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초등학생 딸을 둔 외숙모가 "요즘 내 딸은 마라탕과 탕후루를 먹고, 인생네컷을 찍는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유행은 역시 돌고 도는군" 하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남포동에 가서 치즈 오븐 스파게티를 먹고, 팬시점에서 2천 원짜리 목걸이를 산 다음, 마지막에 스티커 사진을 찍었으니 말이다. 인생네컷 가게가 종종 눈에 띄어도 더는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느꼈다. 몇 년간 셀카는커녕 여행이 아니면 사진첩 사진이 느는 일도 별로 없었으니까. 유행과 무관하게, 뒤처진다는 느낌조차 받지 않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요즘 나는 쉴 틈 없이 인생네컷을 찍고 있다. 인생네컷이라고 썼지만,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체인점을 모두 방문한다. 포토이즘, 포토 그레이, 팝업 부스들까지 마치 출근 도장을 찍는 회사원처럼 외출을 할 때면 즉석 사진관을 찾는다. 마음에 드는 프레임을 골라 카메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나의 옆에는 항상 아이가 있다.
처음 인생네컷을 찍은 건 아이가 4개월이 갓 지났을 무렵이었다.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결혼식장 건너편에 포토이즘이라고 쓰인 영문 간판이 보였고 나는 충동적으로 유모차를 돌리며 남편에게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유리벽 옆쪽에 머리띠와 선글라스, 모자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안쪽에는 천으로 가려진 포토부스 세 칸이 나란히 있었고, 반대편 벽에는 이미 다녀간 사람들의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나는 꽃무늬 보디슈트에 보닛을 쓴 아이를 안고 포토부스로 들어갔다. 아이는 생소한 공간이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타이머에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안은 아이가 카메라를 바라보도록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8컷의 사진 중 아이 시선이 카메라로 향한 건 한 장뿐이었다. 나는 못내 아쉬워 한 번 더 찍자고 졸랐다. 두 번째 사진은 다행히 아이의 정면 사진 몇 장을 건졌다. 밖으로 나와 사진을 나란히 펼쳤다. 연한 회색과 초록색의 깔끔한 테두리 안에 서로 바싹 붙어 있는 셋의 모습이 빛에 반짝였다. 나는 가방에 사진을 집어넣고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걸었다. 화창한 5월 봄 오후였다.
아이가 점점 나가는 걸 좋아해 외출이 잦아진 만큼 자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외출 일과는 대개 비슷하다. 수유실이 잘 마련된 아웃렛이나 복합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다가 밥을 먹고 즉석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는 요령도 생겼는데, 큼지막한 리본이 달린 빨간 머리띠 같은 걸 들고 들어가서 카메라 앞에서 흔들거리면 곧잘 카메라를 본다. 셋이 찍는 게 단조롭다 싶으면 아이 독사진을 찍는다. 목마를 태워 찍기도 한다. 아이도 익숙해졌는지 카메라를 보며 제법 웃는다. 찍은 사진은 아이가 잘 나온 순으로 고른다. 나와 남편이 눈을 감아도 "도아가 잘 나왔으니까" 하며 선택하고 만다. 집에 돌아오면 다이소에 사 온 사진첩에 오늘 찍은 사진을 끼워 넣는다. QR로 사진과 동영상을 다운로드 해 휴대폰에 저장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과 인생네컷을 찍었다.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다 같이 외출을 할 때면 도아와 인생네컷을 찍자고 졸랐다. 사람이 많아 화면에 얼굴을 담기도 버거웠지만 인화된 사진을 보니, 모두 각자의 공간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웃음들 사이에 도아가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인생네컷 사진을 냉장고에 붙였다. 그 사진을 가장 자주 들여다본 것은 도아다. 놀다가도 아이는 냉장고를 바라보며 "엄마", "엄마" 부른다. 나는 아이를 안고 냉장고에 붙은 사진 가까이로 데려간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 어디 있어? 엄마"라고 묻는다. 아이는 사진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고 조그만 손가락을 들어 내 얼굴을 가리킨다.