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블비>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찰리들의 가능성을 모른 체 해왔는가.

by 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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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모습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은신하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거대한 로봇으로 변하는 영화. 몇 편의 시리즈로 세상에 남은 <트랜스포머>는 유명 배우 샤이아 라보프를 스타의 자리에 눌러 앉힌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결국 오토봇일 수밖에 없다. 흔히 웅장하고 장엄한 목소리로 오토봇을 전두 지휘하는 옵티머스 프라임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으나, 결국 시리즈에서 앳된 소년과 처음 만난 오토봇은 노랗고 때탄 카마로였다. 우리는 그 작은 오토봇을 '범블비'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트랜스포머의 리부트작이며, 범블비의 과거를 그려낸 이 작품은 명성을 잃은 시리즈물의 나름대로 용감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라는 작품의 이름을 들으면 흔히 떠올리는 배우도, 옵티머스 프라임이라는 거대한 존재감 없이 올곧게 낯선 지구 땅에 도착한 B-127과 그를 만난 소녀 찰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작품의 방향은 확실하고 정확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열여덟이 된 찰리는 종종 걸음 하는 곳에서 천에 가려져있던 노란 차 한 대를 발견한다. 아주 운이 좋게도 폐차 직전의 노란 차는 찰리의 열여덟 번째 생일 선물이 되고, 찰리는 그 날 돌아가신 아빠와 자신과의 공간이었던 차고에서 오토봇으로서의 기억을 잃은 B-127을 처음 만난다. 디셉티콘에 의해 목소리를 잃어, 벌이 윙윙거리는 것 같은 웅얼거림에 찰리는 오토봇에게 '범블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선심으로 받은 고물 차 한 대가 소녀에게 진정한 선물이 된 셈이다.




범블비는 지금까지의 숱한 로봇 영화의 규칙과도 같던 암 무적 룰을 따르지 않는 점에 의의가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찰리가 소녀라는 것일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차고에서 차를 수리하고, 절벽처럼 높은 곳에서도 유연하고 아름답게 몸을 내던져 다이빙할 수 있고, 거대한 로봇의 등장에도 소리 지르지 않는 평범하지만 평범하게 그려지지 않았던 작은 소녀 말이다. 그동안 트랜스포머와 맥락을 함께 하는 수많은 영화들을 떠올려보라. 늘씬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은 얼 빠졌지만 최후에는 진짜 히어로가 되는 남자 주인공 옆에서 이따금 놀라고, 이따금 소리 지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소녀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에 그쳤던 것이다.


찰리는 범블비와 함께 극의 주축을 맡고 있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소년 앞에서 '우린 아직 거기까진 아니다.'라고 선을 그을 줄 알고, 고약한 심보로 자신의 아픈 가족사까지 건드는 또 다른 소녀에게 당하고서도 흔한 눈물방울 하나를 흘리지 않는다. 찰리의 강인함은 열여덟 소녀가 짊어진 '어쩔 수 없이 꺾여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한층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주인공 범블비가 찰리와 함께한다.


뻔하고 이따금 진부하기까지 한 서사 속에서 신선함과 새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기존의 단순한 소년 영화의 틀 자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유형의 여자 주인공과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귀여운 범블비의 캐릭터가 만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긍정적인 기운이 퍼진다. 숨는 법을 몰라, 작은 모래더미 뒤에 간신히 얼굴을 숨기는 천진하고 순진한 로봇은 위험에 처한 주인공 앞에서 누구보다 용맹하고 강한 오토봇이 되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는 것 또한 어떤 것보다 진부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먹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찰리들의 가능성을 모른 체 해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