛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영화는 나에게 뭐라도 준다. 아무래도 아낌없이 주는 영화를 끊는다는 건 정말 힘들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선택도 해봤는데 영화에는 관객으로 참여하는 게 최고라는 교훈도 얻었다. 물론 영화제작에 함께함으로써 오는 희열도 분명히 있다. 영화는 살아갈 힘을 준다. 끝내주는 영화를 만나면 쉬지 않고 영화에 대해 떠들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떠들어야 하기에 살아야 하고 두 번 세 번 보면서 새로운 장면을 찾아내기 위해 살아야 한다.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이유냐고 하겠지만 그런 힘을 주는 영화를 나는 정말 정말 좋아한다.

B 영화는 우리 삶과 아주 맞닿아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님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지만, 잠시나마 다른 이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가 사랑하고 아파하고 느끼는 방식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데 있다.



많은 영화인이 영화가 죽어간다고 말한다. 영화제의 존속은 늘 불투명하고, 독립 영화관들은 문을 닫고 있으며, 이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않으니 천만 영화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2시간짜리 영화는 20분짜리 유튜브 영화 요약 영상에 밀려나고 있다. 정말 영화는 이렇게 멈춰버리는 것일까? 영화제도, 영화관도, 영화도 이제는 죽어갈 뿐일까? 글쎄, 영화의 종말을 말하긴 아직 이르다. 이번 가을 나는 여러 영화를 만났다. 그중에서는 좋은 영화도 있었고, 나쁜 영화도 있었으며, 이상한 영화 역시 있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각각의 영화들은 나름의 인상을 남겼다. 그럼에도 가장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제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영화의 힘을 느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전에도, 보고 나서도 끝없이 영화 얘기를 했다. 그 영화가 5점 만점 영화건 0.5점도 주기 아까운 영화건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영화를 말했다. 그렇게 영화는 러닝타임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영화를 기억하고 말한다면 영화는 계속된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일 테다. 영화와 사람이 만날 때, 영화는 여전히 살아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와 말과 사람과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